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사진예술연구회. 언뜻 들으면 무슨 이름이 이렇게 거창해라고 한번쯤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것이 빛의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런 사진을 예술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연구하는 모임이라고 하니 이만한 이름도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을 35mm 카메라 렌즈 속에 담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이 거창한 만큼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우편집중국 빛사진예술연구회를 찾아가 본다.
1990년 7월 4일, 각 우체국에서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우편물을 한데 모아 컴퓨터 시설로 처리하는 국내 최초의 우체국인 서울우편집중국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전국 우편물 소통의 심장부인 이곳을 움직이기 위해 서울시 각 우체국에서 모인 300여명의 체신인들은 ‘서울우편집중국’ 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았다.
새로운 업무와 갑작스런 상견례, 개국초의 집중국 직원들은 그래서 자동화된 우편물 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처리하는 다양한 지역의 우편물만큼이나 서로 다른 동료들에게도 익숙해져야 했다.
낯설음의 극복. 이것을 위해 서울우편집중국이 업무를 시작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가지 취미모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산악회 • 기우회 • 테니스 회 • 서예반 • 성모회 • 들풀회 등
이 속속 활동에 들어갔으며, 빛사진예술연구회도 1990년 11월에 동아리들의 대열에 한몫 끼 게 되었다.
“사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배우려고 선뜻 나서기는 그리 쉽지 않았었죠. 사진반을 만들어 이 기회에 한번 배워보자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면서 연극이나 사진에 관심을 가져왔던 초대 회장 남복현씨의 선창으로 “이상은 높게, 사랑은 깊게, 예술은 멋지게, 빛사진회 화이팅”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중국 소회의실에 모인 40여명 의 회원들은 살뜰한 모임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회장 • 총무• 서기 • 회계는 물론이려니와 기획부 • 섭외부 • 홍보부로 부서를 나누어 일을 분담하였으며 , 철도우편 운송국에 근무하는 사진작가 박준영씨에게는 부족한 사진기술을 지도받게 되었다.
모임의 틀이 잡혀가면서 치밀한 사전 계획으로 다음해 3월에는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으로 첫 야외촬영을 나갔다.
“대부분의 업무가 옥내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맑은 공기와 탁트인 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또 그것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 두고두고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이규삼씨를 비롯해 회원들이 사진에 담아 온 아름답고 푸른 자연은 각자의 앨범속에 꽂아놓거나 혹은 집안 곳곳에, 그리고 서울우편집중국 구내식당에 전시되어져 가족과 주위 동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모임이 생긴 지 4년 동안 꾸준히 야외촬영은 계속되어 서울에 있는 가까운 고궁, 용인 자연농원,임진각,강촌, 춘천, 과천, 북한산, 충남 예산의 수덕사 등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관올 카메라 렌즈에 담고 있다.
1991년은 빛사진회에는 여러가지 경사가 겹친 해였다. 야외 촬영을 처음 나가기도 했거니와 집중국 309호실에 암실을 꾸밀 수 있게 되었으며, 총무처에서 주관하는 제1회 공무원 서화전에서 정재훈씨가「황혼」이란 작품으로 사진부문 입선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 한 「빛사진예술연구회」라는 회지의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야외 촬영 일정표, 회원들의 결혼과 생일 축하, 연극과 영화의 관람평, 사진이론 등이 실려있는 16페이지의 빽빽한 회지에는 회원들간의 아기자기한 정이 곳곳에 숨어 있다.
빛사진예술연구회에서 제일 큰 자랑으로 삼는 것은 역시 회원들간의 돈독한 정이다.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창경궁 팔각정에서 비를 피하며 서로의 모습을 사진 찍던 일, 용인자연농원의 아름다운 장미축제, 즐거운 기차 여행, 맛깔스런 춘천 닭갈비와 막국수를 나누어 먹던 일 등. 사진에 찍힌 초록 자연보다 더 선명하게 회원들 머리 속에 인화된 이야기들은 다른 어떤 모임보다 더 진한 동료애를 쌓게 하였다.
“사진은 인간의 고정된 시점을 해방시켜 주죠. 공간은 렌즈 앞에서 자유자재로 끌여당겨지기도 하고 늘여지게도 되는데 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24시간 혹은 일주일이란 고정된 시간을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하 느냐에 따라서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니까요”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순씨는 대부분 일요일에 있게 되는 야외촬영 때에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나와 오붓한 가족모임을 갖는다며, 많은 회원들이 가족들과 함께 야외촬영에 참가해 사진도 찍으면서 단란한 시간을 갖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니겠냐며 웃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카메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진이론에 접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기본적인 카메라외에 여러가지 부수적인 특수장치에 욕심이 생기게 된다. 카메라나 이러한 장 비들이 그리 싼 가격이 아닐 뿐더러 촬영 후에 사진 인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본다면 사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투자가 필요한 취미이다. 사진반 막내둥이 김경미 • 조남숙씨는 새로 카메라를 장만한다, 부수적인 장비를 산다해서 지출이 크게 늘었어도 그것과는 비길 수 없는 직장 선배와 취미를 갖게 되었다며 모임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야외 촬영 후에는 서로의 사진에 대한 강평의 시간을 가져 실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사진 관련 전문 서적이나 잡지, 강좌를 통해서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고 사진 보는 안목을 기른다.
회원들이 즐겨 찾는 곳은 사진전시회뿐만이 아니다. 좋은 연극도 함께 관람하고 양로원에 찾아가 할아버지 • 할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또 서울우편집중국 서예 모임인 집묵회와 연합 야유회를 갖는 등 그 활동은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사진반에게도 풀어야 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암실은 꾸며졌는데 사진 인화에 제일 필요한 확대기가 없어요. 이제는 양적인 면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 내실을 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2,000원씩 회비를 걷어 재정도 확보하려고 하고 있어요”
고정된 사물이라도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대상의 모습은 무한히 변화된다. 또 그 변화에 따라 대상이 갖는 의미도 달라 지는 것이다.
빛사진예술연구회 회원들의 눈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푸른 자연 속에서 쌓은 동료에 대한 좋은 추억들로 가득 찬 100 % 청정한 눈을 통해 바라다보는 세상은 분명 생동감 넘치고 아름다운 곳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찍은 사진에는 세상을 기운차게 살아가는 건강한 모습과, 부정적이고 모순된 것을 덮어주는 따뜻한 색이 들어 있다.
직장 동호인 모임은 단순히 개인적인 취미모임의 차원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딱딱한 업무와 형식적인 인간 관계에서 오는 마찰을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며, 그것은 또 자신이 속한 직장,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이 직장 동호인 모임에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겠다.
'이상은 높게, 사랑은 깊게, 잔은 평등하게’’ 하며 높게 치켜든 회원들의 소주잔처럼 1994년은 빛사진연구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