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상수밴드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성남우체국 지하 주차장에서 흥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귓가에 맴도는 선율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조그만 공간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창고를 개조해 만든 상수밴드의 연습실이다. 성남우체국 집배원으로 구성된 상수밴드는 2000년에 결성했다. 창단 멤버인 이상수(기타) 주무관을 필두로 정병석(드럼)·안천용(기타)·김두섭(베이스)·김성섭(보컬)·한진우(기타) 주무관이 소속돼있다. 이상수 주무관은 창단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우체국 내 집배팀별 노래경연대회에서 기타와 키보드를 이용한 연주가 직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어요. 그때 국장님께서 밴드를 하나 만들어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에 시작하게 됐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서 건강한 취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잖아요.”
취미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주변의 관심을 받으면서 합류하는 인원도 늘었고 여기저기 밴드를 부르는 요청도 많아졌다. 우체국 대회의실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상수밴드는 우체국에서 주관하는 행사는 물론 직원들 결혼식, 가족 돌잔치, 칠순잔치, 퇴임식 등 각종 경조사로 무대 영역을 넓혀갔다. 부름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는 그들이었다. 특히 이상수 주무관은 공연 중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해 결혼에 성공하기도 했다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업무와 밴드 생활을 병행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상수밴드는 업무가 마무리되면 한 데 모여 연습을 시작한다. 특히 공연을 앞둔 날이면 지친 몸을 이끌고 자정까지 연주에 매진한다. 정병석 주무관은 이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어요? 초반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으니 학원도 다니고, 개인 연습도 하며 배워나갔습니다. 구성원 모두 열정이 대단합니다. 또 같은 업무를 하는 집배원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죠.”
관객에게 최고의 칭찬 들을 때 뿌듯해
상수밴드는 업무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배달 구역에 있는 장애인 생활시설 ‘우리 공동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장애우들과 영화도 보고 쇼핑몰도 구경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상수밴드는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유로 ‘나눔의 즐거움’을 꼽았다.
“무대에 있다 보면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반응이 보여요. 이들의 눈에 즐거움이 가득한 게 느껴질 땐 보람을 느낍니다. 관객에게서 ‘멋지다’, ‘최고다’,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어서 고맙다’는 칭찬을 들을 때 힘이 나요. 또 저희와 함께하고 싶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과 소통하고 단합하면서 실력도 쑥쑥 늘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동료들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이상수 주무관은 무대에 악기를 옮기기 위해 우체국 직원 20~30명이 도와준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직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것 같아요. 업무 관계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진정한 공동체가 됐음을 느껴요. 밴드공연이 있을 땐 많은 직원이 오셔서 축하해주고 손뼉 치며 환호해주시죠. 다시 한번 도움 주신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어요.”
이렇게 상수밴드의 열정과 주변 동료들의 도움이 더해져 큰 성과를 낳기도 했다. 이들은 성남시 근로자가요제에서 2004·2005년에 인기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현재 상수밴드는 우체국 청사가 이전돼 연습실이 옮겨진 데다 코로나19로 활동이 중단되면서 개인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함께 모이지 못해 아쉽다는 이들은 부지런히 실력을 갈고닦아 무대에서 제 기량을 펼쳐 보이겠다는 각오다.
“목표는 전국 우체국을 투어하며 무대에 서고 싶어요. 틈틈이 버스킹도 하고 싶고요. 기회가 된다면 전국의 우정인들을 초대해서 음악으로 함께 교류하며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상수밴드는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요!”
미니인터뷰
이상수 주무관
저에게 밴드란 러브레터와 같아요. 사랑을 듬뿍 담아 편지를 쓸 때 여러 번 고치고 다시 쓰는 것처럼 밴드 연습도 오랜 시간 애정을 담아 한 곡을 완성해내죠. 이렇게 진심을 담은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마음이 러브레터를 쓰는 사람의 마음과 같지 않겠어요? 음악은 옛 기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행복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정병석 주무관
우체국에 들어왔을 때 업무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늦은 시간 업무 끝내고 정신없이 드럼 연습을 했었는데 그때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밴드는 제 휴식처이자 에너지를 주는 발전소입니다. 제가 밴드 때문에 우체국을 다닌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군인 위문공연처럼 우정인들을 위한 위문밴드를 만들어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어요.
안천용 주무관
다들 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을 겁니다. 소소하지만 지금 그 상상이 현실이 됐어요. 로망이었던 밴드 활동,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는 실력을 더 키워서 많은 공연을 하고 싶어요. 무대가 끝나면 밀려오는 쾌감과 보람, 행복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습니다.
김성섭 주무관
동료들과 함께 밴드 활동을 10년 넘게 했기 때문에 가족 같아요. 제가 팀에서 유일한 메인보컬인데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종종 듣곤 합니다. (웃음) 노래 잘한다, 잘 웃는다는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요. 가족 같은 동료들과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요.
김두섭 주무관
저에게 밴드 동료들은 형제와 다름없죠. 음악을 꿈꿨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 도와가면서 그 꿈을 이루고 있거든요. 음악은 사람 간의 벽을 허물어주면서 더 애틋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제 업무 신조가 ‘아무리 바빠도 서두르지 말자’인데 기본을 지키면서 서두르지 않고 동료들과 차근차근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을 걸어나가겠습니다.
한진우 주무관
밴드에 갓 들어온 막내 한진우입니다. 우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우체국에 마련돼있어 좋았어요. 음악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선배님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에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밴드 활동을 통해 단합력을 키우고 힘든 상황이 와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동료가 있기에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