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실패 후 오랫동안 우편업무가 중지되었으나 우편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1895년 중단된지 11년만에 우편업무가 재개되게 되는데요. 우정총국 개설 당시 사용되던 우표(일본인쇄) 대신 미국에서 인쇄해 온 태극우표 4종이 사용되게 됩니다. 인천과 서울에 동시에 재개된 우편업무는 계속 확장하여 국내 주요 도시에 우체사를 설치하고 1989년 경에는 각 군과 현에 임시 우체사를 설치해 전국적인 우편망이 완비됩니다.
1900년에는 외국 우편물을 취급하는 한편 외국 우편물 중계국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데요. 러일 전쟁 후인 1905년 일본이 '한일합동통신조약'을 강제하면서 우편통신기관은 모두 일본에 예속되고 말았습니다.
■ 일본과 청국의 개항장 우편 업무
일본은 인천개항 이전인 1876년부터 자국 영사관 내 재외 우편국을 두고 우편업무를 실시하고 있었고 1883년 인천항에 우편국을 설치하고 업무를 시작하였는데요. 이후 우정총국의 폐쇄와 일본인 우편 수요 증가에 따라 1890년에는 우편 업무가 확대되게 됩니다.
청국 영사관도 거류민들이 본국과 우편 연락을 하기 위해 1889년부터 해관에서 우편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우표는 중국에서 발행되어 통용되던 용우표가 사용되었습니다.
■ 우편물 배달 -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