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화음 속에 피어나는 체신문화

“삼천리 수려강산 방방곡곡에/육지와 바다에서 하늘 끝까지/오늘도 새소식은 번개길 같이/산 넘고 물을 건너 전하여지네”
매년 체신부의 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장을 울려 퍼지는 여성3부의 잘 조화된 합창을 많은 체신인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얀 상의에 하늘색 치마를 산뜻하게 받쳐입은 30여명의 미녀들이 엮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은 다소나마 긴장되었던 행사장의 분위기를 풀어주며, 그들이 들려주는「체신의노래」는 체신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과 더불어 남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이렇듯 해마다 고운 선율로 행사장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의 주인공 체신부전산관리소 합창단을 찾아보았다.
합창단이 처음 모임을 시작한 해는 1980년이다. 1980년은 우편대체 • 군인연금 등의 업무에 전산처리를 개시한 해기이도 하다. 당시에는 현재 체신부전산관리소의 모체가 되는 체신부환금관리사무소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전산업무는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 하는 일이다.
감정도 없는 기계 앞에 앉아 자료를 계산하고 처리하는 일과의 반복은 업무에 대한 무료함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마저 메마르게 하였다.
그런 업무에 대한 무료함을 달래며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홍순권 서무계장(현 서울성동우체국 우편과장)은 노래모임, 즉, 합창단을 구상하게 되었다. 기계적인 동작의 반복인 딱딱한 업무에 인간의 정서를 마음껏 표출하기에는 음악만큼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그의 생각에 30명의 여직원이 동의를 하였다.
합창단의 명칭은 그들의 주요업무인 컴퓨터 운용과 자료입력에 착안하여 operator와 entry의 약자인 ON 합창단으로 하기로 하였다. 또한 홍계장은 체신부전자계산소로 파견근무를 나가 있던 이종석씨를 서무계로 불러들여 지휘자 임무를 맡겼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탄탄한 실력을 닦은 이종석씨를 중심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매일 1시간씩 연습을 하였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보다는 그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아서였다.
업무의 무료함을 달랜다는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한 합창단이 정비되는 계기가 1981년 가을 도봉산에서 있었던 체육대회에서 마련되었다. 행사 프로그램 가운데 과별 대항 노래자랑이 있었는데, 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던 직원들은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멋들어진 노래 솜씨와 조화된 화음에 윤동윤 소장과 김창희 관리계장은 산을 내려오면서 합창단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1982년 2월, 희망자 중 실기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33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정식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1982년 1월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었다. 따라서 체신부전자계산소가 한국통신으로 이관됨에 따라 환금관리사무소 자체의 전산기 도입을 서두르면서 체신금융업무의 전산화가 본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더불어 합창단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4월 22일 제27회 「체신의 날」행사가 가까워오자 체신부 총무과에는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그 동안 체신부에서 활동하던 합창단이 한국통신 DIAL 합창단으로 분리되어 나간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또한 근처 중 • 고등학교에 부탁할 것인가, 환금관리사무소 합창단에 부탁해야 할 것인가를.
“본부 총무과에서 어느 날 저를 부르더라구요.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 교인이 몇명이냐에서 부터 제 지휘 경력까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더라구요. 합창단이 「체신의 날」에 무대에 설 만큼 실력이 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던 거죠.”

지휘자 이종석씨의 면담이 있은 뒤 1982년 4월 22일 제27회「체신의 날」행사는 합창단의 데뷔 무대가 되었다. 합창단의 본격적인 활동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해마다 개최되는「체신의 날」 체신봉사상 시상식, 체신노조 전국대의원대회 등 체신부를 대표하는 행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종무식이나 퇴임식 등의 소내 행사에도 어김없이 참여하였다.
더 나아가 봉사활동도 계획하게 되었다. 그들의 첫 방문처는 서대문에 있는 송죽원이란 고아원이었다. 노래도 불러주고 아이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느낀 보람은 그 뒤로 현재까지 매년 1년에 한번씩 고아원 • 양로원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직장모임으로는 13년이란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만큼 단원들에게는 합창단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많은 추억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85년 6월 조합원 합동결혼식이예요. 체신공무원교육원 강당에서 서울 • 경기지역 집배원과 우편원 부부 30쌍을 위해 축가를 불러 주었어요. 그분들의 평탄한 앞날과 사랑을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느낀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처음 합창단을 시작할 때는 앳띤 처녀였지만 이젠 아이까지 딸린 아줌마가 된 유선옥씨도 마음만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합창단에도 어려운 일이 있었다. 6년 전의 일이다. 합창단원들은 니름대로 독자적인 발표회를 계획했다. 노래뿐만 아니라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 현대무용 • 고전무용 • 탈춤 • 에어로빅 등을 외부강사를 초청해 배울 예정이었다. 그러나 단원들의 이런 열의와는 반대로 빈약한 예산은 모든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지금도 그렇지만 체신부나 전산관리소에 합창단을 위한 특별한 예산이 따로 편성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작게는 악보 구입에서 크게는 단복 문제까지 재정상 많은 애로점이 있습니다.”
현재 합창단의 모든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이병청씨의 얘기다.
작년 5월에는 지휘자가 교체되었다. 합창단이 만들어진 후 줄곧 지휘를 해온 이종석씨의 뒤를 이어 서무계에서 근무하는 정강수씨가 제2대 지휘자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모임이 만들어진 지가 13년. 자못 그의 어깨가 무겁다. 또한 그의 열의만큼이나 풀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20년 전에 기증받은 피아노의 음이 제대로 맞지 않아 그의 육성으로 음을 맞춰주기도 하지만, 어떤 곡이든 소화해낼 수 있는 능숙한 반주자가 우선은 간절하다. 좋은 곡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합창단의 재정을 생각하며 자제하기도 한다.
“합창단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활동 영역이 넓어져야 되겠지요. 1년에 세번 연례적인 행사외에도 각 청의 행사에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지요”
합창단이 조금 더 활성화되면 남자 단원들도 뽑을 예정이며, 또한 자체 발표회를 갖는 것과 더불어 외부 합창경연대회도 참가하고 싶다는 새 지휘자 정강수씨의 합창단에 대한 열의는 최근 침체되었던 분위기를 다시 금 살리고 있다.
1984년 3월, 제1회 체신봉사상 시상식이 있었던 날이다. 사회를 보던 차인태씨가 “체신부합창단”으로 소개를 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체신부합창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 전산관리소합창단이라고 불러야 할지 다소의 혼동을 느끼고 있다.

그만큼 합창단의 역할이 확고해지고 있으며 주위에서 거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겠다.
이제는 자족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단원들 스스로가 먼저 한다. 단순히 업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즐기는 직장내의 모임이기보다는 체신부를 대표하는 합창단이기에 단원들 각자가 갖는 책임감이라든가 자부심 또한 각별하다. 그래서 어디에 나가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욕심도 갖게 된다.
“권성희씨, 합창단 연습시간이잖아. 어서 가봐 뒤처리는 내가 해줄 테니.”
행사 날짜가 임박해서는 점심시간에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또한 합창단 자체적으로는 반주를 할 사람이 없어 행사 준비 기간에는 외부에서 반주자를 어렵게 구하게 되는데, 그 반주자와 연습시간을 맞추다 보면 불가피하게 근무시간 중에 자리를 비워야 할 때가 있다.
함께 일을 하면서 합창 연습이라긴 하지만 혼자서만 살짝 빠지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그래서 제대로 말도 못꺼내고 있으면 주위에서 먼저 어서 가보라고 재촉을 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동료들의 따뜻한 배려가 너무 고맙고 큰 힘이 된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단원들 스스로의 열의와 노력, 그리고 합창단에 대한 주위의 이런 따뜻한 배려가 있다면 얼마든지 합창단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삼천리 방방곡곡 육지와 바다에서 하늘 끝까지 번개길 같이 전하여지는 새 소식과 발을 맞추어 체신부전산관리소 합창단이 엮어내는 고운 노래 또한 산넘고 물을 건너 전국에 체신문화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