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 13회 통신대회 신상철장관 소인경기
모두 함께 즐기는 우편경기대회
1954년 당시 체신부에서는 종사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우편 업무 기술 향상을 위해 전국의 체신청 단위로 우편경기대회를 열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광복 이후 우편경기대회의 시초다. 당시 경기 종목은 우편시군구 구분 빨리 하기, 우편철도 구분 빨리 하기, 우편압인 빨리 찍기 등이었다.
지방 단위로 개최되었던 행사는 그해 가을, 전국 단위 행사인 전국통신경기대회로 확대되어 개최되었다. 9월 28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첫 전국통신경기대회는 전국에서 18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41가지 종목을 겨뤘다. 종사원들끼리 서로 겨루는 이 대회는 축제처럼 모두 함께 즐기는 행사로 발전되어 이후 매년 성황리에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우정부문과 전신전화부문 등으로 진행되었던 대회에서 단연 인기가 높은 것은 압인(일부인찍기)경기와 시군우편물 구분 경기였다고 한다. 영상홍보원 사이트에서는 1950년대 대한뉴스에 나왔던 당시 대회의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전국에서 모인 우정종사자들의 숙련된 기술에서 나오는 전광석화와 같은 손놀림에 흑백 영상이 주는 신비로움이 더해져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좌)통신경기대회 개최식 광경, (우)우편물 구분경기 광경
(좌)땅이 질퍽거리는 운동장에서 행해진 우편물 배달속도 경기
(우)우편물 압인 내빈경기에서 우승한 김선주씨(체성 회장)가 김차관으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있는 모습.
그때 그 시절, 열정적이었던 모습
이후 행사는 점차 더 확대되어 진행되었다. 1957년에는 전국통신 대회 대항 전신대회가 열리기도 하였고, 1960년대 들어서는 신문을 통해 지역예선 경기까지 보도되는 등 이목이 집중되었으며, 1974년 경기에는 예선을 거친 참여자 수가 630여 명에 달하는 등 체신부 안팎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1976년부터는 개최 시기가 변경되었는데, 이전에는 가을 즈음에 진행되었던 행사가 1976년 부터는 체신의 날(現 정보통신의 날)에 함께 개최되어 기념일의 의미를 더하였다. 하지만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인해 행사는 점차 축소되었으며 1984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체신부에서 분리되고 동 이름의 행사를 통신공사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우정사업과 관련한 통신경기대회는 중단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무언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해 본 적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영상과 사진 속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경기에 임한다. 이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어서 그런지 우승을 위해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