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우정(郵政)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개화파였던 금석 홍영식 선생의 눈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개화의 바람이 몰아치던 19세기 말의 조선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글. 이기열

나는 마땅히 어가를 따르리다 - 21화
2017.09


일러스트. 하고고




정변 셋째 날 윤치호가 찾아가자, 아버지 윤웅렬은 아들을 앉혀 놓고 정변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며 그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첫째, 임금을 위협한 것은 이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스르는 것이니 실패할 것이다.

둘째, 외세를 믿고 의지하였으니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셋째, 인심이 불복하여 변란이 안으로부터 일어날 것이니 실패할 것이다.

넷째, 청군이 곁에 앉아 있는데, 처음에는 비록 연유를 알지 못하여 가만히 있으나 그 근본 연유를 알게 되면 반드시 병사를 몰아 들어갈 것이다.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니 적은 일본병이 어찌 많은 청병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가령 김옥균, 박영효 등 여러 사람이 능히 순조롭게 그 뜻을 이룬다 하더라도 이미 여러 민씨와 주상께서 친애하는 신하들을 죽였으니, 이는 건곤전(乾坤殿)의 의향에 위배되는 것이다. 임금과 왕비의 뜻을 거스르고서 능히 그 위세를 지킬 수 있겠는가?

여섯째, 만약 김옥균, 박영효 등 여러 사람의 당인(黨人)이 조정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많다면 혹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두서너 사람이 위로는 임금의 사랑을 잃고 아래로 민심을 잃고 있으며, 곁에는 청인(淸人)이 있고 안으로 임금과 왕비의 미움을 받고 밖으로 당붕(黨朋)의 도움이 없으니 그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일이 반드시 실패할 터인데,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어리석고 한스럽다.

이어 윤웅렬은 그들 부자를 끌어들여 같은 무리로 삼으려 하니 두렵다며, 이에 따르면 역적이 되고 역적이 되면 망하게 되니 진퇴유곡이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탄식했다. 임금과 왕비가 그들의 청백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김옥균 일파와 같은 무리로 생각할 것이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느냐고 통탄하며, 서로 삼가고 경계함을 상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개화파 정부가 획기적인 개혁정책을 발표하다 


수세에 몰린 친청사대파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오로지 청나라 군사였다. 그들은 좌의정 심순택을 보내 청군의 출동을 요청했다. 청나라 장수 원세개는 이번 정변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개화파가 친청사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것임을 알고 있었고, 민영익의 문병도 다녀온 바 있었다. 군대를 동원하기에 앞서 그는 소규모 군사를 창덕궁으로 보내 개화파의 동정을 살폈다.

불시에 발생한 정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청군 내부의 의견은 크게 둘로 엇갈렸다. 젊은 장수 원세개(袁世凱)는 즉각 군대를 보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이 든 장수 오조유(吳兆有)는 일본과의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당분간 관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25세의 젊은 장수 원세개가 전격적으로 병력을 동원하여 창덕궁을 공격하면서 청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주전파 원세개는 뜬소문을 중심으로 그럴듯하게 꾸민 보고서를 작성하여 청나라 실권자 이홍장에게 보냈다. 


“인심이 더욱 흉흉하여 군인과 인민 수십만 명이 궁궐로 들어가 왜노(倭奴)를 모조리 죽이려 하였습니다. 조선 신하가 와서 왕비는 이미 죽었으며 왕도 생사를 모른다고 합니다. 또 들으니 홍영식 등이 나이 9살인 국왕의 서자를 불러들여 임금을 폐하고 어린애를 추대하려 한다고 합니다. 홍영식이 중국을 배반하고 일본에 붙었다 합니다.”


원세개는 그처럼 친청사대파가 퍼뜨린 유언비어에 몇 가지 사실을 포장하여 허황된 보고서를 꾸몄다. 청병을 출동시키기 위한 구실을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행궁을 창덕궁으로 옮기자, 홍영식과 김옥균 등 정변의 주역들은 개혁정치의 근간이 될 정령(政令)을 밤을 새워 손질했다. 그리하여 이튿날 공표했다. 그들은 14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정령을 담은 고시문을 작성하여 도성 곳곳에 내다 붙였다. 조정의 정책을 백성들에게 직접 고지한 것은 조선을 건국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1. 대원군을 며칠 내에 귀환하도록 하고, 청국에 대한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1.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사람으로 벼슬을 택하되 벼슬로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

1. 온 나라의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탐관오리를 근절시키고 백성의 궁핍을 구제하고 나라의 살림살이를풍족하게 한다.

1. 내시부(內侍部)를 폐지하고 그중에서 우수한 자는 골라 등용한다.

1. 간악하고 탐욕스러워 나라를 병들게 한 자는 죄를 다스린다.

1. 각 도의 환상(還上)은 영영 없앤다.

1. 규장각을 폐지한다.


원세개는 그처럼 친청사대파가 퍼뜨린 유언비어에 몇 가지 사실을 포장하여 허황된 보고서를 꾸몄다. 청병을 출동시키기 위한 구실을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행궁을 창덕궁으로 옮기자, 홍영식과 김옥균 등 정변의 주역들은 개혁정치의 근간이 될 정령(政令)을 밤을 새워 손질했다. 그리하여 이튿날 공표했다. 그들은 14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정령을 담은 고시문을 작성하여 도성 곳곳에 내다 붙였다. 조정의 정책을 백성들에게 직접 고지한 것은 조선을 건국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1. 대원군을 며칠 내에 귀환하도록 하고, 청국에 대한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1.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사람으로 벼슬을 택하되 벼슬로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

1. 온 나라의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탐관오리를 근절시키고 백성의 궁핍을 구제하고 나라의 살림살이를풍족하게 한다.

1. 내시부(內侍部)를 폐지하고 그중에서 우수한 자는 골라 등용한다.

1. 간악하고 탐욕스러워 나라를 병들게 한 자는 죄를 다스린다.

1. 각 도의 환상(還上)은 영영 없앤다.

1. 규장각을 폐지한다.

1. 순사제도를 급히 실시하여 절도를 방비한다.

1. 혜상공국(惠商公局)을 폐지한다.

1. 전후 간에 유배나 금고에 처한 자는 형의 양을 감안하여 감형한다.

1. 4영을 통합하여 1영으로 하고, 1영 중에서 장정을 뽑아 근위대를 설치한다.

1. 무릇 국내 재정은 호조에서 관할하고, 그 밖의 재무아문은 모두 폐지한다.

1. 대신과 참찬은 매일 합문 안 의정소(議政所)에서 회의하여 정령을 시행케 한다.

1. 의정부 육조 이외의 중요하지 않은 벼슬아치(冗官)은 다 혁파하되,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품계 하도록 한다.

서양을 본받아 개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표한 새로운 정령은 14개에 그치지 않았다. 내정을 개혁하고 백성들의 정신 자세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이 속속 발표되었다. 모든 백성은 일제히 머리를 깎도록 하고, 우수한 청소년을 선발하여 외국에 유학을 보내기로 했다. 그처럼 전통사회의 풍습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의 개혁 사항이 80여 가지나 되었다. 개화파 선각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갈망했던 개혁 과제를 집대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세상의 흐름에 둔감한 백성들은 떠도는 소문에만 귀를 기울일 뿐 개화파의 정령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변이 일어난 지 3일째 되는 날이 밝아 왔다. 간밤에는 청병이 내습하고 친청사대파의 반동이 있을 것이라는 풍문이 나돈 데다 민심이 흉흉했기 때문에 정변의 주역들은 특별경계령을 내리며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예상외로 평온하게 지나갔다. 그러자 개화파는 천복(天福)이라 기뻐하며, 만사가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낙관론에 젖기도 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김옥균은 청장 원세개에게 담대한 내용의 항의 서한을 보냈다.


“어젯밤 많은 병사들을 보내 선인문 닫는 것을 방해한 것은 조선 백성을 무시하는 행동이므로 묵과할 수 없다. 이후에도 또다시 이처럼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조선 정부가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청군 장수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혁신정치를 펼치기 위해 청나라에 대한 조공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청의 간섭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립자강을 추구하는 개화파의 입장에서 보면 언젠가 한 번은 크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여서 단단히 각오한 끝에 보낸 서한이라 할 수 있었다.



시국이 채 안정되기도 전에 일본군을 철수시키려 하다


새로 탄생한 혁명정부에서 김옥균이 맡은 자리는 호조참판이었다. 가난한 나라 조선을 제대로 개화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가 재정이라 하겠으나, 청군과의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군대를 정비하여 임전 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4영에서 1영으로 통합한 군대를 통솔하여 청군과의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김옥균은 군권을 쥐게 된 박영효와 서광범을 불러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새로운 정치의 기초는 재정 확립이라 하겠고, 재정의 필요성은 강군정병(强軍精兵)을 건설함에 있다 할 것이오. 근래 외국에서 사들인 무기는 사용하지도 않고 무기고에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쓸 만한 것이 없다 하는데, 곧바로 점검하여 수리부터 해야 할 것이오.”


그 말을 듣자, 박영효와 서광범은 즉시 신복모 등 행동대장들을 불러 무기 점검에 나섰다. 김옥균의 지적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병사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는 물론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는 무기도 대부분 녹슬어 폐품 직전이었다. 병사들이 들고 있는 총은 총구가 녹슬어 탄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무기고에는 총이 쌓여 있었으나 전혀 쓸모가 없었다. 여태까지 병사들은 자신도 방어할 수 없는 총을 메고 다녔던 것이다. 따라서 청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는 병사들은 우선 총기를 분해하여 깨끗이 닦는 작업부터 해야만 했다. 
바로 그때였다. 김옥균, 박영효 등이 관물헌에 모여 정사를 논의하고 있는데, 대궐 출입문에서 전 경기감사 심상훈이 입궐하여 임금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왔다. 심상훈은 바로 어제 오후 계동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길 때 궁을 빠져 나가 친청사대파와 청군 장수들을 찾아다니며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킨 사실을 알린 자였다.

“심상훈이 상께 문안 인사를 올리려 왔다고? 그자는 안 된다. 그자는 믿을 수 없는 간신도배이니 자칫 우리 대사를 그르치게 할 수가 있다. 그자의 입궐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박영효가 화난 얼굴로 심상훈의 입궐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김옥균이 손을 가로저으며 말렸다.

“심상훈은 내 둘도 없는 친구요. 의심할 것 없소.”

김옥균이 그처럼 두둔하자 박영효는 심상훈의 면담 신청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알랑거리는 사람을 쉽게 믿는 것, 그것이 천하의 재사 김옥균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약점이었다.
덕분에 심상훈은 입궐하여 고종을 알현하고 문안 인사를 올렸다. 잠시 몇 마디 아뢰고 금세 물러갔다. 그러나 어전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감돌았다.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것이니 빈손으로 왔을 리 없었다. 필시 청군의 움직임을 전달했을 것이다.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창덕궁 주변은 조용했다. 동별영에 주둔하고 있는 청나라 군사들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관물헌에 모여 있는 정변의 주역들도 이대로만 간다면 거사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안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일본공사 다케조에가 영의정 이재원과 좌의정 홍영식에게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우리 일본 군대가 오랫동안 귀국 궁중에 주둔할 수는 없는 형편이어서 오늘 군대를 철수하고자 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될 말이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일본 군대인데, 일본군이 철수하고 나면 이번 거사는 수포로 돌아갈 것이오. 일본군의 철수는 아직은 시기상조요.”

다케조에의 느닷없는 말에 충격을 받은 홍영식이 정신을 가다듬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그때 마침 옆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옥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본 군대를 철수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공사의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철수해도 좋소.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소. 지금 각 영의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총칼은 녹이 두껍게 슬어 탄환이 들어가지도 않소. 때문에 병사들은 지금 분해소제를 하고 있는 중이오. 만약 이러한 때 귀국 군대를 철수시킨다면 이번 거사는 보나 마나 실패로 끝날 것이오. 앞으로 3일가량 더 기다려 시국이 안정된다면, 그때는 철수해도 될 것이오.”

다케조에의 어이없는 말에 배신감을 느낀 김옥균은 핏대를 올리며 항변했다.
다케조에는 한학자 출신으로 책상물림이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 게다가 감정 변화가 심해 무슨 일이든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처리하는 버릇이 있었다. 때문에 그와 손잡으며 적잖이 마음을 졸였던 것인데, 또다시 그처럼 본색을 드러내려 하자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일본군의 철수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청나라 군사와의 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군이 철수하게 되면 자칫 천하대사를 그르칠 수밖에 없기에 김옥균은 다케조에를 붙잡고 일본군이 철수해서 안 되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설사 일본군을 철수시키더라도 사관 10명을 교사로 정하여 근위대에 상주시키며 조선군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자 다케조에는 일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의 협조가 절실한 분야는 또 있었다. 가난한 나라의 살림을 맡다 보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 돈을 써야 할 곳은 널려 있는데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 바닥난 국고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외국에서 차관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상대는 일본이었다.


“국가의 기본은 재정인데, 지금 우리나라 재정의 궁핍함은 공이 잘 아는 바이며 전일에 약속한 바도 있소. 이제 귀국 우편선이 며칠 안에 입항할 터인데, 이에 앞서 급히 의논해야 할 일이 있소.” 


김옥균은 다케조에에게 다시 재정 문제를 거론했다.

“돈이 얼마나 필요하오?”

눈치 빠른 다케조에가 본론을 끄집어냈다. 

“500만 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우선 300만 불이 있어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소. 하지만 귀국 상인들로부터 300~500만 불의 돈을 모은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차관에 대해 의논하고자 하는데, 귀공의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소.”
“전일부터 귀공은 내 말을 믿지 않았소. 우리나라 상인들이 갑자기 큰돈을 마련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대장성에서 300만 불쯤은 오늘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오.”


다케조에는 웃는 얼굴로 큰소리쳤다.

“또 하나 부탁할 사항이 있소. 귀국에서 재정에 능통한 사람을 몇 명 고빙하고자 하니, 귀국 정부에 속히 보고하여 주기 바라오.”
“알겠소이다. 그렇게 하리다.”

다케조에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개화파 인사들은 하나같이 일이 곧 성사된 것처럼 기뻐하며 다케조에와 일본 정부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들의 애국심과 개혁 의지는 높이 살 만했으나, 지략과 술수가 판치는 국제관계에서 상대방의 술수를 제대로 읽기에는 그들은 너무나도 순진했다.



청국군과 일본군이 창덕궁에서 맞붙다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등 정변의 주역과 다케조에는 관물헌의 한 방에 모여 청국 군대를 물리칠 계책과 개혁을 크게 확대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때 청군 진영에서 사관 한 명이 찾아와 고종을 뵙고자 한다는 연락이 왔다.

“불가하다. 오조유나 원세개, 장광전 중 한 사람이 왔다면 접견을 허락할 수 있으나, 어찌 일개 무명 사관을 접견할 수 있겠는가?”

김옥균이 단번에 거절했다. 입궐이 허용되지 않자 사관은 고종에게 올리는 서신을 꺼내 놓았다. 청장 오조유가 쓴 편지였다. 서울 안팎이 평상시와 같이 평온하니 안심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단순한 문안 편지였다. 오조유의 편지를 읽자, 고종은 즉석에서 도승지 박영교로 하여금 답장을 써 청군 사관에게 보냈다. 이윽고 청군 진영에서 통역을 보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지금 원세개가 전하를 알현하기 위해 병사 600명을 거느리고 입궐하는 중이다. 병사는 300명씩 2대로 나누어 동ㆍ서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말을 듣자 김옥균이 통역을 불러 타일렀다.

“원 사마(司馬)의 알현은 사리로 보아 막을 수 없으나,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원 사마가 굳이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면 응당 좋지 못한 꼴을 볼 것이다.”

위기가 코앞에 닥쳐오고 있음을 직감한 개화파 주역들은 관원들을 관물헌 뒤뜰에 모아 놓고 회의를 열었다. 그때 청국 군사들이 곧 행동 개시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 왔다. 개화파는 그 사실을 다케조에에게 전하고 각 영의 병사들에게 단단히 경계하도록 타이르며 총검의 소제를 더욱 서둘도록 독려했다. 오후 2시가 지나 어떤 자가 청군 진영에서 다케조에에게 보내는 봉서 한 통을 가져 왔다. 청군 장수 오조유, 원세개, 장광전이 연명으로 쓴 편지였다.

“듣건대, 난민들이 난동을 부려 대궐을 침범했다 합니다. 존대인은 이웃의 불안을 내 나라의 불안처럼 생각하시고 군졸과 함께 대궐로 들어가시어 국왕을 수호하신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 군대 역시 하늘의 명을 받들고 난민을 소탕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웃의 불안을 어찌 좌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곧 군대를 이끌고 대궐로 들어가 귀국 군대와 힘을 합쳐 난민을 퇴치하려 합니다.”




그들은 그처럼 비꼬는 말로 군사 동원의 명분을 내세우며 전쟁을 선포했다. 다케조에가 그 편지를 채 펼쳐 보기도 전에 느닷없이 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동문과 남문에서 청나라 군사가 협공해 들어왔다. 이어 총소리가 나며 탄환이 어지럽게 공중을 날아다녔다.
청장 원세개와 장광전이 이끄는 군사 수백 명이 두 부대로 나뉘어 한 부대는 관물헌 정면에 있는 숲에서 쳐들어오고, 또 한 부대는 낙선재 쪽에서 침입하여 관물헌을 좌우에서 공격했다. 느닷없는 총포 소리에 놀란 궁인들이 허둥대는 바람에 궁중은 물이 끓듯 소란스러웠다. 






소설 소개

우리나라 근대 우정(郵政)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개화파였던 금석 홍영식 선생의 눈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개화의 바람이 몰아치던 19세기 말의 조선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저자 이기열

30년 가까이 월간 《정보와 통신》 (現 《우체국과 사람들》)지 편집장으로 일하며 도약 연대의 정보통신 발전상을 지켜보았다. 1980년대 정보통신 발전 비사인 <소리 없는 혁명>을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