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방경란(경기 부천시 원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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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 공부하던 아이들이 배가 출출하다며 간식을 달라고 성화다. 며칠 전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간만에 긴장이 풀려 그런지 낮과 밤이 바뀌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 새벽 늦게까지 도통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창 때라 그런지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기 무섭게 간식을 청하는 아이들이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쳐 입고 다용도실로 향하니요사이 부쩍 추워진 날씨 탓인지 한기가 선득하게 와 닿는다. 조무래기 키만 한 항아리를 열어 지푸라기를 헤치고 막 먹음직스럽게 익은 홍시 몇 개와 냉동실에 얼려둔 곶감도 꺼내 레인지에 살짝 돌려 해동을 시켰다. 잘 익은 홍시를 반으로 갈라 통통한 과육을 한입 베어 먹는 아이들을 보며 참지 못하고 그 야심한 시각에 곶감 몇 개를 홀랑 먹어 치우고 말았다.
고향집엔 감나무가 많아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감나무 집’이라고 불렀다. 우리들과 더불어 유년을 보내고 사춘기를 지나 여태도 건강하게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감나무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늦가을, 가지가 찢어질 듯 열매를 맺어준 덕택에 우리 형제들 한겨울에도 입이 얼마나 호강을 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나무를 특히 잘 타셨다. 감나무는 특히 약하다는데도 다람쥐처럼 나무에 올라 긴 장대로 감을따던 아버지셨다. 이제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다.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감나무에 오르길 주저 않던 당신
이 작년부턴 사다리를 이용해 감을 따신다. 자식들은 위험하다며 한사코 말렸지만 아버지는 끄떡도 안하셨다. 자식들에게 손수 감을 따주고 싶은 아버지 마음을 조마조마 지켜보자니 가슴 한켠이 짠해졌다.장대를 든 아버지의 팔뚝은 안마당 앞의 늙은 감나무 가지처럼 여위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딴 감을아버진 자식들마다 고루 나눠주시고도 모자라 딱 먹기 좋은 반 건시를 몇 상자나 보내주셨다.
어릴 때 생각이 나서 항아리에 감을 넣어두고 먹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그 큰 항아리를말끔히 지푸라기로 태워 소독까지 해서 차에 실어주신 아버지. 항아리 가득했던 감들이 이젠 반나마 줄었다. 점점 깊어지는 항아리에 손을 넣고 지푸라기를 헤쳐 감을 꺼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언제 한 번 헤아려드린 적이 있었는지, 곶감꼬치에서 곶감을 빼먹듯 당신이 주시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먹기만 한 것 같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는 못난 딸을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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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빈 들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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