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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나에게 버팀목이다!

가족은 나에게 버팀목이다!

글. 오영주(부산 진구)

30대 중반의 나이에 위암진단을 받은 후 나의 삶은 어두운 터널처럼 한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었다.건강하나 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암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조기발견해서 수술과 여러 번의 항암치료로 7년이 지난 지금은 완치되어 제2의 인생을 멋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힘든 병마와 싸움을 하는 동안 건강의 소중함과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인지 알 수 있었다. 경상도 남자로 무뚝뚝한 남편이었지만, 병간호를 위해 매일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직접 손과 발을 씻겨주고 밥을 떠먹여주는 헌신적인 남편이 있어서 힘든 병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어린 딸들과 내 걱정에 병원 창가를 바라보면서 숨죽이면서 눈물을 흘리던 남편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요즘은, 다시 연애시절로 돌아간 듯 더욱더 애틋한 부부가 되었고, 세상 누구보다 가장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로 함께 하려한다.아침 일찍 남편과 아이들을 보낸 후,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하루 24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다보니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캠핑과 낚시를 즐기면서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으며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 아내가 되려고 노력한다. 올 초에는 조그마한 텃밭을 마련했는데, 벌써부터 우리 가족들이 먹을 유기농 야채는 어떤 것을 심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행복은 돈이나 명예가 아닌 이렇게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가족과 건강인 것 같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가족의 소중함도, 건강의 소중함도 잊고 살았을 텐데. 지금은 모든 게 고맙고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초등학생의 인생 철학

초등학생의 인생 철학

글. 이은정(경남 거제시)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시켜놓고 나도 책상 앞에 앉았다. 비 내리는 잿빛 오후였다. 불행이 비겁하게 떼 지어 달려들었고, 운명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억울한 상황에 놓였던 나는 책상에 엎드려 낙서하고 있었다. 내 감정에 휩쓸려 무아지경일 즈음 한 여자아이가 내 등을 톡톡 건드렸다. 쳐다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돌아와 제자리에 앉았는데 그때부터 자꾸만 나를 쳐다보았다. 어서 마무리하라고 일러준 후 창밖을 향해 섰다. “선생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냉큼 돌아보았다. 아까 그 아이가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아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선생님 죽고 싶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아까 아이가 내 자리에 왔을 때 내가 한 낙서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시(詩)를 쓰는 중이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참 잠잠해졌던 아이가 내 거짓말에 도저히 속아줄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죽는 게 나아요. 내일이 되면 죽고 싶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나는 아이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썼던 낙서는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였다. 아이의 충고는 소크라테스, 니체보다 더 철학적이었고 잔인했으며 놀라웠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죽을까 말까 고민할 시간에 내일의 희망을 보라는 뜻이었을까. 미래의 어느 날은 죽지 않아 다행이라 여길만한 때가 있을 거란 뜻이었을까. 죽지 않고 살아보니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비단 죽음뿐만 아니라 걱정과 고민도 내일이 되면 사라지거나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시련이 오늘의 몫이라면 내일의 몫인 희망도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심오한 인생 철학을 초등학생에게 배웠다. 바야흐로 졸업과 입학의 시기다. 새로운 아이들의 인생 철학이 자못 기대된다. 

냉이가 전해준 향기로운 봄

냉이가 전해준 향기로운 봄

글. 송선아(구리시 인창동)

며칠 전, 퇴근하는데 동료가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봄나물이란다. 고향에 갔다 냉이를 캤다는 것이다. 하우스 재배가 아닌 겨울을 견뎌낸 냉이라 향이 진하고 단맛도 강하단다. 내가 미안해하자 많이 캐왔다며 가져가라 했다.집에 와서 냉이를 펼치자마자 집안이 봄 향기로 가득 찼다. 냉이는 다듬기가 힘든데 손질까지 된 상태였다. 냉이 된장국과 냉이 무침을 하려고 살짝 데쳤더니 금세 파랗게 변하면서 향기가 더 진해졌다. 냉이는 맛도 좋지만, 영양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봄을 대표하는 귀한 식재료다. 덕분에 봄을 담은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었다. 태생이 시골인 내게도 봄은 늘 반가운 계절이었다. 그만큼 겨울이 길고 추웠던 까닭이다. 봄이 되면 밖에 나가 놀 수 있어서 좋았다. 시골아이들에게 논다는 건, 자연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들판에 널린 게 봄나물이었고, 나물 캐는 일은 주로 아이들의 몫이었다.봄나물 중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미는 게 냉이고 그다음이 달래였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쑥이 쑥쑥 올라오고, 취나물도 향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우리 또래의 조무래기들은 옆구리에 바구니를 하나씩 끼고 콧노래를 부르며 들로 나갔다.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계절임에도 햇살은 포근했다. 봄꽃이 곧 필 거라는 징조였다. 냉이와 달래는 뿌리째 뽑아야 했다. 냉이는 쉽게 뿌리가 뽑혔지만, 달래는 기술이 필요했다. 긴 달래를 뿌리까지 뽑기 위해 빙빙 돌려가며 흙을 파내던 기억이 새롭다.나물 중에서는 쑥을 캐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그때는 쑥이 많아 한자리에서도 바구니를 채울 수 있었다. 나물을 캐다 힘들면 양지바른 곳에 모여앉아 고구마를 까먹기도 했다. 나른한 봄볕에 눈이 감기던 그때, 우리는 봄의 향기를 먹고 자랐던 것 같다. 향기로운 봄을 맞게 해준 동료가 고마웠다. 나도 조만간 쑥떡이라도 해서 여러 사람과 함께 봄을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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