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일 동안 전국 소녀상을 그림으로 그린 청년 대학생
전국에 세워져 있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직접 그림으로 옮긴 청년이 있다. 2017년 5월 15일부터 104일에 걸쳐 ‘전국 소녀상 그림 기행’을 하고 돌아온 그의 이름은 김세진. 그가 그린 74점의 소녀상 그림이 ‘소녀, 평화를 외치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에 경기도 성남시청으로 향했다. 만화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김세진은 작가로서 관람객을 맞이하며 친절하게 전시 해설까지 하고 있었다. 쭈뼛쭈뼛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길 망설이는 꼬마 관람객에게 먼저 다가가 안내문을 건네며 그림이 보고 싶으면 엄마 손 잡고 언제든지 오라는 이 청년은 어떤 계기로 위안부 소녀상을 그리게 됐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한창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때, 저는 역사와 사회학에 관심을 가지며 전쟁의 참상을 확인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들어가 군대를 다녀오고 원하는 전공으로 편입하여 2년간 해외에 살다 돌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요즘 20~30대 친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이었죠. 바쁘게 살다 보니 제 나름의 역사의식도 흐릿해졌을 그 무렵,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일었어요. 어느 날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한 학생이 1인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역사와 사회 현상에 불만을 가질 뿐 행동하지 않았던 제가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낀 순간이었죠.”
난생 처음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김세진은 이 날을 계기로 그간 희미해진 자신의 역사의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사를 비롯한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전 세계 이슈에 귀 기울였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보고 김세진은 드디어 제 목소리를 내겠노라 결심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바로잡아야 할 과거를 직접 알리고 싶었던 것.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믿은 김세진은 꾸준히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관련된 활동과 집회에 참여하다가 2016년 12월 28일, 한일 합의가 이뤄진 지 1년째 되는 날 결성된 단체 ‘소녀상농성 대학생공동행동’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진정성 담긴 사죄를 받아내는 건 고사하고 위안부 소녀상 철거 혹은 이전만 논의되는 상황을 보면서 피해자보다 동상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고민과 배려 없이 진행된 반쪽짜리 합의가 이뤄진 셈이죠. 단체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소녀상을 지키는 일부터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 인류의 문제
전국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소녀상을 지키고 이를 통해 위안부 피해 역사를 널리 알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굳이 노숙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노숙’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일종의 ‘표현’이자 저항의 목소리라고 인식하면 되는 걸까?
“2016년 12월 28일,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됐다가 4시간 만에 철거됐어요. 그 모습을 생생히 보면서 분노하게 됐고, 소녀상 옆에서 밤을 지새우더라도 우리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노숙 농성을 강행했습니다.” 지방에 거주하던 김세진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진행되는 노숙 농성에 자주 참석하지 못 하여 친구들에게 늘 미안했다. 결국 마지막 학기만을 남기고 휴학을 결심한 미술학도 김세진의 선택은 소녀상 그림 기행이었다. 단체 활동을 하던 중 한 시민이 “전국에 소녀상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어왔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 한 게 항상 마음에 걸렸던 그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전국을 다니며 소녀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세진이 그린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어두운 역사와 달리, 선이 가늘고 색감이 참 고운 수채화로 표현된 소녀상을 보고 있자니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지난 세월과 역사가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이 중 작가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소녀상이나 그림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슬픔의 농도가 얼마나 짙게 드리워져 있을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늦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한여름이 다 지날 무렵에 끝난 작업인 만큼 그림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부천 안중근 공원에 있는 소녀상을 말하고 싶네요. 이 소녀상은 특이하게도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얼굴이 궁금하여 앞쪽으로 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앞쪽은 소녀상을 보며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거울로 만들어져 있었거든요. 거울 속 제 자신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저는 소녀상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역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역사라는 것이죠.” 김세진이 생각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당신들께서 아픈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음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전 세계에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는 그의 말은 충분히 근거 있는 주장이다. 1991년 8월 14일, 세상에 처음으로 위안부 역사를 증언했던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최초 증언 이후 위안부 사실에 대해 법정 증언을 했고 증언집을 통해 자신의 참담했던 생활을 공개하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다. 김 할머니 외에도 자신이 겪은 일과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며 여생을 보낸 고 강덕경 할머니 등 피해자 대부분이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 문제로 공론화하는 데 앞장선 것이다.
“한성대입구역에는 한국인 소녀상 옆에 중국인 소녀상이 나란히 앉아 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개인 혹은 우리나라만의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님을 여실히 표현한 것이죠.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러 국가뿐만 아니라 멀리 네덜란드에도 피해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는 것을 전 세계가 인지하고 가해자인 일본을 압박하여 반드시 제대로 된 사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소녀상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우리의 아픈 역사 100일이 넘는 동안 낮에는 소녀상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이슬 맞으며 소녀상을 지켜낸 대학생 김세진은 이번 그림 기행을 통해 일부 어르신의 잘못된 역사의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처참한 역사 앞에서 누구나 분노하고,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학생들의 활동을 지지할 것만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녀상 그림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줬지만 간간이 만난 어르신들은 ‘다 지난 옛날 일’이라며 김세진을 호되게 꾸짖었다.
“전쟁 때 성노예(위안부) 정도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건데 언제까지 과거에 연연할 거냐며 그림 그리는 저한테 호통치던 어르신도 있었어요. 이런 분들에게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말씀드리고 끔찍한 역사를 가감 없이 전달하곤 합니다. 저와의 짧은 대화로 단번에 의식이 전환되긴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위안부 소녀상은 더 많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프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을 소녀상을 통해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니까요. 후손으로서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드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거제시와 성남시를 거쳐 열린 그림전 ‘소녀, 평화를 외치다’는 현재 국회의사당에서도 전시가 열릴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올 여름에는 김세진의 기행 여정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도 출간될 예정이다. 졸업을 앞두고 ‘위안부 소녀상’을 주제로 한 전시를 통해 일종의 작가 데뷔를 한 미대생 김세진. 앞으로 청소년을 위한 ‘인권 만화’를 그려 인권 교육에도 힘을 쏟고 싶다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Profile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휴학 중
2018년 전국 소녀상 원화 전시(국회의원회관 외 4회, 3월기준)
2017년 전국 소녀상 그림 기행
2016년 소녀상농성 대학생공동행동 활동 시작
2007년 전주영생고등학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