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문화

더보기

과학/경제/시사

더보기

건강/요리

더보기

조직문화/에세이

더보기

인터뷰

더보기

독자글밭

더보기

작은 선물

작은 선물

글. 박수빈(경남 통영시)

세계적인 축구 스타 중 한 명이 문신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문신을 하게 되면 1년 동안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헌혈에 얽힌 대학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대학교 2학년 때, 사회봉사론 과목을 수강했다. 실제 강의가 없는 대신 정해진 시간을 봉사하면 학점 인정이 됐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리포트를 쓴다거나중간, 기말시험을 잘 보려 안달복달 않아도 된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곧바로 신청을 했다.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헌혈을 하고 증서를 제출하면 봉사 4시간을 인정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영화 예매권도 얻을 수 있다니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헌혈에도 종류가 있었다.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며 향한 헌혈의 집,첫 시도를 앞두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뿌듯한 마음이 앞섰다. 신청자 신상 정보를기록하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럴 수가!’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철분 수치가 낮아 불가능함]농담 반, 진담 반, 내가 헌혈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몸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이렇게 시도가 힘든 경우가 있다고 하시며주의 사항을 알려주셨다. 이후 한 차례 더 도전했지만, 같은 답변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다른 봉사활동으로 학점 인정은 받았지만 이루지 못한도전에 대한 아쉬움, 허탈함이 남았다.지속적인 헌혈로 사랑을 베푸시는 분들을 보면 감탄하곤 한다.누군가를 돕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속적인 체력 관리로건강한 육체를 얻을 수 있다.나눔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에 앞서,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언젠가 당신과 나에게도 작은 선물을 할 그날을 그려본다.

새로운 시작, 도전

새로운 시작, 도전

글. 박채성(전북 익산시)

내 나이 지천명을 코앞에 두고 새로운 것에 또 도전장을 냈다. 수많은 직업을전전하다 3년 가까이 아이돌보미 일을 하고 있어서, 이게 마지막 직업이 될 줄 알았는데말이다. 그동안은 좋아하는 영아들을 주로 돌봐왔지만, 평일엔 종일반,휴일엔 시간제로 일하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가서 디스크에 걸리고 말았다.할 수 없이 조금 큰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요즘엔 첫돌 전부터도 아이들을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니 조금 자란 아이들의 돌봄 시간은 자연스레 아침과저녁으로 몰린다. 현재 1년 가까이 돌보고 있는 아이도 부모님이 늦게귀가하니 낮에는 유치원에 가고 저녁에는 내가 돌본다.처음에는 시간이 비는 낮 동안 극장도 가고 운동도 가며 한산한 여유를 마음껏 즐기니좋았다. 하지만 남들 퇴근하는 저녁에 일을 하고, 낮에는 시간이 남으니 게으름뱅이가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이 너무 아까워 새로 알게 된 ‘생활지원사’라는직업에 도전했다. T/O가 잘 나지 않는 편이라 하여 일단 서류를 낸 다음, 마음을 비우고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내 직업도 있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갑자기 퇴직하게 되어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서류 낸 사람들이 100명도넘었다는데 난 참 행운의 아줌마였다. 그렇게 낮에는 생활지원사, 저녁엔 아이돌보미로일명 ‘투잡’을 시작했다. 전 담당자가 갑자기 퇴직을 해 인수인계를 못 받은 상태다 보니,배정받은 어르신들을 두서없이 찾아가며 돌봤다. 게다가 일일제공지도 써야 했고전산입력도 해야 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혼자 터득해가며 ‘처음엔 다 힘들지.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그런데 내 의지와 열정과는 달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 보다. 몸에 소양증이생기고 눈도 가렵다 못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이상이 없단다. 안과에서도,피부과에서도 원인과 병명을 말씀 못 하시고 약만 처방해주셨는데 나아지질 않아생활을 제대로 못 할 정도가 됐다. 어떤 때는 허용량의 두 배씩 약을 먹어댔다.나만은 늙지 않고 늘 청춘일 줄 알았는데, 검사에서도 갱년기로 결과가 나와 호르몬제를처방받았다. 갱년기라는 말에 웃음이 났지만, 이젠 흘러가는 세월의 변화를겸허히 받아들이고 몸 관리에 더 신경 쓰자고 다짐했다.지금 돌보고 있는 어르신들은 날 보고 참 좋은 나이라고 하시며 부러워한다. 그런어르신들을 보며 난 꿈을 꾸어본다. 나는 오늘, 지금까지 한 번도 살지 않았던 삶을 살고있고, 남은 날들 중에서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다. 그러니 난 늘 젊게 사는 것이다.

엄마의 쪽지

엄마의 쪽지

글. 김도희(충남 서산시)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 작은 필통에 칼로 깎은 연필과 함께 딱지모양으로 접은 쪽지를 넣어주시곤 했다. 학교에 가서 필통 지퍼를 열어 글을 읽으면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 입가에 웃음이 퍼졌다.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이 잠을 자는데도 엄마는 이렇게 쪽지를 써 주었다. 소극적인 성격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때문이리라.게다가 나의 받아쓰기노트를 보시고 맨 마지막 여백에 또 메모를 해 주셨다.참 잘했다고. 사랑한다고. 몇 점을 맞든 엄마는 내게 잘 했다고 그리 쓰다듬어주셨다.초등학교 6년 동안 엄마는 그렇게 내 필통 속에 그리고 받아쓰기노트나 공책들속에 작은 편지글을 써 주셨다. 커가며 그것이 응원과 격려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에도 나는 항상 엄마와 함께 있는 것 같았고 점점 학교생활도 잘 해나가고 자신감이 생겼다.내가 중학생이 되는 해 엄마는 직장일을 쉬다 다시 일을 하시게 되었고 그날은 다른 도시로 교육을 받으러 새벽에 나가신다고 일찍 주무셨다.밤늦게 공부를 하다 나는 엄마에게 받았던 응원을 나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용돈을 모아 사 온 사탕을 일일이 포장하고 종이를 하트모양으로 오리고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엄마의 가방 속에 몰래 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가슴이 벅차고 행복함에 가슴이 울렁거렸다.매일 보는 우리 사이에 왜 내게 쪽지를 주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다음날 엄마는 버스를 타고 가다 나의 편지와 사탕을 보시고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는 거라고 하셨다.이제서야 엄마에게 편지를 쓴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받기만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는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입으로 하는 말처럼 흩어지지 않고 충만함이 모아지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그 뒤로 엄마와 나는 더 많이 쪽지를 주고받는다.엄마의 쪽지는 항상 내게 자신감을 주고 이 겨울 손난로보다 따숩다.

좋아요 많이 한 글

많이 읽은 글

여행/취미

더보기

인문학/문화

더보기

과학/경제/시사

더보기

건강/요리

더보기

조직문화/에세이

더보기

인터뷰

더보기

독자글밭

더보기

좋아요 많이 한 글

많이 읽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