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년을 기리며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는 대한독립군인 대한의군(大韓義軍)의 참모중장이자 독립운동가로, 태명은 안응칠(安應七)이다. 1909년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역 근처에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준비한 안중근 의사는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하차 후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적군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이후 러시아제국군 헌병에게 붙잡혀 일본 총영사관으로 옮겨진 그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관동주 뤼순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숨을 거두었다.

안중근 의사 보통우표(1982. 10. 8. 발행)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0년,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과 태극기에 쓴 혈서 이미지가 담긴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우표 속 그의 네 번째 손가락인 무명지에는 유언 내용이, 태극기에는 감옥에서 작성한 ‘한국인 안응칠 소회1)’의 내용이 미세 문자로 표기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유언으로 조국이 광복되거든 자신의 유해를 고국에묻어달라는 내용을 남겼다. 소회에는 국권을 빼앗긴 조국을 향한 안타까움과 조국에 만행을 일삼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자서전에는 ‘한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두 번에 이루지 못하면 세 번, 그렇게 네 번, 열 번에 이르고, 일백 번을 꺾어도 굴함이 없이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하고야 말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라고 적혀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115년이 지난 지금, 안중근 의사는 그의 유묵2)에 남겨진 말처럼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로 민족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2010. 3. 26. 발행)

만주 땅에 남긴 독립의 맹세
남자현(南慈賢, 1872~1933) 지사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로, 여자 안중근이자 독립군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암살>의 배우 전지현이 맡은 안옥윤 역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던 남자현은 전국 각지에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남편의 원수를 갚는 길은 일본에 대항하여 나라를 구하는 것뿐이다.’라는 생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46세에 만주로 건너간 그는 만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에 들어가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재만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성 계몽 운동에도 앞장섰다.
또한, 사이코 마코토 총독 암살 작전, 일송 김동삼 선생 구출 작전 등에 참여했고,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일제 침략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자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의 두 마디를 잘라 혈서와 함께 전달해 독립을 향한 강한 열망을 전달했다. 혈서에는 민족의 강인한 독립 정신을 인식시키고 일인(日人)들에게 속지 말라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14년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편단심으로 투쟁한 남자현은 1933년 만주국일본 전권 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사살하려다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받아 결국 순국했다. 눈을 감기 전 최후의 유언으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라는 말을 남겼다. 인물화를 중심으로 디자인된 남자현 지사의 우표에는 그의 어록비가 배경으로 사용됐다.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 우표(2020. 9. 28. 발행)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족혼의 표상
조국의 독립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우표가 2020년 9월 28일에 발행됐다.
1919년 1월 21일, 을사늑약에 끝까지 반대한 고종 황제가 서거하였는데, 이것이 일제에 의한 독살이라는 소문이 퍼져 민심이 크게 들끓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 선언 소식이 전해지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민족의 열망은 더욱 높아져 갔다.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 우표(2020. 9. 28. 발행)
마침내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발표로 3·1운동은 시작되었고, 2천만 민중의 한목소리는 우리 동포가 있는 곳이라면 국내외 어디서든 울려 퍼졌다. 이화학당 고등과에 재학 중이던 유관순 역시 김복순, 국현숙, 서명학, 김희자와 함께 5인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3·1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고향으로 내려간 유관순은 1919년 4월 1일에 천안의 병천면에 자리한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도 옥중 동료들을 격려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은 그때마다 심한 매질과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결국 그해 9월 28일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가녀린 소녀가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 앞에 태극기를 손에 쥐고 맨몸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맞섰던 유관순 열사의 생애는 순국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기념우표에는 만세운동을 이끌다 일본 헌병에게 잡힌 후 그들에게 일갈한 내용이 쓰여 있다.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 이를 통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을 향한 열망을 남기고 떠난 유관순 열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6.25 전쟁 호국영웅 기념 우표(2015. 06. 01.발행)
우국충정 정신을 아로새긴 6.25 전쟁 호국 영웅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 영웅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 6월 1일, 10인의 호국영웅을 기리는 우표가 발행됐다.

호국영웅(독립운동가) 남자현 우표(2016. 6. 1. 발행)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개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약 3년 1개월간 계속된 전쟁이었다. 전쟁 동안 양측은 38도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고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오르내리며 전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했다. 그 일선에서 우리나라를 지킨 10명의 호국영웅들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자유는 호국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오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과 소중함을 생각하며 기리는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1) 소회 : 평소에 품고 있는 회포나 뜻
2) 유묵 : 명사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