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체신」지 편집자로부터 “나의 취미란”에 실릴 서예에 관한 원고를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고 당황하여 서예에는 아직 “서” 자도 모르는 형편이라고 사양한 일이있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전화로, 전문적인 서예강좌식의 글이 아니라 붓을 잡으면서 얻는 느낌들을 가볍게 얘기해주면 된다고 하기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붓필을 들었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귀한 시간에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1976년 4월초쯤 처음 붓을 잡았으니까 햇수로는 13년이 지났지만 아직 획하나 제대로 그어 내리지 못하는 형편이고 보면 이 글을 쓴다는 것부터가 무리이며 마음 떨리는 일이지만, 첫 붓을 잡은 날부터 매일 아침 한두 시간씩 먹을 갈고 붓을 드는 습관으로 익히면서 나의 생활의 일부처럼 여기는데서 느끼고 얻어진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원래 글씨 못쓰기로 이름 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나를 굉장히 아껴 주시던 선생님으로부터 글씨 못쓴다는 꾸중을 듣고는 글씨란 남이 알아볼 수 있게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대꾸를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고, 지금도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로부터 악필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있다.
이렇게 글씨에 재주가 없는 사람이 붓을 잡게 된 것은 당시 청장님으로 모시고 있었던 金龍鳳 선배께서 글씨를 한번 시작해 보라고 권유하였을 때, 마침 동료 몇사람이 여가 선용으로 붓글씨회를 만들어 시작해 보자고하여 동료들은 먼저 시작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펜글씨도 못쓰는 주제에 과연 붓글씨를 쓸 수 있을까? 시작하였다가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아니한 것만 못하지 않은가?” 이런저런 여러가지 생각을 한달여간 두고 한 끝에 글씨를 못쓰니까 배울겸, 그리고 書道라는 것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서도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취미이니 이미 시작하고 있었던 수석취미와 함께 해 나가면 좋을 것이라 여겨 시작을 하였다.
金청장께서 직접 연습지에 “東”자를 크게 써서 영자팔법(永字八法)을 설명해 주었고 붓 잡는 법도 가르쳐 주었으나, 붓이 손을 자꾸만 튕겨내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金청장께서는 앉아서 글씨를 쓰면 엉덩이로 힘이 다 빠져 버리고, 왼손으로 책상을 짚으면 손끝으로 힘이 빠져 달아나니 손도 짚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필 • 운필 • 종필법 등을 가르쳐 주었으나 어렵기만 했다. 특히 아침 저녁 먹을 갈고 글씨 연습이 끝나면 붓을 깨끗이 빨아 두는 일, 벼루를 깨끗이 씻어 두는 일 등 여간 정성과 시간이 들지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시작을 했으면 계속해야 한다는 생
각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붓을 던져 버리지 못하고 2년여를 버려 나갔었다. 그 사이 젊은 친구들은 견디다 못해 모두가 붓을 집어 던졌고, 남은 사람은 지금은 퇴임을 히신 李善固 선배와 둘만 남게 되었다.
그때쯤 해서야 붓이 손안에서 조금 고분고분해진 것 같았고, 점 하나 찍는 것, 획 하나 그어 내리는데 삐뚤거리지 않는 힘이 팔에 조금 붙었다. 우리는 1주일이나 2주일쯤 연습한 글씨를 우리들의 스승이신 金청장께 갖다 보이면 점수를 매겨 주꾼 했는데, 李선배의 글씨가 훨씬 균형이 잡히고 힘도 있어 보였으나 나의 글씨에 항상 점수를 많이 주었다.
이유는 획 하나하나에 정성과 힘이 더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나가라는 격려의 뜻으로 그랬던 것 같았다. 3~4년이 지나면서부터 획과 획 사이의 간격이 눈에 들어오고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 또한 눈에 조금씩 들어왔다.

그리고 글씨란 아무리 유명한 명필에게서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들어도 소용이 없고, 직접 써보면서 스스로 팔에 힘을 붙이고 획 하나하나에 기맥을 불어 넣는 방법과 먹의 농도에 따른 운필의 지속을 터득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쯤 해서는 글씨를 남에게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매일 아침 1~2시간씩 하는 글씨 연습이 재미도 있고, 하루라도 연습을 걸른 날은 일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빠트린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되어 붓 잡는 것이 생활의 일부로 자리를 잡았다. 그 무렵부터는 서화전시회를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남의 글씨 보는 재미도 붙이게 되었다. 한 획 한 획에 담겨진 작가의 기맥의 흐름과 의표를 가려 보면서 나의 많은 단점을 발견하는, 그래서 쓰는 작업만큼 남의 글씨를 자주 보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붓을 잡으면서 얻어진 것을 얘기하자면,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붙었다. 글씨는 아침이 제일 잘 쓰인다. 또 먹을 갈고 글씨 연습을 하는 시간에는 모든 잡념이 다 달아나 버린다. 마음을 비우는 공부가 잘 된다. 그리고 글씨 한 자 한 자를 해(偕),행(行), 초(草), 예(辣), 전(篆), 다섯가지 체로 익혀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래도 제일 소중한 즐거움은 문득문득 글씨를 연습지 아닌 화선지에 올려보고 싶은 충동을 받는 일이다.
이 충동을 받았을 때 나는 며칠 또는 일주일쯤은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열기 같은 것을 느낀다. 탐석길에 마음에 드는
돌 한 점을 만났을 때 느끼는 기쁨과는 구별되는 어떤 감동같은 것이라고 설명을 하면 가까운 표현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써 보아도 애당초 글씨에는 재주가 없다고 느꼈을 때 오는 맥빠짐, 참담함도 수없이 이겨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무심코 친구에게 보내준 글씨가 1년 뒤 그친구집에 들렀을 때 소중하게 표구를 하여 안방이나 응접실에 걸어둔 것을 보았을 때 귀밑이 화끈화끈한 부끄러움도 많이 겪었다. 어떤 때는 가훈(家訓)을, 선친의 묘비명을 당장 써 달라고 왔을 때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써 주어야 하는 괴로움도 있었다.
글씨는 써 볼수록 어렵다. 그래서 나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많다. 한 획 한 획에 글자 한 자 한 자에 또한 작품 전체에 음양(陰陽)의 헤어지고 만남이 붓을 잡은 사람의 호흡과 기맥을 타고 흘러 춤추듯조화를 이루고 생동의 힘이 솟구쳐 흘러야 한다는데, 도무지 가까와지지 않는다.
언젠가 이곳 서화계의 원로이신 張査淳옹께서 나에게 이런말씀을 해주었다. “나는 붓과 함께 한 지 40년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획 하나를 반마음에 들도록 그을 수 있다.” 이 말씀을 교훈삼아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평생을 두고 자신과의 싸움으로 생각하고 정진하자고 다짐을 해본다.
그 위에 한가지 욕심이 더 있다면 몇년 전부터 놓고 있는 내자의 학병풍수 뒷면에는 아들놈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손수써서 병풍 세벌쯤 만들어 한 벌씩 남겨주고 싶고, 족자, 가리개 몇점쯤 건사하여 그 동안 탐석하여 둔 돌과 함께 자그마한 석실겸 서실 하나 꾸미고 언제든지 활짝 문을 열어 놓고 돌벗이나 글벗이나 찾아오면 그윽히 묵향 드리우고 손수 끓인 차(茶) 한 잔 권하며 종일토록 석담(石談), 서담(書談), 정담(情談)을 나누면서 살고 싶은 것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