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간 처녀를 찾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촌은 과거에 비해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농촌에 거주하는 농민은 도시와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인 빈곤으로 말미암아 21세기를 향한 정보화 사회의 비전을 간직하지 못한 채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농촌은 지난 30년간 연 평균 3.7%라는 지속적인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는 것과 현재 농촌에서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만으로도 농촌의 발전상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950년대의 절대빈곤의 악순환에서 1960년대, 197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통하여 신흥공업국으로의 면모를 다지고, 1980년대 들어서 정보화시대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서 그 발전상은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21세기의 농촌은 도시에 비교해 손색이 없는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경제가 활성화되고 자연 환경과 생산 환경이 조화를 이루게 되어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쾌적하고 편리한 자연 속의 전원 공간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 나타난 대도시 편향적인 정책과 도농간의 소득 격차 등은 많은 문제점을 제기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 공업화에 따른 청장년층의 도시 유입은 「농촌 젊은이의 엑소더스」 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결과는 농어민의 연령구조를 급속도로 고령화시켜 농업 노동력의 질적인 수준을 저하시킴으로써 농업 구조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주도해 나갈 인간자원의 부족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 우리나라의 농어민, 그 가운데에서도 뜻있는 농촌의 젊은 상록수들은 비합리적인 전통주의나 권위주의,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보수적인 가치의식 체계 속에 「비닐 농업혁명」, 「기계 농업혁명」으로 불리는 이른바 농산물 생산의 탈계절화를 이루는 한편, 생산기술의 개선으로 생계를 위한 농업을 상업적인 농업으로 탈바꿈시켜 오늘날의 농촌을 이룩했다.
특히 이들의 높은 교육열은 인간자본의 높은 축적을 통해 현대화된 영농을 가능케 하였으며, 이는 우리나라 경제의 급속한 고도성장을 이룩하는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또한 새마을운동 등의 농촌운동을 통한 농촌의 변화는 농가소득의 획기적인 증대와 농촌 경제의 활성화로 교통시설, 문화 및 위락시설, 주택 및 취락구조의 개선, 의료시설 확충, 농어민 후계자 육성, 직업교육 등으로 우리가 농촌의 장점을 대표적으로 꼽는 전원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들지 않더라도 전국 일일생활권을 이룩한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농촌은 젊은 일꾼들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다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어 온 까닭에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는 이제 농촌만의 문제를 벗어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고, 이를 해결하고자 사회 각계의 단체에서 농촌 총각 짝짓기를 위한 모임을 주선하는 등 여러 면으로 노력하였으나 커다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농촌 총각의 짝짓기를 위해 분주한 체신가족이 있어 그 지방은 물론 전국적으로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는 농촌 총각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고 있다.
중매집배원으로 소문난 주인공은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에 위치한 우천우체국(국장 : 김수암)의 집배원 정태화씨.
1968년 4월에 최초로 집배원으로 발을 디딘 이래 초지일관 직무에 충실하며 지역 주민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동안 정씨가 집배원으로 근무하며 농촌 총각을 위해 주선한 짝짓기 숫자만 해도 줄잡아 60여쌍이 된다 하니 가히 놀랄 만하다.
그렇다고 정씨가 짝짓기만을 위해 본연의 임무인 집배원의 직분을 소홀히 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증거는 지난 오랜 세월을 별다른 사고 없이 지역 주민에게 심어 온 신뢰 하나만 보더라도 알수 있다.
신뢰는 짝짓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신뢰가 없이는 어떠한 감언이설도 불행한 결혼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정씨는 특별하게 신뢰를 위해 노력한 것은 없고 다만 맡은 바 직책에 충실했음을 말한다.
“고지식하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꼼꼼하다는 얘기도 많이 듣습니다. 주인 없는 가정의 편지를 보통들 보면 마당에 던져 놓곤 하는데, 저는 마루에라도 갖다 얹어 놓을 뿐만 아니라 바람에 날릴 것을 염려하여 무거운 것으로 반드시 눌러 놓습니다.”
정씨가 편지를 배달하는 모습 한가지만으로도 그가 얼마만큼 직분에 충실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뿐더러 오늘날까지 심어온 신뢰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주민들로부터 정씨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기 시작하자 중매를 부탁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중매를 시작하게된 컷은 10여년 전 횡성군 우천면 하대리에 거주하는 안상인(60세) 씨가 “요사이 농촌의 젊은이들은 처녀가 없어서 장가들기가 무척 어렵다.”며 자기 아들의 장가 보낼 일을 염려하며 마땅한 처녀가 있으면 다리를 놓으라는 얘기를 듣고부터였다.
처음에는 못배우고 아는 것 없는 사람이 무슨 재주로 남의 일생에 중대한 혼인을 맡겠느냐며 사양하기를 여러번 했으나 간곡한 부탁에 거절하지 못했다.
옛말에 ‘잘되면 술이 석잔이요. 못되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있듯 중매란 잘못하면 욕먹게 마련이어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고 집에서도 적극 반대하였다. 그러나 간곡한 부탁을 생각하며 집에서 부인 모르게 건실한 처녀를 소개하였는데 마침 서로 좋다 하여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정씨의 중매는 일년이면 대여섯 쌍은 족히 맺어주고, 맺어주는 족족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니 소문은 꼬리를 물어 집배구역인 우천우체국 관내에 화제가 만발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정씨네 중매는 첫아들을 낳는다더라”라는 소문도 있어 마땅한 처녀가 있어 관심을 갖게 되면 반드시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중매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때로는 한쌍의 짝짓기를 위히여 발이 닳도록 뛰어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에는 우천면 오원리에 거주하는 정모씨 (31세)를 적당한 짝과 맺어주기 위해 1년을 쫓아 다녔다며 성사가 어려웠던 만큼 기억에도 남아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6남매의 맏인데다 홀아버지를 모시는 혼기찬 젊은이 정씨는 혼기를 놓치기가 안타까와 집배원인 정씨에게 중매를 부탁하기로 하고 정씨가 그 마을에 집배를 나갈 때면 정씨에게 중매를 부탁하곤 했다.
정씨도 사람을 보건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건실한 청년인데다 성격도 좋아 흡족했으나 가정 형편이 넉넉치 못해 안타까와하며 마땅한 처녀를 물색하던 중 인근 마을에 집배를 나갔다가 할머니 한분을 만나뵙고 과년한 손녀딸이 있음을 알았다.
그 후부터 정씨는 우편물이 없더라도 그 마을에 갈 때는 반드시 들러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는 한편 관심갖기를 몇개월, 좋은 총각이 있는 데 손녀딸이 어떻겠느냐며 의중을 떠보니 의외로 반가운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사실은 정씨의 지난 몇 개월 동안에 심어온 신뢰의 열매가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 말씀이 가정 환경이문제가 아니고 사람만 좋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는 반응에 맞선을 주선하여 서너차례 만남을 가졌다.
결국에는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고, 지금은 아들 딸 낳고 남부럽지 않은 재산도 모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정씨가 주선한 젊은이들이 한쌍 두쌍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려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지만 신문지상이나 방송을 통해 듣는 농촌 총각의 슬픈 소식은 정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럴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우리지역에서만큼은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도시를 드나드는 총각들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업무에 임한다.
그러한 부담이 이제는 보람이기에 앞서 사명이 되어버린 지금 그가 가는 곳마다 그를 반기는 주민의 환영도 대단하다. 그가 얼마만큼 인기있는 집배원인가는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점심 걱정을 안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증명되고 남음이 있다.
어느 집배원치고 집배구역에서 주민으로부터 환영받지 않으며 점심 때가 되면 무관심하겠느냐고 번문할 독자가 있겠으나 그것은 정씨를 이해 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60여쌍의 중매를 했다는 사실은 서두에서 밝혔거니와 지금은 모든 가정이 그곳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마을이면 몇 가정은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정씨의 그 마을 배달을 미리 알고 정씨를 위해 점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가정도 있다.
그러나 정씨에게도 안타까움은 있게 마련이어서 우천면에만도 30세를 전후한 혼기찬 젊은이가 30여명이 있어 방법을 강구해 보지만 도리가 없다. 그것은 짝지워줄 처녀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바라는 결혼 조건은 단지 몸만 건강하다면 그만입니다. 그밖의 어떠한 조건도 문제될 것이 없읍니다.”
농촌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결혼의 조건은 단지 건강 하나인데도 농가주부로서의 가사노동과 농업노동 등의 부담을 생각한 나머지 결혼을 꺼리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 서독 등의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색다를 것은 없다 하겠으나, 그 동안 부정적인 면만이 전달되어졌다면 농촌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최근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의 좋은 단면이 바르게 전달되어져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우천우체국의 김수암 국장의 얘기 속에서도 정씨가 그 동안 짝짓기를 위한 수고가 얼마만큼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도시의 처녀들이 연락해 주신다면 듬직한 청년을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겠읍니다.”
어떠한 조건도 필요치 않으니 진정으로 농촌을 사랑하고 그 가운데 보금자리를 마련할 의사가 있는 처녀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정씨는 타지방에서 정씨의 기사를 읽고 중매를 부탁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안타까움밖에 전하지 못하고 덩달아 가슴 아파하며 농촌의 내일을 염려한다.
일년 중에서 겨울의 빙판길이 제일 힘들다며,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그는 지금 하궁리에서 부녀회 모임에 들렀다가 50여명의 극성스런(?) 부인 네들로부터 입이 닳도록 칭찬을 듣고 오는 길이 라서 날아갈 것만 같은데, 고개 넘어 동리에 오래전부터 중매 부탁을 하던 젊은이를 보기가 심히 안타깝지만 반드시 하늘에서 맺어준 짝은 어느 곳에 있든지 있게 마련이라는 위로를 준비하며 재차 다짐해 본다.
‘정년퇴직하여 여기를 그만둘 때까지는 농촌 총각 짝짓기를 계속하리라’
때로는 안타까움과 기쁨이 번갈아 정씨에게 다가오지만 이제 한두번의 일도 아니고 정년퇴직까지는 계속하겠다는 정씨는 현재 고용적 집배원으로 기능직 집배원보다 다소의 불이익이 있다며 특채를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으로 연말연시의 무거운 집배가방을 둘러메고 언덕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