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빨간 우체통을 만나면 그리운 사람에게
손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싶은 아날로그 감성이 되살아난다.
지금이야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받거나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업무도 볼 수 있지만, 우표가 붙어 있는
손편지야말로 ‘기다림, 반가운, 그리움, 추억’이 묻어난다.
7~80년대에는 주로 손편지와 공중전화가 소통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백열등 아래에서 편지를 자주 쓰곤 했다. 신혼 초 2년 동안
해외에서 근무하던 남편에게 매일 일기처럼 편지를 써서 넣었던
빨간 우체통은 여전히 풋풋한 그리움이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해외에서도 무료 영상통화까지
할 수 있으니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면서 느꼈던 그 시절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빨간 우체통을 보면 꼭 훈훈한 온기와
희망을 나누는 전령사가 생각나 소외된 이웃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진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은 마음이 춥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김장 봉사와 반찬 봉사, 장바구니 사용 캠페인, 플라스틱·비닐 쓰레기
줄이기 등을 실천하면서 구석구석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언제든지 달려갔다. 이십여 년 동안 우리 구에서는 매달 한 번씩
약 600여 명의 어르신에게 점심 식사를 만들어 드렸으나,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복지관이나 구민회관에서 모일 수가 없었다.
대신 다섯 차례에 걸쳐 김치와 반찬 몇 가지씩을 만들어 약 300세대씩
배부해 드렸다. 지난봄 마스크 대란으로 약국 앞에 줄을 서서 일회용
마스크를 사던 때에는 회원들과 함께 천 마스크
약 5천여 장을 직접 만들어 관내 시설과 어린이집에 배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도 천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스크 대란
위기도 이겨냈다. 학교 현장으로 직접 가서 여고생들에게 손바느질로
마스크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천 마스크 약 2천여 장을
수해 이재민들과 장애인 시설에 전달하기도 했다.
사랑의 실천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홀몸 어르신, 가정폭력
피해아동, 미혼모 가정, 다문화 가족, 노숙자 등 아직도 생생하다.
매월 셋째 주 화요일마다 ‘한마음의 날’ 구민회관에 모이신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 드리면 줄을 서서 기다리다 테이블에 앉아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지난 2월 이후 뵙지 못하였으니 그 어르신들이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뵙고 싶다.
전화로나마 자식들과 소통하고 계신 분들은 다행이지만,
요양원이나 병실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해
가족을 맘대로 만날 수 없는 분들을 떠올리면 안타깝다.
그래서 강동구 새마을부녀회원들 문학동아리 ‘시산꽃’에서는 약 300여
통의 엽서를 만들어서 요양원 시설에 전달하기로 했다.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서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 넣고
“사랑합니다. 얼른 일어나서 다시 만나요”라고 정성껏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서 자그마한 선물과 함께 전달한다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거리에 놓인 빨간 우체통처럼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전파하고,
바다 한가운데 어둠 속에서 깜빡거리는 불빛으로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처럼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소리 없이 소식을 전달하는
사랑의 전령사가 되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홀몸 어르신과
소외된 이웃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요즘, 그들에게 희망의 등불인
‘빨간 우체통’이 되어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한상림 작가 ●
시인이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시집 <따뜻한 쉼표>와 <종이 물고기>, 칼럼집 <섬으로 사는 사람들>을 펴냈다. 강동구여성단체협의회장과 강동구새마을부녀회장을 맡고 있으며, 21년째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