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직원들과 활력이 넘치는 직장
테니스는 11세기경부터 유럽의 성직자 • 왕족 • 귀족들 사이에서 놀이로 행하던 옥내경기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그
발상은 명확하지 않으며 그 어원도 심판이 take it play라고 이르는 말을 프랑스어로 tennz라고 하는데서 본땄다고 한다.
경기 방식도 처음에는 맨손으로 공을 쳐서 넘기다가 16세기에 들어와서야 라켓을 시용하게 되었으며 그 후 영국에 수입되어 옥외의 잔디에서 할 수 있는 경기로 개량되었다.
우리 나라에 테니스가 소개된 것은 1908년경 일본인들에 의해서였다. 이때의 테니스는 경식이 아닌 연식 정구였다. 경식정구인 테니스가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것은 1926년이었지만 1970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테니스 붐이 조성되고 테니스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체신공무원교육원 테니스회가 만들어진 것은 1972년 11월, 교육원내에 아담한 테니스 코트 2개가 갖추어지면서였다. 1969년부터 활동해 오던 연식정구회가 자연스럽게 테니스회로 전환되면서 36명의 회원으로 모임의 첫발을 내믿었다. 이것은 교육원뿐만이 아니라 체신부 직원이 독자적인 자신들만의 코트에서 테니스에 입문하는 것이기에 더
욱 의의가 있었다. 즉 교육원에 만들어진 코트는 체신부에서 닦은 테니스 코트 제1호가 되며,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교육원테니스회 또한 테니스 모임 1호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테니스가 대중화되어 그것이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웬만한 주거지역이나 대학교에는 대부분 테니스장이 있기 때문에 간편한 복장에 라켓과 공만 준비된다면 부담없이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테니스는 그리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자면 골프라고 해야 할까요. 테니스도 그때는 일부 특권층이 즐기는 하나의 오락쯤으로 인식되어 있었죠.”
물론 테니스를 통하여 체력을 단련하며 직원 상호간에 친목 및 상부상조를 도모한다는 목적아래 모임이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테니스에 대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은 교육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모임 초기부터 현재까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수씨는 당시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연식 정구와 테니스는 용구나 기술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연식 정구를 주로 치던 회원들은 조남진 교관(현 한국통신 대외협력실 해외협력국장)으로부터 기본 기술을 배우며 일주일에 한번은 테니스 이론과 경기운영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테니스회의 규칙은 엄격하였다. 이것은 먼저 복장에서부터 적용되었다. 테니스 복장의 관례는 백색이다. 지금이야 그저 뛰기 편한 운동복 차림이면 무슨 색이 됐건 상관없지만 테니스회 회원들은 하얀 셔츠와 바지를 반드시 입어야만 코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옆 코트에서 공이 날라왔을 때는 직접 손으로 공을 집어 준다든가, 서브를 넣기 전에는 상대방에게 반드시 인사를 한다든가 하는 등의 코트 예절 또한 철저하였다.
“단순히 기술 습득뿐만이 아니라 코트 관리, 경기 예절 등 테니스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라인 긋는 것에서부터 비질, 롤러질, 소금뿌리기 등 모든 관리가 회원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도 교육원만큼 예절 바른 테니스회도 없을 겁니다.”
초기 테니스회 회장을 맡으면서 이론서를 구입해서 공부하는 열성을 가지고 동료들을 교육했던 조남진씨의 교육원 테니스회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고 하겠다.
그때 회비는 매월 3,000원, 지금도 회비가 전혀 인상되지 않은 3,000원인 것에 비 한다면 회원들은 상당히 큰돈을 부담하고 있었다. 테니스장 관리에서 부터 용품 구입 등 모든 것이 회비에서 충당되기 때문이었다.
연습은 주로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이후를 이용하였다.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황토빛 코트를 누비는 회원들의 건강한 모습은 1980년 이후에나 자연스럽게 주위에 받아들여지고 일반화되었다. 현재 교육원 120명 직원 가운데 78명이 테니스회 회원이니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고 하겠다.
교육원 내에 위치한 테니스장을 애용하는 것은 직원들뿐만이 아니다. 이미 체신부를 퇴직한 전직 체신인에서부터 근처 주민, 경찰관, 전화국 직원들이 퇴근 무렵이나 주말에는 테니스장을 이용한다. 비록 서로 말은 하지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뛰고 땀을 흘리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형성된다.
테니스 코트는 굳기가 적당해야 하고 다소의 습윤성이 있어야 하는 등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며 옥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온 뒤에는 소금을 뿌려주고 커다란 롤러로 땅을 다져주어야 하며,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도록 계속 치워주어야 한다. 또 매번 정확하게 구획선을 그어주어야 한다. 열심히 코트를 정리해 놓았는데 다시 비가 내리거나 눈이 쌓일 때만큼 맥빠지는 일이 없다는 회원들이지만 자신들이 손질한 코트에서 힘차게 들려오는 함성은 모든 수고를 잊게 한다. 또한 동료들과 함께 눈도 치우고 비질도 하면서 느껴지는 동료의식은 일상 업무에까지 이어져 항상 화목한 가운데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교육원 테니스회는 매년 체신부장관 배 전국체신관서테니스대회에 출전하며 우정연구소 등의 다른 테니스회와도 친선게임을 갖는다. 그리고 해마다 3 • 6 • 9 • 12월에 자체적인 정기대회를 열어 서로의 실력을 겨눈다.
올해로 16회가 되는 장관배 테니스대회에서는 1985년에 준우승, 작년과 재작년에 3위에 입상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대회 경력이 아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는 말도 있듯이 테니스는 개인적인 체력 관리는 물론 자못 안이해질 수 있는 직장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또한 작년에는 우리나라 테니스의 간판스타 유진선 선수를 초빙해 코치도 받고 게임도 갖는 행사를 마련하는 등 그 활동면에서는 단연 1위라고 하겠다.
4개로 늘어난 테니스 코트 중에서 하나는 늘 신입회원의 차지다. 처음 테니스를 배우는 그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치기 위해 특별히 할당된 것이다. 선생님은 테니스회 고참 선배, 즉,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동료가 된다.
체신공무원교육원은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음에도 한적함을 맛볼 수 있을 만큼 교육하기에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며 시설 또한 깔끔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런 고요를 깨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여기저기서 간편한 운동복 차림의 직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노란색 공을 치는 라켓의 경쾌한 소리와 그에 어울린 건강한 웃음소리, 그것은 2000년대를 선도해 나갈 체신역군을 양성하는 이곳에 아주 어울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