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우리 동네 집배원 아재
어릴 적 집배원 아저씨가 배달을 올 때면 늘 반가웠다. 오늘은 어떤 편지가 왔을지 궁금해서, 신발도 안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 아저씨를 반긴 날도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안의우체국 김현규 집배원의 모습을 보며 추억의 집배원 아저씨를 생각했다. 김현규 집배원은 1980년부터 지금까지 고향에 머물면서 집배 일을 하고 있다. 37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을의 고목처럼 그 자리를 지키며 구석구석 편지를 전달했다. 명절 때 고향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김현규 집배원에게 “아재도 많이 늙었네”라고 인사를 건네면, 그는 “아니다, 내 동안이다”라며 웃으며 그들을 반긴다. 이런 정겨움 때문에 오랜 시간 집배 일을 할 수 있었다. 1980년대만 해도 집배원들은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걸어서 배달을 했다. 객지에서 보낸 자식들의 편지와 약 봉투를 전하며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글을 쓰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신해 편지를 써준 적도 있었다. 자식들이 보낸 약봉지를 건네며 “아줌마 오늘 약이 왔네요. 약 먹으니깐 어때요?”라고 물으면 “시골 약보다 도시 약이 더 잘 듣는다”며 일상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우체국 집배원 유니폼을 입고 편지를 전달할 때면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 당시 어린이들의 꿈 1순위는 대통령도 과학자도 아닌 집배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손쉽게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때는 전화기가 마을 이장 집에 딱 한 대 있었다. 전화가 오면 끊길세라 저쪽 끝 집까지 달려가 소식을 전달했으니, 편지 한 장이 전해주는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은 더 애틋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전하는 집배원의 모습은 반가움 그 이상이었으리라. 우리 마을 집배원 아재, 김현규 집배원은 여전히 시골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이 좋기만 하다.
집배복을 입은 슈퍼맨
뜻하지 않게 신문에 난 적이 있다.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출근길이었다. 불기둥이 솟아오른 집을 발견한 그는 빠르게 그쪽을 향해 갔다. 집안에는 아주머니가 야간 근무를 끝낸 뒤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김현규 집배원은 급히 아주머니를 깨웠고 119에 신고해 귀한 목숨을 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경운기에 깔린 주민도 구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김현규 집배원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경운기를 들어 올렸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생사를 오간 분들이 불편할 수도 있다며 기사화되는 것을 말렸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김현규 집배원도 죽음의 위기를 경험했다. 경운기와 부딪혀 사고를 당한 것이다. 큰 수술을 했고 재활을 위해 2년을 쉬어야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졌지만 가장으로서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의 헌신으로 1남 2녀의 자녀들 모두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했다. 아내 임경숙 씨는 힘든 고비마다 묵묵히 인내하고 가족을 보살핀 남편이 고맙기만 하다. 오래간만에 고향 근처에 있는 한결고운갤러리에서 연애하듯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름이 깊게 파이고 손은 거칠어졌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에 있어 줘서 감사하다.
김현규 집배원은 그의 가족에게도,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두 명에게도, 자녀가 보내준 약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할머니에게도, 생명의 은인이자 슈퍼맨이었다. 사건이 발생하면 유니폼을 갈아입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슈퍼맨처럼, 김현규 집배원도 집배복을 입고 편지와 약 봉투를 가방에 넣은 채 마을로 향한다. 정겨운 미소와 함께.
사랑하는 남편에게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어요. 참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어떨 때는 개그맨 같아요. 힘들어도 웃으면서 일하는 그를 보면 고맙고, 미안해요. 사랑해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