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아주 오래간만에 손편지를 썼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편지를 쓰면서 할머니가 더욱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어떤 분이실까, 어떤 걸 좋아하실까.’ 상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설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할머니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해주셨다. 10년 전에 산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아흔 한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자꾸만 늙은이를 뭣하러 보러 오냐고 말씀하셨지만, 9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쌓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깊을까. 마치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손녀가 된 마음으로 할머니를 마주 보고 앉았다.
할머니의 기억은 생생했다. 1927년 전라도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초등 공부를 마친 할머니는 1941년, 장장 1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경성여자사범학교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타지에서 4년간 공부를 하면서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편지를 썼다. 그때부터 편지 쓰는 일이 할머니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 시기에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으나 결혼 이야기가 오갔던 사람과도 오랫동안 연애편지를 썼다. 이 대목에서 할머니는 연애편지를 한 번에 20장이나 쓴 적도 있다며,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살포시 미소를 지으셨다. 할머니는 답장을 통해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을 때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고 하셨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지나온 할머니에게, “잘 지냅니다”라는 안부만큼 고마운 소식이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손편지는 살아있다는 증표와 같았다. 내가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기대를 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편지를 썼다.
할머니에게 손편지는 살아있다는 증표와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편지를 썼다.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손편지
그 당시는 38선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니 편지 또한 남북을 가리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한 반에 50명이 있었는데, 절반은 일본인, 절반은 한국인이었어. 이북에서 온 친구도 있었고, 동경에서 온 친구도 있었고 그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지. 이북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친구에게는 지금도 편지를 써. 항상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해. 늙어서 일본에 사는 동창 만나러 간 적도 있어. 아직까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깐.”
할머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얼마 전에는 중국도 갔다 오셨다. 편지로 맺어진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다. 손녀의 도움으로 중국에 있는 조선족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았고,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여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둘 다 한국어를 쓰니 소통에 문제가 없었으며 국적을 불문하고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여행을 가서도 할머니의 편지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편지를 부치기 위해 어디를 가든 우체국이나 우체통을 찾았다.
“시골에서는 우체국이 귀해. 아까 제주도 할머니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이장한테 편지 붙여 달라고 부탁했는데 편지 왔냐고 전화가 왔어. 나는 집 근처에 우체통도 있고, 문방구에서 우표도 쉽게 살 수 있으니깐 좋은데 그 할머니는 그렇지 않으니깐. 그래서 우체국이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우표를 보내주기도 해.”
할머니의 편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중국과 일본까지, 나이와 직종을 불문하고 여러 대상에게 전달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할머니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그 감동은 답장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거의 대부분 편지로 답장을 준다고 한다. 피로사회라고 일컫는 이 시대에, 먼 곳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손편지는 ‘나와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랑의 메시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이다.
할머니에게 손편지는 ‘나와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랑의 메시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이다.
Profile
장형숙
1927년 生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남
1945년 경성여자사범학교 졸업
1945 ~ 1955년 해남에서 초등학교 교직생활
특별한 편지지 위에 적힌
우리 이야기
할머니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실까. 할머니는 일간지 신문 애독자다. 할머니는 신문을 읽다가 고마운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신다고 하셨다.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가 있으면 따로 모아 두었다가 스크랩을 하신다. 그러곤 그 신문을 들고 아파트 관리소에 가서 복사를 맡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스크랩은 특별한 편지지가 된다. 할머니는 교사에게는 교사와 어울리는, 젊은이에게는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사 뒷면에 편지를 쓰신다.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써. 조금 전에 어떤 중학교 교사에게 편지를 썼는데 은퇴한다고 하더라고. 나도 교직 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공감이 갔어. 그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사 뒷면에 편지를 썼지. 매일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데 손이 떨려서 많이는 못 써. 그냥 ‘당신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고마웠다’라고 말하고 싶었어.”
할머니가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만큼,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검정고시를 선택한 청소년부터 세월호의 아픔을 겪은 젊은이, 봉사활동을 하는 목사님, 수녀님까지 그 이야기들은 각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의 친구, 나의 부모님, 나의 선생님, 결국 우리 삶의 이야기기도 하다.
“살아있는 것도 고맙고, 살아남은 것도 고맙고. 우리가 만날 수 있잖아.”
할머니는 매일 손편지를 쓰면서 ‘설렘’이라는 마음의 선물을 동봉하신다. 편지 속에는 편지를 쓰면서 느끼는 설렘, 편지를 기다릴 때의 가벼운 긴장과 삶의 온기가 가득가득 담겨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그 자체로 특별하다는 것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오늘도 떨리는 손으로, 특별한 편지지 위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실 것이다. 앞으로도 그 편지를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답장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