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는 작은 모험을 하나 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소설이나 에세이의 원고를 내가 쓰고, 기성출판사가 그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는데, 직접 1인 출판사가 되어 모든 것을 도맡는 ‘독립출판’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독립출판물 <임경선의 도쿄>를 출간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지대로 만들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신경을 써야 했기에 피곤하기도 했다.
출판사 등록과 사업자등록, 도서식별 번호인 ISBN 신청, ISBN 교육 이수, 원고 작성과 사진 촬영,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통한 편집디자인, 종이 재질과 인쇄 부수 결정, 인쇄 감리 등 돌이켜보면 그것들을 언제 다 했나 싶다.
가장 큰 고민은 책의 유통 문제였는데 딱 한정판으로 2천 부만 제작한 터라 물류창고를 빌려 쓰거나 유통업체를 쓰지 않고 우리집을 창고로 쓰고 내가 직접 주문을 받고 배송하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책이 처음 기획, 유통되어 독자들의 손에 쥐어지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쇄소에서 제작되어 우리집에 배달된 <임경선의 도쿄> 2천 부는 실물로 보니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총 다섯 명이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아파트 10층까지 수십 차례 오가면서 겨우 모두 옮겼다. 안방 한쪽 벽면에는 갓 인쇄된 책이 천정까지 닿을 정도로 쌓였다. 며칠간은 독한 잉크 냄새가 빠지지 않아 머리가 띵했다.
책이 도착한 다음 날부터 오전 9시만 되면 책상 앞에 앉아 여러 온·오프라인 서점들로부터 책 주문을 받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적게는 10~20권, 보통은 100권, 200권씩 주문을 받고 박스에 포장했다. 손이 거칠어지고 두꺼운 테이프를 죽죽 찢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장사하는 맛이 이런 것 일까 싶었다. 평소에는 우체국에 직접 들고 가 소포를 부쳐보기만 해서 방문 예약을 신청하는 방법을 알아보려던 차, 때마침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요~!!"
보통은 빼꼼히 반쯤 연 현관문 사이로 물건을 번개처럼 주고받고 각자의 길을 갔지만, 이때다 싶어 택배기사님을 잠시 붙들고 내 상황을 상의드렸다. 한동안 꽤나 무거운 택배 짐을 부쳐야 하는데 매일 필요할지, 들쑥날쑥 불규칙할지는 아직 시작단계라 가늠하지 못하겠다고.
선한 눈매에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 기사님은 뭘 고민하냐는 듯이 바로 해답을 내주셨다.
“물건이 있으면 그날 오전 11시까지만 나한테 문자를 넣어주세요. 그러면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방문해서 물건 가져갈게요. 집에 안 계시면 현관 밖에 내놓으시고요.”
그렇게 ‘안심거래’가 바로 이루어지고 다음날부터 나는 택배기사님과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약속은 한 번도 어겨진 적이 없었고 택배를 맡긴 지 사흘도 안 돼서 택배기사님은 내가 매번 따로 우리집 주소를 적지 않아도 되게끔 아예 우리집 주소가 인쇄된 택배사 운송장을 백 장 가까이 뽑아다 주셨다.
"보니까 장사가 잘되는 것 같네요?"
기사님에게는 매일 있는 수백 건의 택배 중 한 건의 일에 불과하고 하물며 부피만 많이 나가 성가실 터인데 마치 당신의 일처럼 흐뭇해 해주시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혼자 일을 하다가 든든한 ‘동료’가 생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2천 권의 책들은 어느새 모두 판매가 되어버렸다. 이젠 더 이상 아침마다 주문받고 포장하고 택배를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게 후련하면서도 묘하게 허탈했다.
내가 사는 동네 일대를 담당하시니 우연히 택배기사님을 종종 뵈었다.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는 모습, 내가 들른 가게에 불쑥 들어와 부랴부랴 물건을 전달하고서 바로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모습.
앗, 하고 알아본 내가 시선을 마주치려 뚫어지게 쳐다봐도 그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그 많은 택배 물량을 시간을 다투어 소화해야 하기에 효율성 측면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아파트 계단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기사님이 나를 알아보셨다.
“이제는… 그 사업 안 하세요?”
어쩐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택배 상자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사생활 침범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모종의 ‘장사’를 한때 신나게 하고 있었고, 한창 잘되던 장사가 어느 순간 뚝 끊어졌다고 짐작한 것 같았다.
“아, 그거요. 잠깐 동안만 한 거예요. 다 잘 끝났어요.'
그렇게 말씀드리니 그제야 안도했다는 듯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예전에 지나쳤을 때 혹시 내가무안해할까 봐 일부러 못 본 척했던 것일까? 알수야없다.
그 이후로도 가끔 택배기사님을 먼 발치에서 뵈었다.
그는 여전히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노라면 모험을 감행했던 그해 초여름의 정경이 눈앞에 선했다. 그는 자기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내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그 계절을.
무거운 택배 상자를 낑낑대며 현관까지 들고 가면서 은근히 뿌듯했던 그 감촉을.
임경선 작가
● 기업 마케팅분야에서 12년간의 직장생활 후, 2005년부터 전업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소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나의 남자>, <기억해줘>, <어떤 날 그녀들이>와 산문 <다정한 구원>, <태도에 관하여>, <자유로울 것>,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나라는 여자>, <엄마와 연애할 때> 등을 펴냈다. 최근작으로는 가수 요조와의 공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