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쭐’ 내주러 가자!
‘몹시 혼나다'라는 뜻의 ‘혼쭐이 나다’에서 변형된 신조어, ‘돈쭐이 나다’. 어감만 보면 나쁜 뜻 같지만 ‘돈’과 ‘혼쭐’을 결합한 신조어로 그 가게 물건을 많이 팔아주어 돈으로 혼내주자는 뜻으로 사용된다. 돈쭐의 시작은 어린 형제에게 무료로 치킨을 건넨 홍대 치킨집이었다. 선한 행동을 한 가게에 '돈쭐’을 내주자는 네티즌들의 돈쭐 행렬이 이어졌고, 배달 앱에는 강원,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돈만 내고 음식은 받지 않는 주문이 이어졌다. 심지어 주문이 폭주하면서 해당 앱에 가게 이름이 인기 검색어 1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돈쭐은 홍대 치킨집에서 끝나지 않았다. 결식아동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 파스타 가게나 마스크 대란으로 온갖 업체가 앞다퉈 마스크 가격을 인상할 때 시중가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마스크를 판매한 한 중소기업 등도 돈쭐의 대상이 됐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훈훈한 미담의 ‘돈쭐’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있다.
돈쭐을 주도하는 MZ세대
돈쭐의 주도자. 바로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 태어난 세대)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미담을 커뮤니티나 SNS에 올린다. 이들은 어쩌다 돈쭐을 주도하게 되었을까? M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미닝 아웃(Meaning Out)’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닝 아웃이란 ‘신념(Meaning)’과 ‘나오다 (Coming out)’의 합성어로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자신의 가치관과 맞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열기도 한다. 돈쭐을 내주러 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는 MZ세대의 소비 활동이라 볼 수 있다. 조사를 통해서도 이들의 미닝 아웃 소비 패턴이 드러난다. MZ세대의 52%가 ‘이미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소비를 하고 있다’ 라고 밝혔고, 절반 이상이 올바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더 들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기업 또한 MZ세대가 기업의 상품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미국 아웃도어 의류 회사인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제품이란 마케팅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35%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타사 대비 가격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대 대비 MZ세대의 구매율이 높다. 나이키는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일어날 때 브랜드 중 제일 먼저 ‘For Once, Don’t do it’이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나이키의 빠른 반응에 MZ세대는 환호했고, 심지어 경쟁사인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게시물을 리트윗하며 인기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MZ세대의 돈쭐이 세상을 바꾸다
그렇다고 MZ세대가 항상 지갑만 여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의 갑질 등이 알려진 부도덕한 기업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불매운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이 불거진 남양유업은 아직도 불매운동 대상이다. 남양유업 제품을 판독해주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MZ세대의 움직임 덕분에 일주일 만에 종영한 드라마도 등장했다. 실존 인물을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문제였지만, 중국식 복식과 중국 음식의 등장 등이 큰 공분을 샀다. 예전 같으면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리는 정도로 그쳤겠지만 MZ세대는 돈쭐을 내주는 것처럼 ‘금융 치료’를 시작했다. 해당 드라마 제작을 지원하거나 광고 협찬을 한 기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정리된 게시물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틀 만에 광고 기업 24곳과 제작 지원 기업 3곳이 모두 광고와 지원을 취소했다. 항의의 뜻보다 금융 치료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과거에는 활동가와 운동가 중심의 소비자 운동이 바른 소비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MZ세대의 신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소비가 세상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몰래 선행하는 것이 미덕이던 이전과 달리,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는 SNS에서 ‘#사장님힘내세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돈쭐내준 것을 자랑한다. 이렇게 공유된 착한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또 다른 자랑을 낳는다. 이들의 선한 영향력이 세상에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