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결실을 마무리한다. 뿌린 씨는 정성에 보답하여 열매를 안겨 준다. 이국땅에서 맞고 있는 이 가을은 일본의 전통산업을 끝으로 현지견학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보람있는 성과를 거둬들이고 있다.
3주일째 접어든 연수의 피로감은 발걸음의 무거운 감각에서 나타나고 있다. 東京에서 513km 떨어진 京都까지의 여행이 사뭇 기다려져 新幹線에 빨리 몸을 옮기면서 일본 전통산업의 토속적 기초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국제경상수 지의 금년 1/4분기 수출 50,515백만불에 수입은 27,142백만불의 무역흑자 속에 1세대당 저축이 무려 821만엔으로 작년 대비 12.3%의 富를 축적하고 있는 일본―이러한 경제 성장의 가속화는 인위적 계산화된 환경 속에 이루어져 인간 본연의 정서의 상실, 집단생활의 자연적 정취감 쇠퇴로 뛰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생각하는 인간들은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차창 밖에 보이는 농촌의 풍경―농가나 들판에 현대식 농기계류, 자가용, 트럭들이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고, 짙은 숲들이 자라난 그대로 어울려 있어도 먼 들판에서 밀려오는 물씬한 풋내음도, 새들의 지저귐도 없는 것 같아 그 속에서 옛 고향을 찾으려는 순진한 마음은 아쉬움이 더 해질 것 같았다.
기차와 함께 1시간 정도 달렸을까? “아! 후지 산이다.”하는 외침이 조금 크게 들렸다. 멀리 높게 보여야 할 후지산이 가까이 낮게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여러 旅情 속의 향수를 덜어주려는 心術인 것 같았다. 여러 빛깔의 옅은 구름 덩어리들이 정상을 에워싸고 요동을 하고 있었다. 칭찬을 주저할 입장이 못되는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이 산이 우리들을 격리시킬 때까지 자연과 전통과 현대와의 조화 속에 생각하고 활동하고 쉬어가는 과정의 멋없는 메마름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바삐 달리는 기차의 나머지 시간을 메꾸고 있었다.
京都는 명치천황이 수도를 東京으로 정할 때 까지 천년 이상 이 나라의 수도로 넓이 611k㎡에 인구는 약 150만명이다. 바둑판 모양으로 곱게 짜여진 이 도시에는 2개소의 옛 궁성, 1,600여개의 절, 약 400개의 神祠가 있다. 옛부터 각양각색의 손재주를 육성하고 그와 더불어 살아왔다. 인생살이에 필요한 儀式用具나 정신적 양식이 되는 취미,기호품 등을 보다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정밀하게 그 모양을 만들고 화려한 색깔로 빛을 내려고 하였다.
긴 역사 속에서 다듬음에 다듬음을 거듭하여 여기 전시회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은 京都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온 마음과 기술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품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에 전시되어 있는데, 전국의 162개 품목 중 沈종류 600목록이 비치되어 있다. 전시품 중 유명한 니시진오리(西陣織泥 · 서기 794년에 京都에서 처음 짰다고 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일본옷의 허리띠, 테이블크로스, 넥타이, 스카프, 드레스, 커튼을 만드는 옷감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유우젠조메(友禪染約)는 에도시대 (1603~1867년)에 그 수법이 확립되어 그 화려한 디자인과 색채는 손으로, 혹은 形板(스텐슬)을 써서 도려내는 다채로운 염색수법으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키요미즈야끼 (淸水燒 는 품질이 아주 좋은 우아한 도자기로 알려졌는데,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형상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는다고 한다. 전시된 품목은 지역적 특색을 살리려는 흔적과 함께 전통의 유래, 본능적 맵시를 내려는 기교와 線의 세분, 관광객의 개성을 찾아 손짓하려는 듯 形의 다양화와 토속성 등 별난 작태를 하고 있었다. 전시품의 더러는 그 기초가 우리 역사와 선조의 가르침이 전래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판매원의 친절은 여기서도 예외없이 완벽하였다.
전시장의 각 모퉁이마다 옛 직물 짜는 시골 노인, 전통옷감에 바느질하는 수줍음 벗어난 아가씨, 통통한 베를 재는(裁斷) 텁수룩한 중년의 남성 主演에 시골티의 부인 2, 3명이 멋적은 助演을 하며 재래의 전통 미각을 살리려는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일행은 500엔~100만엔에 이르는 진열품을 곳곳에서 유심히 살펴보고 만져보고 물어보는 마치 고고학자의 入門 스타일 같았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좋아하는 小品을 1, 2점 간추리는 모습들도 정겨웠다. 바느질하는 아가씨의 동의에 관계없이 주저앉아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풍경도 옛 정경을 시도하는 듯 자연스럽기만 하다. 시간은 우리들을 위해 머무르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기에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귀로에 유명한 국보 33間堂에 들러 인생의 무상함을 달래는듯 감동어린 無我境을 제각기 뿜어내는 그 많고도 많은 佛像앞에 인생살이의 숨은 사연들을 호소하는 異國의 群像 속에서 철모르게 지내는 세째와 막내아이를 위해 불공드리고 기원문을 새겨 두었다.
또 다른 인근 고찰을 둘러보고 하산하는 길의 길고 넓은 주변에 전통물품을 전시하는듯 陳列商 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제1차산업 (9.3%) 속에 파묻혀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도 거의 없는 상태로 정부 보조금과 상품 판매 대금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 전통산업은 경제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일본인의 취미생활, 여가선용, 미풍양속의 보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정서의 안식처를 마련하려는 몸부림 같이도 보였다. 검소하고 근면함을 기조로 한 衣食住는 좁은 공간을, 친절한 사회활동과 함께 과학기술은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일본인의 계산, 을씨년스럽게 연일 습기찬 날씨와 아침 저녁 자주 울어대는 까마귀의 불안감 속에 언제까지 전통과 첨단과의 조화를 이루어 인간적 옛 정을 유지할 것인지 귀로의 황혼 열차 속에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87. 10. 15〉
*필자는 일본 人事院 파견 (1987.9.25~10.25 : 각 부처의 선발요원 16명) 연수교육을 통하여 발전지향적 직원교육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 일본의 현대첨단산업과 전통 산업의 조화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京都傳統産業會館을 방문하여 이의 느낌을 여기에 표현 한다.
注 1) 經濟白書 : 참고자료 P. 2(1987.4판 日本經濟企劃廳論)
2) 1987. 9. 30(수) 讀賣新聞 14면
3) 前 1항 중 P.278 (일본의 산업 별 취 업자 수는 1950년도에 1차 48.5, 2차 21.8, 3차 29.6%, 1985년도에 1차 9.3, 2차 33.1, 3차 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