필자가 살고 있는 이 외진 마을에서 만난 어떤 부부의 가슴시리도록 안타깝고 마음 따스해지는 이야기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장동춘씨(33세와 그의 아내 손이옥씨(28세). 우선 그 두 사람은 너무나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 그러니까 비극적인 이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상생활도 잘하고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던 장동춘씨는 군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고 훈련소까지 갔었는데, 갑자기 몸에 디스크 증상이 나타나 귀가 조치를 받게 되었다. 그 후부터 차츰 근육에 마비가 오더니 날이 갈수록 운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까지 되었다. 처음에는 낙심도 많이 하고 비탄에 잠기기도 하였지만, 오래 낙담하지 않고 마음을 추스린 다음 신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신학 4년 동안 같이 공부하는 동료가 매일같이 장동춘씨를 업고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졸업을 하고 잠시 동안 교회 전도사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충북 영동의 어느 교회에 초청되어 가서 예배를 인도하던 중에 장동춘 전도사가 특별 찬송을 부르게 되었다. 마지막 절을 부르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게 되었는데, 온 교인들이 따라 울었다. 그 울었던 교인 중에 어떤 처녀가 장동춘 전도사를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나중에 결혼을 하였다. 그 처녀가 지금의 장동춘씨의 부인이다.
나무토막같이 굴신을 못하는 사람에게 일생을 건다는 것은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 후 장동춘 씨는 근육마비 증상이 더 심해져 전도사 생활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축복은 있었다. 결혼 초에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 아이가 이제 다섯 살이다. 아이를 낳고 생활이 어려워져 장애인 수용시설에 일년 정도 세 식구가 몸을 의탁하다가, 지금은 이곳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2리 미옥골마을 하천부지 위에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시부모가 아들을 고치려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걸어진 빚과 신학공부하면서 진 빚을 갚느라 소작을 얻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을 늘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비(장애인 앞으로 나오는 한달 30만원)를 쪼개고 쪼개어 적금을 들어 시부모가 갚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빚 갚는 데 보태고 있다. 밤에는 몸을못쓰는 남편의 잠자리를 수시로 보아 주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지만 늘 밝은 얼굴로 살고 있다.
IMF의 어려운 시절을 맞아 사업 실패나 직장을 잃은 분들은 모두 와서 장동춘씨를 봤으면 한다.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멀쩡한 남편과 아이들을 놓아두고 가정을 버리는 주부들은 장동춘씨의 아내를 보고 갔으면 한다. 아마도 깊은 반성을 하게 될 것이다.
장동춘씨가 앓고 있는 '근육 이양증' 이라는 병은 접전 진행 되어 숨을 쉬게 하는 횡경막을 건드리게 되면 심장마비로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고 한다. 그 날이 그에게 가까워온 것을 느낀다. 너무나 안타깝다. 금년 2월 8일 9시 TV 뉴스에 그와 같은 병을 가진 아홉 살짜리 어떤 소녀가 수술을 하여 성공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수술비라는 것이 너무도 엄청나서 너무 낙심이 된다. 2억원이나 든다고 한다.
'다사랑운동'을 실천하는 정보통신부 직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 일을 성사시켜 주실 모든 분들에게 신의 크나 큰 축복이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