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도토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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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명인에게 도토리묵은 운명과도 같다. 예로부터 도토리묵 주산지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 판교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져온 도토리묵 연구와 제조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그런 그가 아버지를 인생의 거울 삼아 도토리묵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 건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었다. 1970년대 초 도토리 수집상을 시작한 김 명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토리를 수집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다.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었어요.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일대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돌아다녔으니께. 전국에서 수집한 도토리를 판교로 가지고 와서 도토리묵 판매처에 공급하는 방식이었죠. 그때 도토리 팔기도 참 많이 팔았지.”
하지만 그가 도토리 판매에 재미를 보는 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매한 도토리 양과 판매한 도토리 양 사이에 차이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김 명인은 다량의 재고를 떠안아야 했다. “1980년대 들어 도토리묵이 대중화되면서 여기저기서 도토리묵 생산에 뛰어든 게 화근이었지.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 도토리묵이 시중에 판매되기까지 혔어. 시장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니께 ‘도토리묵은 판교’라는 이미지도 점차 사라지더라고.”
김 명인의 고민은 날로 깊어갔다. “한 해에 풍년이 들면 수천 가마씩 도토리를 사들였어요. 문제는 도토리는 금방 썩어버려요. 금전적인 손해도 손해지만 이 귀한 도토리를 그냥 버려야 한다는 게 여간 속상한 게 아녔죠.” 김 명인의 삶에 운명처럼 다가온 도토리가 처음으로 그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준 시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된 그는 오히려 어지러운 시장 상황을 활용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대중화’에 의해 벌어진 이 뜻밖의 상황을 ‘김영근의 대중화’로 해결하겠다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렇게 ‘국내 최초 도토리묵가루 개발’은 시작되었다.
수만 번의 연구 끝에 탄생한 도토리묵가루
초기엔 가루가 아니라 물 전분이라고 해서 수분이 50~60% 정도 되는 습식 도토리 전분을 개발혔어요. 이걸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죠. 도매상인들이 도토리 전분이란 걸 처음 보는 터라 다들 신기해하면서도 판매에 있어선 반신반의허더라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도토리 전분을 이용해 일반 가정에서도 도토리묵을 쒀 먹을 수 있다는 소식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김영근의 대중화’ 전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습식 전분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묵을 쒀도 끈기가 부족하고, 생각보다 과정이 어렵다’는 소비자의 의견을 보완하는 그의 연구가 계속 이어졌다.이후 숱한 실험과 연구, 도전을 거듭한 끝에 수분을 뺀 건조 도토리묵가루 개발에 성공한 김 명인은 1977년 국내 최초 도토리묵가루 기계생산 방법을 개발해 정부로부터 그 기술을 인정받아특허를 보유하게 되었다. “살면서 묵을 얼마나 많이 쒀봤것어요? 헌디 도토리묵 특유의 맛과 영양을 살리면서 과정까지 단순화하는 게 참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요.” 도토리묵가루에 물을 붓고 끓이면 묵이 완성되는 이 간단한 기술에 수천, 수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김 명인의 지난한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김 명인의 판로 개척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 도매상을 중심으로 판매에 열을 올렸던 그가 이번에는 새로 개발한 도토리묵가루의 판매처로 우체국을 택한 것이다. “우체국 에 우편주문판매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거여. 그 당시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수산물이나 주류가 대부분이었는디 도토리묵가루가 제품 면에서 차별화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 그때 전국에 우체국이 한 2천 8백 개 정도 됐어요. 우체국 한 곳에서 한 개씩만 사가도 하루에 2천 8백 개가 팔리는 거니께 승산 있는 전략 같았죠.” 도토리묵가루에 대한 상품 가치를 놓고 이견을 가진 우체국 담당자를 2년여간 설득한 끝에 김 명인은 우체국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1990년 8월, 도토리묵가루가 우편주문판매용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판매를 시작허긴 혔는디 하루에 10개도 팔기 어렵더라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것다 싶어서 전국 우체국을 돌며 홍보에 나섰어요.” 각 우체국마다 김 명인이 직접 제작한 팸플릿을 비치해놓는가 하면 소비자들이 볼 수 있도록 도토리묵가루 견본 상품을 진열해 놓는 등 그는 다각도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김 명인의 끈질긴 노력 덕분일까? 대대적인 홍보 전략 이후 우편주문은 성수기 기준 하루 수천 개에 달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번 구입해 맛본 소비자가 다시 찾는 등 높은 재구매율과 입소문까지 퍼지면서 도토리묵가루는 ‘우편주문판매 상품 전국 2위’라는 매출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서 ‘김영근의 대중화’ 전략 성공은 물론 ‘도토리묵은 판교’라는 옛 명성까지 되찾은 김 명인이었다.
도토리 발효 입증시킨 국내 1호 명인
그저 도토리묵이 좋아서, 가업을 잇기 위해서 한평생 도토리묵 연구에만 몰두한 김 명인에게 ‘명인’ 타이틀이 주어진 건 뜻밖의 일이었다. 조선시대 <시의전서>, <녹말수비법>에 수록된 방법의 원형대로 만드는 도토리묵 제조 비법을 3대째 전수받아 지키고 있는 그의 소식을 듣고 서천군 관계자가 먼저 연락을 해온 것. 2015년 10월, ‘서천군 무형유산 전승기록 도서-도토리묵 제조’를 통해 전통 도토리묵 제조 문헌과 과정을 입증한 김 명인은 우리나라 전통식품 명인 63호이자 국내 최초 ‘도토리묵 1호 명인’으로 지정되었다. “처음엔 명인이 뭐 별 건가 했었는데 받고 보니께 그게 참 대단허더라고. 그렇게 안 되던 홈쇼핑 계약도 명인 되고부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명인이다 하면 신뢰부터 하니께 ‘그동안 허투루 살진 않았구나’ 싶더라고.” 식품명인 심사위원들은 유독 김 명인을 집중했다. ‘도토리를 발효시켜 묵을 쑨다’는 걸 국내 최초 입증해 보인 이가 바로 김 명인이기 때문에 식품명인 심사위원들은 유독 그에게 집중했다.
“심사할 때 각 후보들한테 발표 시간이 20분 정도 주어졌는디 한 시간 넘도록 나한테만 질문이 쏟아지는 거여. 발효 과정을 대체 어떻게 알아냈냐는 거였지.”
1980년대 그때만 해도 도토리를 수확해 껍질을 벗기고 물에 불린 뒤 분쇄와 탈수, 건조 과정을 집 안에서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던 시절이었다.
“도토리를 빻아 놓곤 깜빡 잊은 다음날 가보니 가을이라 제법 날이 따수워 쉰내가 아주 진동을 허더라고. 그 가루에 손을 대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버리긴 아까워서 묵을 한번 쒀봤지. 헌디 묵이 아주 찰기 있고 쫀득허니 맛도 좋은 거여.”
김 명인의 도토리묵 인생과 도토리묵의 역사까지 단번에 바꿔놓은 우연이었다. 특히 도토리 껍질을 벗긴 뒤 수차례 물을 부어 떫은 맛을 우려내는 작업은 고될 뿐 아니라 검게 우러난 물이 강을 오염시킬 수도 있는데 발효로 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이로써 도토리 발효 연구에 착수한 김 명인은 최적의 발효 시간과 과정을 확립할 수 있었다.
소년 김영근이 아버지를 따라 들어섰듯 이제 김 명인의 아들이
그의 발걸음을 쫓고 있다. 4대로 이어지는 도토리묵에 대한 신념과 철학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을 고수하고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데 중점을 둔다.
한평생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묵을 빚다
쉼 없이 연구를 거듭하는 김 명인은 신제품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다각도로 보완하고 개선하는 데 주력한다. 몇 해 전 새로 출시된 120g짜리 소량의 도토리묵가루는 소비자들의 피드백이 반영된 그의 오랜 연구가 빛을 발한 결과물.
“하나같이 물 양 맞추기가 어렵다는 거여. 500g, 1kg짜리 가루를 한번 쒀 먹기에 양도 많다 허고. 그래서 가루 한 봉지의 양을 대폭 줄이고 그 가루에 딱 맞는 비율을 찾으려 애를 썼지.”
‘도토리묵가루 120g과 물 1ℓ’라는 이 황금 비율을 찾아내기까지 김 명인의 하루는 길고도 길었다.
그는 묵을 넘어 곡주와 막걸리, 다이어트 식품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3년 전 출시한 국내 최초 도토리로 빚은 ‘판교 도토리곡주’ 는 도토리에 함유된 탄닌 성분이 몸에 좋다고 하여 제철 별미와 건강식으로 더욱 각광받는 제품이다. 도토리 막걸리와 식이섬유를 첨가한 다이어트 식품 개발을 마치고 올 봄 신제품 출시도 앞두고 있는 상황.
“막걸리가 출시되면 우체국쇼핑에 막걸리와 묵 세트 상품을 제안혀볼 참이어요. 거래처가 아무리 늘었다 해도 도토리묵가루가 성공하게끔 무대를 만들어준 우체국쇼핑은 항시 특별허지.”
소년 김영근이 아버지를 따라 들어선 것처럼 이제 김 명인의 아들이 함께 걷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데 중점을 두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것이다. “40년간 단 한 번도 도토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 없이 경험에 따라 눈 짐작으로 연구허는 거여. 어릴 때부터 전국 돌아다니며 도토리를 직접 봐온 게 전문 지식보다 더 중헌 거지. 아들 세대는 우리와는 다르겄지만 그렇대도 전통은 전통으로 보전될 때 가치 있는 거 아니겄어요?”
‘도토리묵은 곧 내가 살아온 과정’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경험이 곧 힘’이 되는 삶을 마주한다.
김영근 명인( 농민식품 )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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