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른 아침 해뜰녘에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지으려고 방을 나서면서 무심코 눈길을 들어올리는데 마당 끝에 쭈뼛거리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쪽으로 비스듬히 등을 돌리고 선 여자는 머리와 옷 매무새가 꾸민 태라고는 나지않았다. 머리카락은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고, 옷은 두고두고 구겨진 것을 그대로 주워 걸치고 나온 듯했다. 그러나 떠돌이거지 같지는 않았다. 집안일과 농사일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농촌 아낙네들 가운데는 외모에 마음 쓸 틈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온 동네 아낙네려니 하고 나는 생각했다. 촌동네에서는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수시로 남의 집 울타리 안을 드나들어도 나쁜 생각만 품지 않았다면 별 달리 여겨지거나 흠 잡힐 일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
“아제.”
내가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얼굴을 마당 끝 아낙네 쪽으로 돌렸다. 눈길이 마주쳤다. 아낙네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제한테 말좀할게 있어서 왔대유.”
“저한테요? ”
나는 부엌문 앞에 멈춰서며 물었다.
“예. 저ㅡ”
아낙네가 다가왔다. 나는 기다렸다. 아낙네는 댓돌 앞에 멈춰서면서 부엌 안을 기웃기웃 들 여다보았다.
“아제, 아침밥 지을라구 그래유? ”
아낙네의 물음은 마치 한눈 파는 것처럼 여겨졌다.
'예.”
'남정네가 어떻게…. 쌀 끄내 놔유. 내 얼른 지어 줄 테니까유.”
'아니예요. 저한테 할 말이나 하세요.,,
“저一, 아제, 언제 짬 있을 적에 우리집 일 좀 해 줘유.”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자는 자꾸 주뼛거렸다. 무척 어려운 부탁을 한다는 태도였다.
“해드리지오. 낼 모레까지는 일을 맞춰놨으니까 글피나 일을 해드릴 수 있겠네요. 무슨 일 이지요? 밭 김매 주라구요?”
“그 안에 다른 집이서 일해 달래는 청이 들 어오믄 그집 일부터 먼저 해주구 우리집 일은 그 뒤루 미뤄두 괜찮대유.'
“글피에 해드릴께요. 집이 어디지요? 집으루 갈까요? 아니면 밭으루 곧바루 갈까요? ”
'근데 아제, 굉장하게 넓지두 않은 밭, 나 혼 자서래두 놀며쉬며 매두 되련만 요근래 기운이 쭉 빠져가지구 엄두가 안 난대유. 나 혼자 김을 매다간 다음 이랑으루 넘어가기 전에 지나온 이랑에 잡풀이 자라 무성할 거 같대유. 그래서 아제한테 청을 하는 건데, 저… 아제. 미안스럽지만 품삯은 나중에 꼭 드릴 테니까 외상 일 좀 해줘요.”
아낙네의 눈과 얼굴 표정에는 겸연쩍음과 불안이 물살을 짓고 있었다. 나는 문득 아낙네의 얼굴이 핏기 없어 창백하고, 여위어 볼이 훌쭉 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밉지 않은 얼굴이었다.
“해드릴께요. 집이 어디지오?'
'글피 아침에 내가 아제를 데릴러 올래유'
'그럼 그렇게 하세요.”
“고마와유. 아제.”
나는 아낙네가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는 부엌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쌀독 뚜껑을 열고 플라스틱 바가지로 쌀을 떠내는데 누군가 채가듯 내 손에서 바가지를 뺏어갔다.
'남자가 궁상맞게 부엌일을 한대유? 아궁이에 불이나 지펴유.'
아낙네였다. 내가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아 낙네는 쌀 담긴 바가지와 빈 바가지를 집어 들고 마당가 우물로 휭하니 갔다. 별 수 없이 나는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 붙이기를 시작했다. 나무에 불이 채 옮겨 붙기도 전에 아낙네는 쌀을 일어다가 솥에 안쳐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아낙네를 ‘정선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낸 것은 그 집으로 일을 해주러 가기 전이었다. 호칭을 알기 전에는 그냥 마을 아낙네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더니 호칭을 알고 나니까 다른 아 낙네들과 구별되어 보였다. 그것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 아낙네가 그 날 이른 아침에 나를 만나러 왔다 간 뒤로 나는 그 아낙네에 대해 궁금해했고、그 결과 그 아낙네가 정선댁 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그 아낙네가 마을 아낙네들과 구별되지 않는 한 사람에서 구별되는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선댁은 불쌍한 여자여.’’
“불쌍한 여자들 가운데서두 불쌍한 여자는 젊은 과부여.”
“젊은 과부들 가운데서두 그 중 불쌍한 젊은 과부는 아이들 딸린 젊은 과부여. 그러니까 정선댁은 불쌍한 여자들 가운데서두 그 중 불쌍한 여자지.'
“불쌍한 여자를 정성껏 도와주라는 말 옆에는 불쌍한 여자를 조심하래는 말이 늘 따라 댕 긴대지.”
“불쌍한 여자는 양처럼 순하기두 하구 살쾡이처럼 표독스럽기두 하대는 얘길 테지.'
마을 사람들은 정선댁이 입에 오른 김에 과부에 관해 이렁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 댔다.
“욕심 품지 않구 깨끗한 맘으루 도와주면 불쌍한 여자가 양처럼 순해진다는 말씀이신가요? ”
잠자코 듣기만 하던 내가 물었다.
“그런 얘기가 아니여. 남자가 욕심을 품지 않았대서 여자가 양처럼 순해지는 것두 아니구, 또 남자가 욕심을 품었대서 여자가 살쾡이처럼 표독스러워지는 것두 아니야 그와 반대일 경우 두 있어. 여자 생각에 남자가 욕심을 품어 주었으믄 하는데, 남자가 욕심을 품지 않아두 여자는 살쾡이가 되는 게여. 알아 듣겠나? ’’
“알 것두 같구 모를 것두 같은데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일을 할 때 일꾼들은 서로 농담이나 싱거운 소리를 주고 받기 일쑤였다. 농담이나 싱거운 소리가 힘든 일로 인한 피로를 잊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정선댁에서 비 롯된 동네 사람들의 과부 이야기도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냥 해본 소리여. 근데 상처를 해 흘아비가 된 사람 보구는 여편네 잡아 먹은 늑대란 소리를 안하는데, 남편 죽어 과부된 여자 보구는 왜 서방 잡아 먹은 여우라는 소리를 할까? ”
일꾼들은 과부 이야기를 멈출 듯하더니 다시 입에 담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믄 오뉴월에두 서리가 하얗게 내린단 말 있잖아? 여자는 맘 속에 몸 속에 독이 들어 있는데, 그 독이 어떻게 하다가 뿜어 나와 사람한테 뿌려지믄 그 독을 맞은 사람이 죽는대는 게여.”
“그럼 정선댁 남편두 정선댁이 뿜어 낸 독을 맞구 죽었대는 게여? 정선댁 남편은 읍내 술집 안방에서 노름하구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오다가 웅덩이에 빠져 죽었는데두?'
'허구한날 노름타령 술타령이니까 정선댁 가슴 속에 한이 서렸구. 그 한이 독이 돼가지구 남편한테 끼얹어진 걸 테지.'
'그렇더래두 한번 독을 만든 여자는 툭하믄 다시 독을 만들어 낸다던데? ”
“그래서 동네 남자덜은 정선댁 일은 되두룩 맡지 않을라구 하구, 또 그래서 정선댁은 타관에서 온 사람덜 찾아 댕기믄서 일해 달라구 청을 넣군 하는구만? ”
“정선댁네 집에서 귀신이 터 잡구 산대는 소리 들었나? ”
“두 아이 데리구 아낙네 혼자 사는데다가 동네 사람덜은 출입을 안해 집안이 휑뎅그레 비어 보여서 퍼진 소문일 게여.'
“어쨌든 재수 없는 여자라구 하는 소리 들을 만하지 뭐.”
'불쌍한 여자이기두 해.”
동네 사람들의 말이 심심풀이 삼아 함부로 뱉아 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댁네 밭 김매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일해 주러 오지는 않더라도 주인 말고 두세명은 올 것이라던 내 짐작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일 해 주러 온 일꾼은 주인인 정선댁 말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마을에서 삼마장쯤 떨어진 산밑 밭이었다.오 백평 밭에 반은 콩이, 나머지 반은 고추. 깨, 옥수수. 호박, 오이 따위가 심어져 있었다. 나와 정선댁은 콩밭고랑 하나씩을 타고 앉아 김을 매 나갔다.
'아주머니는 기운이 없다면서 왜 밭고랑은 타구 앉아서 호미질을 하세요? 집에 들어가 쉬시다가 점심밥이나 가지구 나오세요.’’
“이눔으 호미질 언제 면하나 싶지만 막상 호미자루 손아구에서 놓구 지내는 날이 한 달만 돼두 다시 호미자루 움켜쥐구 싶은 생각이 우러난대유. 호미질두 팔잔가봐유.”
“그래두 몸이 불편하구 기운이 없으면 쉬어야 돼요. 쉬는 동안 상한 몸두 아물구 지친 기운두 되살아 나는 거예요. 쉬는 때를 놓치면 아물구 되살아날 기회를 잃어 병이 깊어지구 몸져 눕게 돼요.”
'거 보래유. 이렇게 일을 하니까 아제한테 그런 말을 듣게 되잖아유? 남한테서 내 몸 걱정 해 주는 말 들어본 게 언젠지 생각두 잘 나지 않는대유. 아제 말에 벌써 팔뚝에서 심이 솟구 쳐 오르는데유 뭐.'
정선댁은 호미자루 든 팔을 번쩍 들어 올려 보이며 웃었다. 얼굴이니, 목덜미니. 손이니. 햇 볕에 드러난 데는 살갗이 그을려 검었지만, 들어 올린 팔로 옷소매가 흘러내려 새로 드러난 속살은 희고 토실토실했다.
'정말 이렇게 일을 해두 괜찮으시겠어요? ”
나는 정선댁 속살에서 눈길을 피하며 물었다. 초희의 속살이 문득 눈앞에 떠올라 보였다. 보일뿐 아니라 부드럽고 매끄럽고 탄력 있는 살갗의 촉감이 내 살갗에 와 닿은 듯 느껴졌고,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살 냄새도 물큰 풍겨 오는 듯했다.
“일하는 걸 팔자루 타구났대유. 쉬지 않으믄 큰병 들어 자리보전하구 눕게 되겠구나 여기구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보믄 오히려 기운이 까부러지는 게 꼼짝달싹을 못하겠구. 억지루 몸을 움직여 일을 시작하믄 어디서 나는지 심이 솟구쳐 올라 일을 하게 되구 심든 줄을 모르게 된대유. 그러니 팔자지유 뭐. 그러구 보믄 사람한테 팔자가 증말 있는가봐유. 내가 정선땅을 벗어날라구 무던히 애를 썼지만 벗어나질 못하구 그냥 갇혀 살구 있지 뭐래유? ”
정선댁은 나와 나란히 김을 매 나가고 있었다. 나를 따라 오느라고 허겁지겁 손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보조를 맞추느라고 오히려 손놀림을 낮추는 꼴이었다. 그만큼 정선댁 일손놀림은 기계 같았다.
'여기가 홍천땅이 아니구 정선땅인가요? ” 나는 긴가민가해서 물었다.
'홍천땅이 맞대유.'
“정선땅을 벗어나지 못했다구 말하지 않으셨 나요?’’
“정선땅을 벗어났다는 게 겨우 홍천땅에 와서 살아보니까 그냥 정선땅 안에서 살구 있다는 생각이 든대유. 아제 정선 가 봤대유? ”
“아직 못가봤는데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치솟은 산봉우리들 한테 빙 둘러 쌔인 속에 갇힌 듯이 자리잡은 땅, 옹색하구 답답하구 좁은 땅이 정선이래유. 먹구 살아갈래믄 밭이 있어야 하는데 평지에는 밭 일굴 터가 없어서 산비알이나 산등성이에 끄적끄적 멍석만하게, 가마뙈기만하게, 보재기만하게, 손바닥만하게 밭을 일궈 놨대유. 그래서 밭에 뭘 심으러 갈래두. 김매 주구 소꿔 주러 갈래두, 거두러 갈래두, 밭에 가 닿는 데만 한나절씩 걸리기두 한대유.”
정선댁 이름은 김한순인데, 어릴 적에 동네 사람들이나 특히 아이들은 긴한숨이라고도. 그냥 한숨이라고도 불렀다. 어린 것이 때 없이 한숨을 포옥포옥 들이쉬고 내쉰대서 붙은 별명 이랬다.
“… 아침에 눈을 떠보믄 아버이 어머이는 벌써 집을 나가서 없군 했대유. 방안에서는 파리 떼가 윙윙 날다가 내 얼굴이나 팔다리에 달라 붙구, 쫓으믄 잠시 풀썩 날아 올랐다가 다시 달라붙군 했대유. 짜증이 나서 징징 울믄서 방문을 밀어 열구 문지방을 타 넘어 마당에 나와 손등으루 눈을 비비믄서 눈길을 뻗어 보내느래 믄 해는 어느새 동쪽 산등성이 위루 한발이나 솟아 올라 있군 했대유. 다섯살보다 더 어릴 적부터 그랬겠지만 시방 생각나는 건 다섯살 적 일이래유.”
한순이는 징징거리면서 어머이, 아버이를 찾아 동네길을 두리번거리고 이웃집 안을 기웃거렸다.
“느 어머이 아버이 저기 산비알 밭으루 김매러 갔다. 부엌에 밥상 차려 놨으니까 밥 먹구 애덜이랑 놀라구 일르구 갔다.”
이웃집 할머니가 맡아 놓고 하는 소리였다. 이웃집 할머니는 몇번 한순의 손을 이끌어 한 순네 집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부뚜막에 차려 놓은 밥상 앞에 한순이를 앉혀 주었다. 밥상을 덮은 베보자기를 들치면 어른 주발에 강냉이와 조와 감자를 섞은 밥이 그득 담겨 있었다. 김치 보시기와 된장 종기도 함께 놓여 있었다. 한순이는 이웃집 할머니도 잊어버리고 어른 숟 가락을 집어 들어 밥그릇으로 가져갔다.
“즘심꺼정 먹어야 한다. 먹을 만치 먹구 나서 상보루 상을 잘 덮어 놓구 나가 놀거라.”
이웃집 할머니는 그렇게 이르고는 한순이 곁을 떠나갔다. 이웃집 할머니가 한순이를 부엌 부뚜막 밥상 앞에 끌어다 앉혀 준 것이 몇번인 지는 기억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한순이는 아침에 눈을 뜨고 어머이 아버이가 나가고 없는 사실을 깨닫고는 칭얼거리다가 밥을 찾아 부엌으로 가곤 했다. 부뚜막은 아궁이 앞에 서면 어린 한순이로서는 올라가기 어려웠지만, 부엌 문지방을 바로 넘어 들어간 자리에 서는 높낮이 차이가 없이 부뚜막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순이는 배불리 먹은 뒤 상보로 덮고는 부엌에서 나오곤 했다. 상보를 덮지 않으면 파리떼가 몰려 든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주발 뚜껑도 잊지 않고 덮었다. 주발 뚜껑도 상 보도 덮지 않았다가 쥐한테 밥을 몽땅 빼앗겨 버린 사실을 알고 난 뒤였다. 똥이 마려우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눟고는 워리워리 하고 동네 개를 부르면 되었다. 동네 개들은 한순이가 눈 똥을 깨끗이 핥아 먹고 나서 한순이 엉덩이와 똥구멍까지 말끔히 핥아 주곤 했다. 밥을 먹고 똥을 누고 나면 한순이는 같이 놀아 줄 동무를 찾아 나섰다. 한순이 또래의 조무래기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조무래기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금세 싫증이 나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곤 했다.
정선댁의 기억 속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혼자 남아 무엇을 기다리는 심심하고 따분한 시간들이었다. 높은 산봉우리에서 건 너편 높은 산봉우리 사이의 좁은 하늘을 해는 한없이 느릿느릿 지나갔다.
'우리 어머이 언제 온대유? ”
“해 넘어가믄 온다.'
“해가 언제 넘어가는데유? ”
'세지 뭐. 저쪽 산봉우리까지 기껏 두발밖에 더 남았니? 어물어물하다 보믄 해떨어질 텐 데 뭘.’’
이웃집 할머니는 산봉우리와 그 위로 떠 있는 해를 가리켰다. 그러나 두발밖에 남지 않아 금세 산봉우리 위로 떨어져 내릴 것이라는 해는 쳐다보고 또 쳐다봐도 그려 붙인 듯 그 자리에 멈춰 있을 뿐이었다.
정선댁 기억 속에는 긴긴 기다림 끝에 이윽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뭇거뭇한 그림자 덩어리처럼 돌아오는 어머이 아버이를 맞이하던 일이 남아 있었다. 그 무렵에는 한순이는 주발 속에 남은 찬밥을 긁어 먹은 식곤증과 기다림에 지쳐 졸음이 눈꺼 풀을 찍어 누르기 일쑤여서 반가움도 원망도 물에 물 탄 듯 희미해져 있었다. 어머이 아버이가 돌아온 것을 알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리는 일도 흔했다. 그럴 경우 어머이 아버이가 집에 돌아왔었다는 사실은 이튿날 아침 부엌 부뚜막에 새로 차려진 밥상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한순이가 동생을 돌보게 된 것이 몇살 때부 터인지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는 없었다. 동생 한철이가 한순이보다 여섯살 아래인 것으로 미 루어 일곱살 때부터 동생을 돌보아 주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 뿐이다. 어머이는 한철이를 낳고도 겨우 한 이레 동안 몸조리를 했을 뿐이라고 뒤에 말했다.
“농삿일 해야지, 낭구 해와야지. 나물 뜯으러 댕겨야지. 또 장날에는 장 보러 가야지, 손이 열이 있대두 모자랄 지경이랬어.”
그러나 어머니는 한가해져서 지난날을 돌아 보며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하던 무렵에도 똑같이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어쨌든 동생 한철이 돌보는 일은 어느 때부 터인가 한순이 몫이 되어 있었다. 한철이가 젖 먹이 어린아기 때도 그랬다. 어머이는 아침에 집을 떠날 때와 밤에 집에 돌아와 한철이한테 젖을 물릴 뿐 낮에는 한순이한테 떠맡겨 놓았다. 일터가 집에서 가까우면 낮에도 한번쯤 들러 한철이한테 젖을 물렸지만, 일터가 멀면 강냉이 볶아 빻은 가루를 물에 개어 한순이가 한철이 허기를 메워 줘야 했다.
한순이가 초등학교도 변변히 마치지 못한것도 한철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졸졸 따라다니는 한철이를 떼어 놓고 학교에 갈 수 없어 데리고 다니다 보니, 십리길 학교에는 두시간이 끝난 뒤에야 가 기도 했고, 나마 교실 안을 한철이가 휘젓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교실에서 내쫓기기도 했다.
한철이는 한순이에게 애물이었다. 데리고 다녀도 떼어 놓고 다녀도 늘 걱정거리였다.
한순이 자기가 무엇에 꽁꽁 묶이고 갇혀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몇 살 때부터였는지 뚜렷한 기억은 없다. 처음에는 한철이만 떼어 놓을 수 있으면 훨훨 날아 다닐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언젠가 어머이 아버이가 한철이를 데리고 외가갓집에 다니러 가서 이틀 밤을 묵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첫날은 생각대로 날개가 돋아난 것 같기도 했다. 훨훨 날아다니듯 동네길을 뛰어다니고 동무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다시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어 왔다. 부모와 동생을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적적함이 그 까닭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어릴 적 내내 혼자 시간을 보내며 견뎌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가슴을 옥죄어 오는 답답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젖가슴이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그 답답함은 더해 왔다. 한순이는 어머이 아버이가 일 하러 나간 집살림을 맡아서 해야 했을 뿐 아니라, 어머이 아버이를 따라 일을 하러 다녀야 하기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집 안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나물을 뜯고, 밭에 가서 김을 매고, 아버이가 바쁠 때는 땔나무를 해 오기도 했다 일할 때. 또는 쉬면서 마을 사람들이 불러제끼는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 한순의 가슴 속으로 한처럼 아릿아릿 스며 들었다. 치솟아 오른 험한 산들이 옥죄이듯 둘러싼 산속 마을의 초라한 집 나직나직한 지붕들. 수 없이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오르는 산길 고갯길, 파고 들고 헤쳐 들어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산 갈피들, 산 중턱 급한 경사에 일구어 놓은 밭이랑을 따라 김을 매다가 흘깃 쳐든 눈길에 잡히는 수많은 산줄기들과 산줄기 사이의 골짜기를 헤집고 나간 오솔길들이 막막하고 아득한 느낌을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슴 속에 매달아 주었다.
저 첩첩한 산줄기들을 넘고 또 넘으면 이 답답한 산골 동네를 벗어날 수가 있을래나. 산줄기 틈새를 힘들여 비집고 뻗은 오솔길을 허위 허위 따라서 걷고 또 걸으면 탁 트인 대처에 닿을 수가 있을래나.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르고 나면 일을 하다 말고, 길을 걷다 말고, 손을 놓고 쉬다 말고, 첩첩산중을 헤치다 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구불구불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토해 내는 한숨 소리 같은 정선아라리의 가락이 한순의 답답한 가슴을 비집고 목구멍 밖으로 울려 나오곤 했다.
박서방과 결혼을 한 것은 한순의 나이 스물 한살 때였다. 중매가 들어왔다. 홍천땅 부농의 외아들이라고 했다. 게다가 홍천은 서울과 가깝다고 했다. 서울이 가깝다고 하는 것은 서울에 가서 살게 되기가 쉽다는 뜻이라고 했다. 신랑감의 부모도 외아들이 농사를 짓지 말고 취직해 서울 가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신랑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흠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다고 했다. 신랑감은 다리를 약간 저는데 태어나서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학교 다닐 때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 바람에 고된 군대생활도 면제 받았고, 나아가 부모도 대대로 물려오던 농사일을 아들에게 물려 줄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 집에 시집갈 처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전화위복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래? 사람을 한번 만나볼래?”
어머이가 물었다.
“그러지유 뭐.”
한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랑감이 다리를 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정선 산골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한 마음을 쓰다 듬어 가라앉혔다.
더군다나 서울에 가서 살게 될 거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 보구서 맘에 안 들믄 고만둬두 되니까 뭐.”
정선읍에서 만나보자고 한다는 신랑 쪽의 말 이 중매쟁이를 통해서 전해져 왔다.
“처가가 될지두 모르는 집이 어떻게 하구 사는지 궁금할 텐데유? ”
어머이가 중매쟁이한테 말해다.
“신랑 쪽에서 시악시네 집이 잘 살구 못 사는 걸 궁금해 하지 않구 시악시감이 어떤가만 궁금하대 유.”
그 바람에 한순이는 새 옷을 한벌 얻어 입을 수가 있었다. 새 옷을 입고 정선읍내로 나갔다. 신랑감이 농사 짓는 사람 같지 않았다. 살갗이 희고 깨끔했고, 몸가짐도 투박하지 않았다. 외모는 한순의 마음에 들었다. 선을 보고 나서 걷는 모습을 보니 짐작했던 것보다는 좀더 절었다. 전다기보다는 절룩거린다는 쪽이 옳았다. 그래도 그것이 그 사람을 퇴해 낼 만한 흠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땐 정선 산골 벗어나구 싶은 생각만 머리 속에 꽉 차 있어서 다리 쩔룩거리는 것두 대수 롭지 않게 보였대유. 오히려 신랑감이 나를 퇴할까봐 겁을 집어먹구 있는 꼴이랬대유.”
중매쟁이는 그 날 저녁으로 찾아와서 신랑이 한순이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말을 전했다.
“호강시켜 주겠대유. 시악시 손에 낫자루 호 미자루를 쥐지 않두룩 해 주는 건 물론이구 발바닥에 흙을 묻치지 않구 살두룩 해 주겠대유. 그만하믄 되지 않았어유? 집안 좋겠다, 인물 좋겠다, 놓치기 아까운 신랑감이래유.'
“어떻게 할래? ”
어머이가 다시 물었다.
'정선 벗어나서 살구 싶어유.”
한순이 대답했다.
“사람이 맘에 드는 게 아니구 정선 떠나 살구 싶은 생각으루 시집 가겠대는 거래? ”
“사람두 싫지 않았대유. 나두 잘난 게 없는 걸유 뭐.”
'그래 나두니 생각과 얼추 같다. 시집 가 잘 살믄니 동생이래두 대처루 끌어 올려 가거라.’’
박서방이 서둘러서 한 달 뒤에 혼인식을 올렸다.
시집 와서 살면서부터 한순은 이름 대신 정선댁이라고 불리어졌다. 정선땅에서 시집 온 새댁이래서 붙은 호칭이었다. 홍천땅은 정선에 비해 평지가 넓고 논이 많아 쌀이 흔하다고 듣고 왔는데, 정선댁 시댁이 있는 내면은 얼른 보기에는 정선을 벗어난 것이 사실인가 의심이 들 만큼 산세가 높고 험하고 골이 깊었다. 그러나 시댁이 그 마을에서 부농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이었다. 논이 사천평에 밭이 이천평이면 산골 동네에서는 부농 소리를 듣고도 남을 만했고, 일년내내 쌀밥 먹고 지낼 수가 있었다. 그것만 해도 정선을 벗어난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정선댁이 시집 오고 이년만에 시아버지가 돌아가면서 집안 형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정선댁 남편 박서방이 집안 살림을 맡으면서 재산이 뭉청뭉청 축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술 속에 몸을 빠뜨리더니, 술집 여자 다방 여자에게 정신을 팔았고, 이윽고는 노름에 마저 미쳐 술 여자 노름 속에 몸과 정신이 온통 빠져 들어가 헤어나지를 못했다. 봄 기운에 얼음장 깨지고 녹듯. 홍수에 흙더미 쓸려가듯 논과 밭이 떨어져 나갔다. 시어머니는 홧병에 걸려 돌아갔고, 이윽고 남편 박서방도 취중에 웅덩이에 빠져 죽었다. 그래도 논 육백평과 밭 오백평을 남겨 놓았다. 남편은 죽을 병 들린 사람이나 다름 없었으니 웅덩이에 빠져 죽지 않았더라면 논 육백평, 밭 오백평, 나아가 사는 집까지 날려버리고 나서 죽었을 것이었다.
“남편이, 아직 젊은 남편이 제 명에 죽지 못한 걸 천행으루 여겨야 했대유. 근데, 두 아이 데리구 이 악물며 살아보자구 했는데 동네 사람덜 눈빛이 이상해졌지 뭐래유? ”
동네 사람들은 정선댁을 마치 처음 대하는 사람 보듯 했다. 그런 눈빛은 갈수록 차가워졌다. 그러나 그냥 눈빛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정선댁과 거리를 두었고, 정선댁이 다가가면 슬슬 피했다.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다가도 정선댁이 다가가면 하던 이야기들을 그치고 조용해졌고 정선댁이 끼어 들면 하나 둘 흩어져 가버렸다. 이상하네. 정선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것은 동네 아낙네들뿐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이 정선댁을 대하는 태도도 이상했다. 동네 길에서 정선댁을 만나면 되도록 멀직하게 피했고, 멀리서 정선댁을 알아 본 아이들은 도망을 치거나 숨어 버렸다. 남자 어른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못보던 사람 보듯 할 뿐이 아니라 일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해도 핑계를 대고는 오지 않았다.
정선댁은 자기와 아이들이 동네 사람들한테서 따돌림을 받은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서먹서먹한 생각이 들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도 정선댁의 집에 놀러 오지를 않았다. 동네 아이들도 정선댁 아이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고는 울기도 했다.
'어머이, 아이들이 나보구 귀신이래유.'
“왜 멀쩡한 사람더러 귀신이래? ”
“나한테두 그랬대유.'
작은아이도 그렇게 말했다.
정선댁은 참다 못해 그 동안 그 중 가깝게 지내던 평창댁을 찾아갔다. 나이도 비슷하고 친정이 정선과 이웃한 평창이어서 가깝게 지내온 터였다.
“평창댁. 속시원하게 얘기 좀 해줘. 내가 동네 사람덜한테 큰 죄진 거 있나? 나를 왜 뱀 보듯, 미친년 보듯, 귀신 보듯 해? 평창댁두 전과는 달리 나를 서먹서먹하게 대하잖아? 무엇 때문이야? 까닭을 알아야 잘못했다구 빌거나 하잖아? ”
평창댁은 한동안 꾸물대며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래. 얘기해 주깨. 정선댁이 박씨 집안에 시집 온 뒤루 멀쩡하던 시아부지가 돌아가시구, 착실하던 신랑이 바람이 나구, 재산이 날아가구, 시어무니가 홧병에 돌아가시구. 끝내는 신랑마저 물에 빠져 죽어 박씨 집안이 망하다시피 됐대는 거래. 그러니 정선댁이 재수 없는 여자래서 생긴 일이구, 한 걸음 더 나가서 정선댁 속에는 살이 있구. 악귀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래는 거야. 이런 말 해주기 어려워서 못했지만, 정선댁이 묻는 말 듣구 생각하니 툭 털어 말해주는 게 옳은 듯싶네. 내 생각으룬 정선댁 신랑한테 잘못이 있구. 정선댁은 억울하게 누명 뒤집어 쓴 게 틀림없구만서두…'
정선댁은 한동안 할 말을 잃고 앉아 있다가 말없이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