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는 볼일을 보고, 낡은 의자가 서너 개 놓인 소박하기 그지없는 시골우체국으로 거침없이 들어선다. 사실 내가 이곳에 발령받기 전부터 전임 국장에게 긴히 인수인계받은 게 있다. 그것은 특이사항에 대한 귀띔이 아니라, 바로 한 노인에 관한 것이었다.
수산(水山). 물 좋고 산 좋은 이곳에서 구십 평생을 살아오신 이분은 우체국 직원을 친 자식처럼 살갑게 대해주시며, 특히 국장들과의 유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전임 국장들과 아무 허물없이 종종 안부 전화도 주고받는 특급우정을 보여 주었다.
90세가 넘는 연세에도 평생 해오신 본인의 루틴대로 해마다 텃밭에서 배추며 고추, 감자, 옥수수, 땅콩 등 다양한 작물들을 손수 심고 가꾸고 거두어 타지에 사는 당신의 아들, 딸, 며느리에게 부지런히도 소포를 부쳤다.
우체국에 올 때마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나눠 주기도, 장날이면 구수한 옥수수 강냉이를 튀겨 오시기도 했다. 한 번은 생닭을 가져오셔서 ‘깜짝 백숙 파티’를 연 적도 있다. 며칠 전 모처럼 직원들과 유난히 맛나게 드시던 갈비탕 한 그릇을 대접해 드렸더니,
“아가, 내가 너희 덕분에 인생을 재미나게 산다. 고맙다.”라고 하셔서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생경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가 우체국에 오시는 날이 되면 우리는 왠지 모를 설렘으로 자꾸만 출입문 쪽에 시선을 두게 된다. 어느덧 나는 객지 생활을 마무리하고 연고지로 발령을 앞두고 있다.
신임 국장이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날, 3년 전의 나처럼 생각하겠지?
“이상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