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펼쳐 볼 진심을 부칩니다

언제든지 펼쳐 볼 진심을 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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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테마 ‘우체국 언저리에서’
‘언저리’는 어떤 공간 혹은 시간에 완벽히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나 지점을 말합니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우정문화 교양지 <우체국과 사람들>은 올 한 해 우체국 안팎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생각과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글. 안경자(작가)

언제든지 펼쳐 볼 진심을 부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36년 만에요.

썽빠울로에서도 으슬으슬

추울 때가 있었던 것 아시지요?

그런 때면 전 서울이

못 견디게 그리웠었지요.

왜 겨울이 오면 서울이 생각났을까요?

가난, 결핍, 어린 시절,

추억, 사랑, 고향…. 아, 고향!

고향의 기억이 없는 사람도 있던가요?


눈이 몹시 내린 12월 30일 이른 아침,

저희 가족은 부산에 놀러 가려고

서둘러 나오는데 행길에서 저는

묵묵히 걸어가는 어린

두 사내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큰애는 다섯 살, 작은애는 네 살,

그렇게 되어 보였지요.

두껍게 누빈 옷에 털 고무신을 신고,

그런데 두 아이는 똑같이 빡빡 깎은

머리였습니다. 이발소에서 나오는 길인가?

아주 동그랗고 깨끗한 머리통!

‘파르라니’라는 어느 시인의 표현 그대로

파르스름한 뒤통수.


형제는 손을 꼭 쥔 채 앞만 보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달려가서 묻고 싶었습니다.


비록 방 구석에선 지지 않을세라

싸울지라도 네 살짜리에겐 다섯 살짜리가

형이어서 자기를 쥐어주는 형의 손이

그 아침 든든하기만 하였겠지요.


왜 모자도 안 쓰고 왜 말도 없을까?

다섯 살짜리는 어쩌자고 동생의

손을 쥐어 줄 생각이 난 것일까?

자기만한 동생인데.

나는 고 또래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놀러 가는 자신이

그만 부끄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까닭 없이 말입니다.


1974년이었을 겝니다.

그날 새벽의 그 기억은 그 후로도

문득문득 살아 남아 싸늘한 바람이

휘익 불면 ‘썽빠울로에도 겨울이 왔구나!’

느낄 때마다 아픔 비슷하게

서러움 비슷하게 때로는 그리움도

비슷하게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곤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따스한 어린 시절,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그것이 고향입니다.

고향은 하나의 회상입니다.

고향은 한 토막의 옛날 이야기입니다.





고향은 이젠 어른들의

정다운 사투리였을 뿐입니다.

마음 먹으면 갈 수 있는 것에

고향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허허로움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꿈을 꾸거나 눈 감고 더듬어

고향의 이곳 저곳을 갈 수 있는

어른들은 행복합니다.

나는 아무리 아무리 해도 내 고향,

저 평안북도 박천 우리 동네 ‘어골’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왜정 말 소개령이 내려져 부모님께서는

두 딸을 데리고 박천으로 돌아가

거기서 셋째 딸을 낳으셨습니다.

곧 해방이 되자 세 딸을 품에 안고 걸리고

서울로 돌아오셨다는데

왜 둘째 딸 저는 고향에서의

추억도 기억도 이리 없는지요.


명절이면 뜨끈뜨끈한

온돌방 아랫목에 모여들 앉아

만두를 빚으며, 투박하게 빚으며

심한 평안도 사투리로 어린 시절을

주고 받던 어른들,

한 분 한 분 떠나가시고

나는 그분들의 말씀 가운데

자주 등장하던 ‘팡구동’, ‘덩주’…

그런 지명들의 정경도 희미해져 가는데

어쩌자고 지금 이 겨울 아침,


느닷없이 고향이란 말이 생각났을까요?

이제는 시인들도

고향 시를 짓지 않습니다.

고향은 옛 노래에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평안북도 박천도 고향,

태어나고 자란 서울도 고향,

피난 살이 3년 부산도 고향,

부산 가기 전 몇 달 살았던 통영도 고향,

36년 썽빠울로도 고향,


얼마 후면 지금 둥지 튼

이곳 부천도 고향일 겝니다.

고향이 많은 전, 그리워할 곳이 많은 전

이 겨울 아침 공연히 아침 까치

소리를 기다립니다.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지’

국민학교 때 국어 시간에 배운 시

한 토막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썽빠울로 모룸비 공원묘지에

누워 계신 아버님, 어머님 그럼….


2020년 1월 3일 아침, 경자 올림



ps.

아버지, 엄마!

전 컴퓨터로 편지를 썼어요.

한참 쓰다 보니까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졌어요.

컴퓨터를 모르시잖은가?

이메일 주소가 없으신데…

아! 아니에요. 그곳은 모든 것이

다 되는 곳! 이라는 깨달음이 왔어요.

그리고 우체통도 보이질 않는데요?

세상이 달라졌어요.

제가 중얼거리면 들으시겠지만

이렇게 글을, 편지를 쓰겠어요.

글은 두고두고 읽을 수 있잖아요?

- 42년생 경자가



안경자·이찬재 작가 


● 1942년생 동갑내기 부부인 두 사람은 1981년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2015년부터 한국의 두 외손주를 그리워하며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하여 이 편지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2017년 10월,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 저서로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