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다

기억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다

인문학/문화

기억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다

숨 쉬듯이 사진을 찍고 저장하고 추억하는 요즘,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에 먼저 경험을 기록해놓고,
나중에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서 경험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추억은 SNS에 공유되어 다른 사람과 경험 전쟁을 일으킨다. 이제는 그 전쟁에서 이길 ‘아름다운 나’를 남기기 위해 기억을 위한 경험을 조작하기에 이르렀다.

글. 강한나

기억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다
2019.10

기억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다


언제나 기록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 시대. 식사 전 포크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쥐고, 굳이 특별한 곳이 아니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상황과 사물을 보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그 덕분에 일상의 기억은 스마트폰에 머문다. 경험하기보다 디지털에 먼저 기록해놓고, 나중에 디지털 기억을 보며 추억한다. 기억을 디지털에 ‘위탁’하는 시대이다. 그렇게 스마트폰에 기록된 개인의 경험은 SNS에 올라간다. 기억의 외재화가 다른 사람과 경험 공유를 가능하게 했다. 공유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SNS에 올라간 나의 경험은 다른 사람이 올린 경험과 일종의 경험 경쟁을 일으킨다. 예전에는 나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상대방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었던 반면, 지금은 이미지로 경험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때문에 더 적나라하게 비교되며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카카오 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비주얼 SNS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illustration 이정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곳에만 간다


경험 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요즘 사람들은 기억을 위한 경험을 하고, 스토리를 부여하며, 조작을 감행한다. 이들에게 좋은 경험이란 디지털 기기에 남아있는 과거의 나를 다시 되돌아볼 때 자존감을 높여줄 경험이고, SNS 경험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경험이다. 그래서 좋은 경험을 ‘느낄’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경험을 ‘기록’할 수 있는 장소를 일부러 찾아간다. 오죽하면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이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이란 신조어가 생겨났을까.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미국에서 지난 5월 상륙한 ‘블루보틀’ 카페이다. 오픈 시간 전부터 수십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진다. 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블루보틀 인증샷을 찍기 위함이다. 커피 컵을 하늘에 들고 사진을 찍거나 카페 외관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요즘 유행하는 흑당밀크티도 같은 맥락이다. 흑당이 우유와 섞일 때의 비주얼에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들에게는 맛보는 것보다 시각이 우선이다. 이렇게 찍혀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흑당버블티 사진이 56만 6,000여 건을 넘어섰다.

아이러니하겠지만 오히려 사진을 남기고, 공유하는 것이 맛에 대한 만족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홍콩시티대와 미국 산타클라라대 연구진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행위가 음식 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실험했다. 음식 사진을 포스팅하는 조건 참가자의 경우, 디저트를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 SNS에 사진을 올리게 했다. 한편, 음식 사진을 올리지 않는 조건에 할당된 다른 참가자들은 디저트를 먹기 전에 옆에 있던 파란색 펜을 찍어 포스팅하도록 했다. 이후 양쪽 조건 모두 디저트를 맛보고, 맛에 대한 만족도와 카페 재방문 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카페를 추천할지를 조사했다. 실험 결과, 음식 사진을 포스팅하는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이 맛에 대한 만족도와 재방문 의도, 추천 의도 등 모든 면에서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더해 자신이 올린 음식 사진에 ‘좋아요’를 많이 받을수록 맛에 대해서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SNS에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과 부러움을 많이 살수록 이를 끌어낸 것에 더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는 인스타그래머블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히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는 인스타그래머블한지 여부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들은 인스타그래머블을 놓칠 수 없다. 카메라 금단의 영역이었던 미술관도 급기야 촬영 금지 제재를 풀고, 호텔에서는 바다나 하늘과 연결된 듯 테두리를 마감한 수영장인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로 수영하기 좋은 수영장 대신 ‘셀카’ 찍기 좋은 수영장을 만든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셀카 주 촬영 장소인 화장실 파우더 룸에 LED 전구를 달아 배우 대기실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이러한 세심함에 소비자들은 자발적인 홍보로 화답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어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거나, 카카오톡 프로필로 교체한다. 자연스레 SNS를 타고 입소문이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전시를 주로 하는 대림 미술관의 경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4만 명을 넘어설 정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8만, 국립현대미술관이 10만인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들이 인스타그래머블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illustration 이정윤



진짜는 중요하지 않다, 남는 것이 중요할 뿐


아름다운 기록을 위해 경험을 찾아다니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현실을 조작하기도 한다. 음식을 ‘있어 보이게’ 찍기 위해 먹다만 음식 접시를 프레임 밖으로 치우기도 하고, 해변가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사진을 찍으려 달려오는 아이를 가로막는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남겨놓기 위해 상황을 설정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현실을 연출한다. 

KFC 루마니아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트레이 매트에 이탈리아, 그리스 등 휴가지 사진을 담아 사람들에게 휴가를 간 것처럼 ‘사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제공했다. 이에 더해 휴가지에서 찍은듯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는 촬영 가이드까지 제공해 완벽한 사기극을(?) 도모했다. 휴가를 다녀왔다는 사실이 중요한가. ‘내가 이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음’만 드러내면 되지.

사기극의 최고작은 셀카다. 현실에서 어색하게 보일지언정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화장을 더 진하게 한다. 요즘에는 SNS에 공유하기 위한 셀카 화장법인 ‘소셜 뷰티’가 성행한다. 셀카를 돋보이게 하는 피부 보정법은 물론이요, 이에 필요한 쿠션, 팩트 등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현실에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면 사진 보정 앱을 통해 메이크업을 하면 된다. 라인의 ‘B612’, 중국 바이두의 ‘포토원더Photo wonder’ 등 완벽한 나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켜줄 무궁무진한 셀카 앱들이 현실의 나를 성형해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나 현재의 행복을 미래에 양보하지 말 것


우리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설명할 때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기억이 스마트폰에 위탁된 현재, ‘잊지 못할’이란 수식어가 꾸미는 명사는 추억이 아닌 ‘이미지’가 됐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잊지 못할 사진을 남기기 위해 현실을 조작하고 연출한다. 이는 개인의 자존감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SNS상에서 다른 사람과 벌어지는 경험 경쟁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만큼 내 머리에 남는 추억도 줄어든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의 도널드 노먼 인지과학 명예 교수도 사람들이 경험보다 디지털 기록을 우선시하다 정작 머리와 마음속에 추억을 남기지 못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딸의 연극을 보러 간 아빠가 촬영에 신경을 쓰느라 집에 돌아온 후에야 녹화된 테이프를 보며 자녀의 연극을 감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경험보다 기록을 우선시 하는 것이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에 대해 미국 페어필드 대학교의 린다 헹켈 심리학과 교수는 실제로 참가자들과 함께 미술관에서 이를 실험해보았다. 참가자들에게 총 30점의 예술 작품 중 15점은 사진을 찍고, 나머지는 찍지 않도록 했다. 다음날 참가자들에게 각 작품의 이름과 특징을 묻는 설문을 했더니 사진을 찍은 작품보다 사진을 찍지 않은 작품을 더 잘 기억한 것으로 나타났다. 

헹켈 교수는 이를 ‘촬영 장애 효과photo-taking impairment effect’라 명명하며, 사람들이 카메라가 자기를 대신해 기억해줄 것이라 기대해 아예 기억할 생각조차 안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에 남길 기억을 위한 경험은 경험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음미할 수 있는 행복을 앗아간다. 밥을 먹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소한 경험을 할 때도 그 자리와 상황, 느낌에 좀 더 푹 빠져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현재를 음미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높다. 

디지털 기기에 남기는 기억 보존은 우리의 완전하지 않은 기억을 보조해주고, 언제 어디서나 추억을 꺼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경험이 수반되지 않은 기록은 의미가 없다. 당시의 분위기, 기분, 함께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 경험의 기록은 나중에 되새겨도 큰 의미 없는 기억일 뿐이다. 현재의 행복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을 놓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름답게 기록된 과거의 나를 바라본들 그때의 감정이 부재하니 말이다. 





참고


강한나, 김보름.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미래의 창.

Jiang Zhu et al (2019). “Post Eat Change: The Effects of Posting Food Photos on Consumers' Dining Experiences and Brand Evaluation”. Journal of Interactive Marketing.

동아일보, 2019. 04. 07. “찰칵, 찰칵!” ‘인증샷’만 좋으면 그만?…‘인스타그래머블’의 역습.

서울경제, 2019. 07. 31. [로터리] 인스타그래머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