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가중치의 왜곡’에 유의하자
요즘 마트에 가면 뭐 산 것도 없는데 계산할 때 10만 원을 훌쩍 넘겨 깜짝 놀란다. 하지만 우리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공식적으로는’ 1%대 저물가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 통계당국이 뭘 잘못한 걸까?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바로 ‘가중치의 왜곡’ 때문에 나타난결과이다. 최근 물가패턴을 보면 전통적으로 가중치가 높은 품목들의 ‘가격추세’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어 통계로 잡히는 물가상승률이 낮게 나오는 것이다.
당국에선 물가를 측정할 때 1,000점을 기준으로 잡고 우리 생활의 물가수준을 반영하는 약 460개 품목을 선정한다. 그런데 이때 해당품목별 영향력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한다. 가령 통신요금이나 전월세 등 주거비용, 전기료, 학원비 등은 비중을 높게 반영하지만 먹거리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중치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전체 총 점수가 1,000점이라고 하면 이중 전세가격(49), 월세가격(43)의 가중치는 90점이 넘어버린다. 휴대전화 요금의 가중치도 38.3점이나 되고, 휘발유(25.1)와 전기세(18.9) 등 생활에 꼭 써야 하는 품목에는 높은 비중을 준다. 학원비도 최근 10년간 계속해서 가중치가 높아진 항목이다. 그만큼 우리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인데, 초중고생 학원비로 나눠 집계하는 것을 모두 합치면 학원비 항목만 40점이 넘는다.
반면, 지난 3월 30% 넘게 올랐다고 발표된 오징어는 가중치가 1점에 불과하다. 요즘 가격이 급등하는 과일을 봐도 사과·배 등 15개 과일 품목을 다 합쳐도 15.9점밖에 매기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6개월간 물가 흐름을 보면 급작스런 역전세난에 전월세 비용은 오히려 떨어지는 추세고 통신비 역시 정부의 압박에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도 요즘 많이 올랐다지만 과거보다는 여전히 낮고, 교육열은 아직 뜨거워서 사교육비 부담은 여전하지만 학원비 상승률 자체를 보면 정체된 지가 꽤 오래됐다. 그래서 이들이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반면에 요즘 주부들을 힘들게 하는 건 먹거리 물가와 외식 물가, 서비스 물가 급등인데, 이런 품목은 가중치가 적어 물가상승률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먹거리이므로 어서 당장 이 가중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 통계청은 2012년부터 0과 5가 들어간 연도에 품목별 가중치를 갱신하면서 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외식물가의 품목별 가중치는 2015년에 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먹거리 품목의 가중치를 높이고 기존 고(高) 가중치 품목을 빼 버릴 수 없다는 데 있다. 가령 전월세 부담 가중치를 당장 확 낮춘다고 해보자. 지금이야 하락 추세여서 괜찮겠지만 만약 내년에 올라버린다면 지출규모가 크다는 것을 감안하여 더 큰 왜곡을 만들 수 있다. 휘발유 비중도 비슷하다. 국제유가는 언제든 폭등할 수 있기 때문에 가중치를 줄일 수 없다. 그래서 당국 입장에선 이 가중치 변경에도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선 이런 가중치의 왜곡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대응하면 좋을 것이다.
청년실업률, ‘일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2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2월 실업률(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은 4.6%였다. 청년(15~29세) 실업률은 9.8%였는데 작년 2월(12.3%)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2.5%포인트 하락했다. 통계지표로만 보면 청년실업률 문제가 개선됐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런데 바로 이 청년실업률에 대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지금 통계로는 청년 10명 중 1명 정도만(9.8%) 실업자란 이야기인데, 정작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그럴 리가”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청년실업률 결과가 집계됐을까. 먼저 통계청이 실업률을 어떻게 구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을 말한다. 이때 핵심은 바로 이 경제활동인구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이다.
‘경제활동인구’란 15세 이상 65세 미만 인구 중에서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려고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꽤 까다롭다. 나이로만 보면 간단하지만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현역군인, 전투경찰, 기결수 등은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된다. 심신장애가 있는 사람도,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주부도 비(非)경제활동인구이다.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건 바로 ‘노동할 의사’이다. 이 ‘일할 의사’에 대한 정의 때문에 청년실업률에서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는 일을 하고 싶다는 ‘노동할 의사’ 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실업률 통계에선 ‘최근 4주 동안 구직활동을 한 사람’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즉, 지난 4주 동안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면서 실제로 구직활동을 한 사람만이 노동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이를 경제활동인구로 본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취업준비생’이 만드는 청년실업률 통계의 커다란 왜곡이 발생한다. 가령, 같은 취업 준비생도 통계를 내기 직전 4주 동안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 만약 A라는 취업 준비생이 단순히 준비만 했다면 A는 비(非)경제활동인구가 되는데 그러면 실업률 집계에서 빠진다. 공무원 시험만 2년을 준비했는데 그동안 원서를 한번도 내지 않았다면 실업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반면 B라는 취업 준비생은 입사지원서도 내고 고시에도 응시하는 등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해왔다면 B는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고, 안타깝게 떨어지면 공식적인(?) 실업자로 인정받는다. 한 가지 더. ‘취업자’에 대한 정의도 청년실업률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현재 통계에선 ‘매월 15일이 들어 있는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해 수입을 올리는 사람’을 취업자로 정의한다. 이것 때문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입사 지원서도 내고 있는 취업 준비생 C는우리 통계에선 취준생이 아니라 당당한 ‘취업자’로 분류된다. 입사원서도 냈고(경제활동인구), 여기에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은 돈 버는 일도 했으니(취업자) 말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청년을 취업자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가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ILO(국제노동기구)가 이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최근 ‘체감실업률’을 함께 집계한다. 체감실업률은 ‘잠재적 구직자’와 ‘불완전 취업자’를 통해 문제를 보완한다. ‘잠재적 구직자’는 분명 일하고 싶지만 잠시 구직을 단념한 사람이기에 경제활동인구로 잡고, ‘불완전 취업자’는 아르바이트 같은 취업자이지만 실업자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앞서 2월 청년실업률은 9.8%이지만 청년 체감실업률은 22.8%이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환율과 인플레이션도 막대한 영향
작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 9,745달러를 기록했다. 약 3,300만 원 정도인데, 역대 최고치이지만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조금만 더 했더라면 바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간 한국경제의 모습을 보면 1950년 5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88년 5천달러, 1996년 1만 달러에 이어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10년 넘게 3만 달러 벽에 갇혀 있었는데, 이번 발표와 함께 기획재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3만 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말 가능할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달성하려면 어떤 요인들이 필요한 걸까. 먼저 1인당 국민소득의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1인당 국민소득 지표는 크게 1인당 국민총소득(GNI)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혼용돼 사용된다. 1인당 GNI는 국민소득의 합계를 인구 수로 나눈 것이고, 1인당 GDP는 국가 내 총 생산을 인구 수로 나눈 것이다. 어느 쪽이든 3만 달러를 달성한다면 세계 27~28위권으로 올라서게 된다. 핵심은 경제성장률이다. 작년처럼 어떤 식이든 3%대 성장을 해야 기반이 마련된다. 그리고 올해는 내수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이상 반도체 수출만으로는 역부족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가 도와준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첫째는 물가상승률이다. 1인당 GDP의 경우 집계할 때 인플레이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명목치를 부풀려주는 효과가 있어 경제성장을 막는 수준이 아니면 통계치에는 긍정적 요인이 된다.
둘째, 원/달러 환율은 정말 중요한 변수이다. 1인당 GNI도 그렇고 1인당 GDP 모두 결국엔 달러로 환산돼 집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일수록 유리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같은 1천만 원을 벌었다고 해도 환율이 달러당 1천 원이라면 1만 달러이지만, 달러당 500원으로 환율이 하락하면(원화 강세) 2만 달러로 집계된다. 따라서 원화 강세, 그러니까 환율이 하락할수록 3만 달러 달성확률은 높아진다.
그 밖에 인구 변수도 있다.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면 불리하고, 인구가 완만하게 늘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가령 1인당 GDP가 10만 달러가 넘는, 부동의 1위 룩셈부르크는 60만 명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해도, 엄청난 인구 때문에 아직 8천 달러 수준이다. 다만 최근 저출산 문제를 생각하면 인구가 제발 빠르게 늘어나 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외치는 걸까. 바로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활 개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행보를 보니 3만 달러가 넘을 때부터 평균적으로 국민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과 함께 국민들이 골고루 잘 사는 데도 초점을 맞춰야 하겠다. 소득분배 수준을 보여주는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 지표, GDP대비 복지지출 비율, 실질 평균임금 상승률, 청년실업률 등과 같은 통계지표에서도 괄목할 만한 개선이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