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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의 가업을 이어온 한과 명인
옛날 우리나라는 밀이 거의 재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쌀로 만든 떡이나 과자가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과’이다. 최봉석 명인은 5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원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배합에 따라 달라지는 맛의 차이와 진짜 전통의 맛을 찾기 위해 오직 손으로만 만드는 노력을 통해 ‘갈골명인’의 명성을 지켜왔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웠던 것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 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최 명인. 그의 기억 속에 한과는 삶 그 자체였다.
최봉석 명인은 한과를 만드는 방법도 전통방식을 고수하는데, 다소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한과 제조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 특히 한과를 만드는 가장 첫 번째 과정인 쌀을 발효시키는 과정에 많은 정성을 쏟는다. 쌀을 불리는 과정에서의 온도, 물의 양 등 명인이 전수받은 방법 그대로 따른다. 두툼하게 만들어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인 과줄과 한과에 인공 색소를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최봉석 명인만의 고집이다.
그는 언제부터 한과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최 명인은 고교 시절 힘쓰는 일을 도맡아 하며 할머니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웠고, 전통 한과 만드는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그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부터 한과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면서 종손으로서 집안의 전통을 따랐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한과를 만드는 일이 너무 싫어서 도망 다니기도 하고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저희 집안으로 시집오신 할머니께서 당신 시어머니께 배운 한과를 저한테 알려주셨고, 그렇게 구전으로 배워온 것이 5대입니다. 6·25때 자료가 없어져 한과의 역사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릉 단오제에 한과가꼭 쓰였던 것을 보면 한과는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예로부터 전통 예식, 제사 음식에는 늘 한과가 있었다. 한과가 놓인 이유는 만드는 과정에서 반죽을 기름에 넣으면 조그맣던 것이 순식간에 몇 배나 크게 부푸는데 조상님께 살림이 흥하도록 도와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최 명인은 이러한 풍습이 있었기에 오래도록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편, 1960년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제조 기술 전수에 고비를 겪기도 했다. 보릿고개 시절 양곡관리법으로 쌀을 이용한 모든 제조행위가 금지되었는데, 당시 청년이었던 최 명인은 한밤중 과줄을 만들어 등짐에 지고 상점에 팔거나 물물교환을 하는 등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전통 기술을 지켰다. 그렇게 한과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명인. 스스로 선택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숙명이라 여기며 전통을 지켜왔기에,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3호로 지정되며 한과의 대표 장인이 될 수 있었다.
명인과 한과마을, 더불어 함께 살아가다
한과 명인으로 지정된 이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장 먼저 전통 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명인’이란 타이틀에 무게감을 느꼈다. 어렵게 얻은 명인의 자리이기에 감회가 새로웠지만, 명인으로서 제조 과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함을 기해야 했다. 그의 이러한 마인드가 명인의 자리를 더욱 빛나게 했으리라. 최 명인의 갈골한과로 인해 사천면 노동중리가 한과 마을로 발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친척 몇 집만이 한과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60가구가 한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한과 마을에서 만든 한과는 대부분 직거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된다. 수공업으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한과는 판매할 수 있는 물량이 한정되어 있어 백화점 등 대량으로 납품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1만 개 이상을 주문하면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죠. 저는 혼자 잘 사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저의 자부심이에요.”
최봉석 명인은 한과체험전수관을 설립하여 전통 먹거리를 지키고 후대에 전승하여 백 년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 현재 2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한과체험전수관에서는 명인에게 한과 이야기를 듣고, 한과 제조 체험을 할 수 있다. 요즘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한과박물관과 체험관을 짓는 것이다. “저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전통한과 제조 비법을 물려받았습니다. 이 전통 기술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고유의 전통식문화를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저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과체험전수관’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강릉을 대표하는 한과박물관과 체험관을 짓고 싶습니다.” 강릉을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음식인 한과를 알리고,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우리의 것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는 최봉석 명인의 목소리에서 진중함이 묻어난다.
옛날에는 한과를 배낭에 넣어 다니거나 기차에 싣고 나가 팔곤 했는데, 세월이 흘러 전국으로 택배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때 명인은 우체국을 만났다. “처음에는 우체국과 타 택배사를 병행해서 이용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택배사에서 사고를 낸 거예요. 강릉시 국장님까지 오시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는 송장을 수기로 썼는데, 그 많은 배송 리스트를 직원들과 함께 밤낮없이 작업했죠. 그 후로는 우체국만 고집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당시 수많은 한과를 재발송했던 그때는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고. 그 사건 이후 최 명인은 전국망이잘 되어 있고, 택배의 안전성 또한 우체국이으뜸이라고 여기며 우체국쇼핑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라에서 운영하니까 이미 공신력이 보장된 판매 경로라고 생각하여 강원사천우체국의 문을 두드렸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우체국쇼핑이라는 판로를 개척한 최 명인은 기존 대비 곱절 이상의 매출액을 보며 고마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십여 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명인과 우체국은 믿음과 신뢰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것, 전통 그대로를 고집하다
갈골한과 명인이 만든 한과는 일반 한과와 차별되는 전통한과의 깊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부드러운 단맛을 위해 5대를 이어오는 자연발효 기법으로 명인의 손끝에서 30일간 정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성은 최 명인의 고집에서부터 시작된다. 까다롭고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행복하게 한과를 먹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전통을 고집하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 초 LA에 가서 시식과 판매를 했었고, 반응도 좋았어요. 이후 외국으로 수출할 때는 단가와 시간을 맞추기가어려워 기계를 사용했었죠. 그런데 손으로만든 그 맛이 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수익보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니까. 전통을 지키려면 기본은 그대로 두고 변화가 이루어져야 해요. 기본까지 흔들린다면 전통을 이어나갈 수 없어요.”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옛것을 버려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지켜야 하는 부분이있다는 최 명인은 전통을 제대로 전수한 뒤변화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켜야 할 것을 모르면 전통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오기가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처럼 전통을 강조하고 명인의 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최 명인이지만 그 뒤를 이을 자식들에게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자연스레 비법을 전수하고자 했다.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한과를 보고 들으며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온 것이 있으니 때가 되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강요하면 그 누구도 가업을 잇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몇 해 전, 아들 최형준 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업을 잇기 위해 강릉으로 내려왔다.전통한과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명인은 손수 만드는 전통 과정만을 고수해왔다. 점차 서구화되는 우리의 음식문화 속에서 150년을 변함없이 한결같은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배경으로 더욱 성장하려면 우리의 것이 필요해요. 우리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고집하며 전통을 이어 나가고자 합니다.” 그에게서 전통 한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을 지켜가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150년의 역사와 기술을 이어받아 전통만을 고집하며 기술을 전승시키고 우리의 것을 지키고자하는 최봉석 명인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뜻이 대대손손 이어지길 바라본다.
최봉석 명인( (주)갈골한과명인식품)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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