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근황은요 내년 가을 쯤 선보일 작품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이번에는 6.25세대인 초보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그릴 생각입니다.
초보 할아버지와 손녀의 만남. 이색적인데요. 작품 속 모델이 있나요 저하고 13개월 된 제 손녀입니다. 요즘 이 친구가 저희 가족의 중심이에요. 아들과 딸이 있는데 딸은 대학을 졸업했고 큰 아들이 결혼해서 손녀를 안겨 줬죠. 육아는 이미 몇십 년 전에 손을 놓고 있었는데 이 녀석 덕에 그때 기분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어요. 저희 때만 해도 요즘 세대 아빠처럼 다정다감하진 못했잖아요. 어쩌다가 기저귀라도 갈아줄 때면 손에 익지 않아 허둥대기 일쑤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손녀를 보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할 때가 많지요. 그런 소소한 모습들을 이야기 속에 녹여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그래서 손녀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수집 중입니다. 제목도 생각해 두었어요.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생각해 둔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어제 저녁에 부인과 손녀와 함께 집 근처 한강 수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알록달록 꽃들이 높게 자라 있어서 “저것 봐라. 예쁘지?”했더니 도무지 흥미를 못 느끼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제 눈높이에서 봤을 때는 꽃 얼굴이며 넓게 펼쳐진 꽃밭이 한 눈에 들어와 예뻐 보였는데, 손녀 눈높이에서는 줄기밖에 안 보이겠더라고요.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꽃 좀 보라고 재촉했을 때 손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더군요. 제목은 ‘하비’입니다. 손녀가 저를 부를 때 나름은 열심히 ‘할아버지’라고 발음하는 것 같은데 저희가 듣기에는 ‘하비’ 로 들립니다. 온몸으로 자기 의사표현을 아주 열심히 하는 모습도 참 귀여워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그려지겠죠.
빨간 자전거에 나오는 우편배달부 모델도 있었는지요 제게는 우편배달부 판타지가 있어요. 저희 때 전화가 있었습니까, 이메일이 있었습니까. 보고 싶어 죽겠는데 그 사람을 보려면 최소한 일주일이 걸려요. 만나고 싶은 마음에 밤이 되면 편지를 쓰지요. 밤도 그냥 밤이 아니에요. 갖은 미사여구를 써서 하늘의 별이 어떻구해가며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쓰는 순간 시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부치면 2~3일 걸려 그 사람에게 도착하지요. 상대방이 편지를 읽고 쓰고 부치는 데 또 3일이 걸릴텐데 편지가 손에서 떠난 다음 날부터 우편배달부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우리집 앞에 우편배달부가 몇 시에 지나가는 지도 알아요. 도시에 보낸 아들,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의 소식도 가죽으로 된 우편배달부 낭 안에 들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편배달부 판타지가 빨간 자전거를 탄생시킨 결정적 이유인가요 오랫동안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순정만화를 그려오다 보니 어른들 이야기를 하고 싶더군요. 그렇다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은 제 취향이 아니고. 생각하다가 부모, 자식, 고향으로 풀게 되었습니다. 우편배달부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마을이 있어야겠다 싶어 야화리를 만들었구요, 박 영감과 그 마을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삼았지요.
야화리. 고향인가요? 저는 고향이 서울입니다. 야화리는 제 마음 속 고향이예요. 지도 속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들이 말하는 고향이라는 것을 저도 갖고 싶었어요. 명절 때 10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시골에 가고 싶었어요. 전봇대 대신 미루나무가 서 있고, 집 앞에는 냇가가 흐르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임하면 야화리는 제가 꿈꾸던 고향을 상상하며 만든 곳입니다. 임하, 숲이 강처럼 흐르는. 야화, 들꽃마을이라는 뜻이지요. 가끔 사람들이 야화리로 휴가를 떠나고 싶은데 그곳이 어디냐고 묻곤 해서 본의 아니게 실망을 줄 때도 있어요.
김동화 화백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
독자들과 소통을 많이 하시나 봐요 신문에 연재된 것을 보고 제천에서, 혹은 용인의 누구누구 할머니라고 쓰인 팬레터들이 오더군요. 만화가 슬프진 않은데 눈물이 난다면서요. 격려와 응원도 많이 받았고요. 신문 연재 만화가 6개월만 지속되도 반은 성공한 거라고 하는데 4년이나 연재했으니 크게 성공한 셈이지요.
성공이요? 그 전에는 어땠나요 젊을 때는 다 어렵죠 뭐.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지만요. 뭐든 10년은 치열하게 해봐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도 안 해보고 ‘이 길이 아니다. 이 일은 아닌가 보다’하고 포기하는 것은 이르지 않나요? 젊었을 때는 어렵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지요. 그림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긴 했지만 그 생각으로 꾸준히 하다보니 지금에 이르게 되었네요. 19살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만화 인생 40년이 넘어갑니다.
(좌)2008년 부천국제만화축제의 포스터를 장식한 <빨간 자전거>
(우)김동화 화백의 <빨간 자전거>. 프랑스판으로도 제작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창작인이 가지는 슬럼프는 없었겠네요 딱 한 번 있었어요. 바비 인형 같은 몸매에 왕방울만 한 눈만 그리고 앉았으니 뭔가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거예요. 우리 정서에도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고, 스토리도 점점 떨어지고요. 그런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를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거든요. 나흘을 연속으로 서편제만 봤어요. 그리고 우리 것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으로 찢어진 눈만 연습하는 데 6개월이 걸리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야기가 ‘기생 이야기’입니다.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지요. 지금은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출해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다른 나라에 보여주고 있지요.
독자들 마음에 휴식 같은 여유를 주는 만화, <빨간 자전거>의 일부분
그럴 땐 만화가로서 행복할 것 같아요. 만화가라서 얻은 행복이 또 있다면요 초반 무명 시절에 제 만화를 보고 무작정 문하생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소녀가 있었어요. 제 문하생 1호인 셈이지요. 지금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아내, 한승원입니다. 같이 작업을 하다보니 신뢰는 있었지만 모르는 남이 만나 연애하듯 뜨겁진 않았어요. 스며드는 느낌이랄까요? 아내와는 같은 일을 하는 덕에 공유할 거리도 많고 모든 것을 상의도 할 수 있는 훌륭한 동반자입니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당신은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아내의 응원은 백 사람의 응원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김동화 화백의 작업실에는 그가 모은 골동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의 작품들은 구상노트에서 한 단계 거친 후 탄생한다.
말씀을 듣다 보니 작품들과 본인이 무척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각적인 작품보다는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편리해지긴 했지만 빠르고 가벼워지는 것 같아 어쩔 때는 ‘일회용 반창고’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렬함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제 작품이 생활 속 작은 소품처럼 독자들 삶에, 기억에 자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쓸 것이고요.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란 쉽지 않다. 그래서 따뜻한 색감과 잔잔한 감동이 담겨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가는 김동화 화백의 작품은 더욱 특별해 보인다. 서로가 따뜻해지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그. 내년 가을 쯤 출간된다는 김동화 화백의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