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최근 젠틀맨쉽 (gentlemen ship) 에 관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7세기초에 세계의 중심국이었던 화란이 쇠퇴하고 그 대신 영국이 19세기 중엽에 세계의 중심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영국 중심의 세계는 2차대전을 고비로 미국에게 그 세계 중심의 자리를 빼앗겼다. 사실상 미국이 세계 중심의 자리를 굳힌 것은 2차세계대전 후라고 하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중심의 세계는 1970년대, 즉, 월남전을 고비로 하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세계 중심의 자리를 어느 나라가 차지할 것이냐에 관하여는 많은 추측이 나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영국이 세계 중심국의 지위에서 물러난 것은 영국병에 걸려서 산업혁명 이후에 이미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이것을 끝맺게 한 것이 세계 2차대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영국병이란 간단하게 말하여 사람들이 돈벌이에 그렇게 열을 올리지 않고 도시생활에서 떠나 농촌의 자연을 접하여야 하고 약자를 구제하여야 한다는 생활양식 또는 생활규범이 기업하는 상류사회에 성행하며 이러한 생휠을 이상으로 하여 동경하는 생활관인 것이다. 영국을 세계 제일의 지위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 이러한 생활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외에서 부자나 귀족들이 말을 타고 사냥개를 앞세워 여우 사냥을 하는 광경, 그리고 우아한 귀부인을 가운데 등장시켜서 춤을 추는 영국인들의 사교의 장면들은 영국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에 자주 나오는 광경들이다. 이것이 영국의 신사도였으며, 그들 생활의 이상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양식은 세계에 이출되어 많은 나라들이 이 영향을 받았다. 말하자면 기업인들이 돈벌이에 그렇게 열을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미국 사람들은 형식이나 상징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생활을 대표하는 것이 아마 불론디의 만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순진하고 영국의 신사도보다 가식이 적은, 그리고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생활이다. 여기에서는 상징이나 전통 같은 것이 영국에서처럼 중요시되지는 않았다. 풍부한 자원과 내수시장은 쉽게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고 1 • 2차 세계대전은 또한 쉽게 미국을 세계 중심국의 지위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위치에 있는 미국도 1970년대를 고비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같다. 말하자면 일종의 영국병이다. 만성적 세계 제일의 꿈을 꾸고 있던 미국이 자동적으로 세계 제일의 자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물론 없다.
그들이 세계 제일의 꿈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말하자면 영국병에 걸려 있는 동안, 예를 들면,일본인들은 죽을 힘을 다하여 처음에는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향하여, 그리고 그 후에는 세계 제일을 향하여 매진하여 왔고 머지않아 국민 1인당소득 제일을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을 많은 경제학자들이 하고 있는 터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이 다시 미국에서 일본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흔히 태평양시대라고 하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할까. 대체로 일본의 발전 패턴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특히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답습하고 있는것 같은 인상마저 풍긴다. 예를 들면, 영국의 번성기에 영국인들이 영국병에 걸렸듯이 일본인의 일부,예를 들면,일본의 청소년들은 일본의 세계 제일의 진로를 막고 있다. 시실상 일본의 사회악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 같다. 역시 일종의 영국병이다.
그런데 일본의 그러한 종류의 사회악들이 국민소득,일본의 겨우 4내지 5분의 1 정도에 도달한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움트고 있는것 같다. 특히 성장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많은 국력을 낭비하는 면이 너무나 많이 노출되고 있는 것 같다. 영국병의 초기 증세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민주주의에 이르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면 노사의 대립이 그 하나다. 우리 사회는 지금 노사의 대립으로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다.
이것을 민주화의 필수적인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업인들의 기업 의욕을 말살하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근로조건 같은 것을 무시당한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고픔을 이겨 가면서 겨우 현재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것을 4 두리째 흔들어 놓고 남미의 여러 나라와 같은 꼴로 타락시킬 수는 없다.
어느 쪽이,그리고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인가를 여기서 일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성장을 중단하거나 후퇴할 수도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영국병의 초기 중세를 우선 치유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