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나는 돼지 저금통을 샀습니다.
그리곤 동전 넣는 구멍 옆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글씨를 썼습니다.
‘아내를 위해’라고 말입니다.
아내는 가난한 나에게 시집와 22년을 한결같이 열심히 살며 고생했습니다.
여섯 식구 살며 늦잠 한번 못 자고 아파도 밤새 끙끙대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서 단 한 번도 가족의 밥상을 빼먹지 않고 차려주었지요.
그런 아내에게 나는 올해의 마지막 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마치 상을 주는 것처럼 묵직한 돼지 한 마리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내의 꽃 같던 얼굴에는 세월의 풍파에 주름이 생기고,
힘든 집안일과 직장일로 가녀린 어깨에는 염증이 생겼습니다.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고 주물러주는 것밖에 못 해주지만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생일에도 값비싼 선물보다 편지를 써달라는 아내이기에
이 돼지 저금통에 일 년을 조금씩이라도 모아
편지와 함께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옛날 프러포즈도 편지 한 통과 만년필을 선물했는데,
아내는 참으로 행복해했습니다.
그 편지를 지금까지 간직하고선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합니다.
아내는 돼지 저금통을 보고 애들 용돈이나 주지 뭐 하러 샀냐 하면서도
날마다 돼지를 흔들어보고 빨리 일 년이 지나면 좋겠다며 수줍게 웃습니다.
흥부가 박을 타듯 돼지 저금통을 잡는 올해의 마지막 날,
아내에게 묵직한 돼지 한 마리를 선물하면 점수를 조금 딸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