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우정(郵政)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개화파였던 금석 홍영식 선생의 눈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개화의 바람이 몰아치던 19세기 말의 조선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글. 이기열

나는 마땅히 어가를 따르리다 - 18화
2017.06

일러스트. 하고고


거사 날짜가 정해지자 개화파 주역들은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사람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의 주인공인 홍영식이었다. 축하연 개최 일자를 확정하기에 앞서 그는 각국 공사와 영사가 참석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했다. 당시 조선에 공사 내지 영사를 파견한 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청국 등 5개국에 불과했다. 청나라는 속국임을 이유로 조선에 공사관을 두지 않고 공사도 임명하지 않았다. 다만 조선과 체결한 무역장정(貿易章程)에 의해 상무위원을 파견했는데, 상무총판 진수당(陳樹棠)이 사실상 총영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5개국의 공사 내지 영사의 참석 여부를 문의한 끝에 결정한 날짜가 12월 4일(음력 10월 17일)이었다. 축하연의 개최 시각은 오후 7시였다.

그들 공사 내지 영사 외에 반드시 초청해야 할 대상은 서울 지역의 방위를 맡고 있는 전영사, 후영사, 좌영사, 우영사 등 4영사였다. 제거 대상 1호로 꼽고 있는 인물들이어서 반드시 초청해야만 했다. 그 밖의 초청 대상은 외아문 독판 등 구색을 맞추는데 필요한 사람들이어서 참석 여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조선 개화의 첫 번째 산물인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은 서구식 문명제도의 도입을 축하하는 본연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정변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행사의 성격으로 볼 때 그것의 공식 명칭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이라 함이 마땅했으나, 당시는 ‘우정국 낙성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체국 창구를 설치하기 위해 청사 내부를 전면 수리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당시에 흔히 사용하던 ‘낙성식’이라는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낙성식을 하루 앞두고 홍영식은 참석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거사와 관련된 일이어서 날짜를 미리 정하기 어려운 데다 외국 사신들의 일정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다 보니 그처럼 늦어졌던 것이다. 

초청장을 받고 참석할 수 없다고 회답한 사람은 일본공사 다케조에와 독일부영사 부들러(Budler)였다. 다케조에는 병을 핑계로 참석을 기피했고, 부들러 역시 병중이어서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4영사 중 후영사 윤태준은 궁중 숙직을 하는 날이어서 참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윤태준은 별도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낙성식 잔치는 끝나 가는데 방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거사를 이틀 앞둔 개화파에게 뜻밖의 사실이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고종이 올빼미족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고종은 밤에 일하는 버릇이 있어 해가 돋은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황혼이 되어서야 일어나는 날도 있었다. 만일 거사 시간에 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정사를 논하고 있다면 거사하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옥균은 고종을 모시는 내시 김태수를 불러 고종으로 하여금 거사일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는 묘책이 없느냐고 물었다.


“낼모레는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어서 전하께서 낮에 근신(近臣)들을 보시고 밤에는 일찍 침전에 드시도록 하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좋은 계책이 없겠는가?”

“계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모레 밤에 보실 문서를 미리 갖다 드리면 자연히 모레 낮에 보시게 되므로 밤에는 피곤하셔서 일찍 잠자리에 드시게 될 겁니다.”


내시 김태수는 그렇게 약속하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거사를 하루 앞둔 날 밤늦게 다케조에가 김옥균에게 사람을 보내 왔다. 거사일을 코앞에 두고 심부름꾼을 보낸 것으로 보아 급한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심부름꾼이 전하는 말인즉, 며칠 전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민영익을 찾아갔더니 “지금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생길 것이니, 외국인인 당신은 스스로 근신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다케조에는 행여 개화파의 모의가 누설되지 않았나 싶어 거사 시기를 조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거사일은 바로 다음 날이었고,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격이어서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드디어 거사일인 12월 4일이 밝아 왔다. 개화파 동지들은 각자 밀령을 받고 긴장된 마음으로 거사 시각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홍영식은 아침부터 우정총국에 나가 행사 준비 작업을 지휘했다. 연회 장소의 좌석이 제대로 배치되었는지 살피고, 초청 인사들이 제대로 참석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박영효는 다케조에를 찾아가 서로 맹세를 어기지 말자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변덕이 심한 다케조에가 혹시라도 변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김옥균은 오후 4시 우정총국에 들러 준비 작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궁중에서 연락책 역할을 맡고 있는 변수가 찾아와 어제 환관에게 부탁했던 일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대군주께서 오늘 날이 밝은 뒤부터 밀린 공사(公事)를 재결하기 위해 그대로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

고, 여러 근신들은 오늘 미시에 입대했는데 일찍 물러가게 했습니다.”


역관 집안 출신인 변수는 1882년 김옥균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서 양잠술과 화학을 공부한 학도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한 그는 임오군란이 진압되고 그해 8월 박영효를 수신사로 파견할 때 수행원이 되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듬해에는 미국에 보빙사절단을 파견할 때 또다시 수행원으로 발탁되어 미국을 방문한 뒤 전권대신 민영익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일주를 했다. 미국을 다녀오자 군국사무아문 주사로 임명되어 궁중에서 일하며 대궐 안의 정보를 염탐하여 개화파에 알리는 정보원 역할을 맡고 있었다.김옥균은 변수를 환관에게 보내 그날 밤 자신이 궁중에 도착하는 대로 고종에게 사건의 개요를 보고할 수 있도록 채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각 홍현에 있는 서재필의 집에는 거사에 참여할 장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홍현은 오늘날의 정독도서관 남쪽에 있는 고개로 김옥균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김옥균은 서재필의 집으로 찾아가 장사들을 격려한 뒤 날이 저물자 다시 우정총국으로 갔다. 

우정총국 낙성식에 참석한 인사는 행사의 주인공인 홍영식을 비롯하여 총 19명으로 외국인과 조선인이 반반쯤 섞여 있었다, 외국인으로는 미국공사 푸트와 서기관 스커더(Scudder), 영국영사 애스턴, 일본공사관 서기관 시마무라(島村久)와 통역 가와카미(川上立一郞), 청 상무총판 진수당과 서기관 담갱요(譚賡堯), 그리고 묄렌도르프가 참석했다. 조선인 관원으로는 주인 홍영식을 비롯하여 김옥균, 박영효, 외무독판 김홍집, 전영사 한규직, 좌영사 이조연, 우영사 민영익, 승지 서광범과 민병석 외에 미국공사 통역인 주사 윤치호와 신낙균이 참석했다. 신낙균은 우정총국 사사인 데다 영어를 할 줄 안 덕분에 통역으로 참석했다. 주인공인 홍영식이 기다란 테이블의 위쪽에 앉고 박영효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으며, 미국공사 푸트가 상객으로 홍영식의 우측에 앉고 외무독판 김홍집이 좌측에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술과 안주가 나왔다. 참석자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축하의 말을 주고받았다. 시국이 수상한지라 누구도 말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김옥균은 시마무라와 나란히 앉아 일본말로 대화를 나눴다.

그때 김옥균이 시마무라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져 좌중을 긴장시켰다.


“그대는 하늘 천(天)을 아시오?”

“요로시(ヨロシ).”


시마무라는 태연히 대꾸했다.   

두 사람은 그날 밤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의미 있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방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누군지 김옥균에게 다가가 홍현에서 사람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김옥균이 문밖으로 나가자 연락 임무를 맡고 있는 박제경이 가쁜 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별궁 방화는 기량을 다해 시도해 보았으나 도저히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궁 방화가 뜻대로 안 되거든 근처에 있는 아무 집에나 불을 지르라고. 불이 잘 붙는 초가집을 골라도 좋고.”


김옥균은 나직한 목소리로 급히 지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시마무라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김옥균이 일본말로 사실대로 말하자, 시마무라의 얼굴빛이 달라지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김옥균은 다른 방도가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으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었다. 연회석의 음식은 바닥나고 있는데, 방화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니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별궁에 방화하기로 한 행동대원 이규원과 윤경순은 그날 저녁 별궁 뒷문으로 가서 문을 열려 했으나 자물쇠가 굳게 잠가져 있어 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자물쇠를 깨뜨리고 문을 열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포댓자루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불꽃이 큰 소리를 내고 튀며 순식간에 불바다를 이루었다. 그때 사용하기로 한 폭발물은 김옥균의 집 하인 고영석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 장치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윤경순이 잘못 다룬 바람에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워낙 담대한 성격인지라 윤경순은 욱신거리는 화상에도 굴하지 않고 방화에 열중했다.별궁의 화재는 각처에서 모여든 병졸과 순라군에 의해 이내 진화되었다. 궁궐이 견고하게 지어진 데다 가연성 물질이 섞여 있지 않아 화재가 쉽게 잡혔던 것이다. 거사를 성공으로 유도하기 위해 단행했던 별궁 방화는 그처럼 한때의 소화 시험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궁전에 불이 나면 그 책임은 경비를 맡고 있는 전·후영사와 좌·우영사가 지게 되고, 따라서 그들이 모두 나와 불을 끄게 될 것이어서 그 틈을 이용하여 4영사를 척살하기로 했던 것인데, 그 일이 무산되었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민가에 불을 지르라고 지시했던 것인데, 그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친청사대파의 두목 민영익이 중상을 입다


낙성식 잔치는 끝나 가는데 방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김옥균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그때 연락과 정찰 임무를 맡고 있던 유혁로가 달려와 급히 보고했다. 


“다른 곳의 방화도 여의치 않습니다. 별궁 방화가 발각된 바람에 순라군이 사방으로 퍼져 있어 방화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장사들이 모두 이곳으로 오겠다고 아우성인데,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그건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장사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게 되면 자칫 혼란 중에 외국 공사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 순라군이 없는 곳으로 가서 다시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김옥균은 그렇게 지시하고 연회장으로 되돌아갔다.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눈치 빠른 민영익이 자못 의심하는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시마무라도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바깥이 소란해지더니 “불이야!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보다 먼저 윤치호가 창문 쪽으로 달려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근처에 있는 자기 집에 불이 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불이 난 곳은 우정총국 이웃에 있는 초가였는데, 불길이 활활 일며 화광이 충천했다. 그러자 불안에 떨고 있던 민영익이 아버지 민태호의 집이 근처에 있다며 연회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화재가 이웃집 초가에서 난 것임을 확인하자, 일행은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미국공사 푸트가 태연한 자세로 좌중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에 어떤 농부가 있었는데 아주 점잖은 사람이었어요. 밤에 손님이 와서 자고 있는데, 가까운 집에서 불이 났어요. 같이 자고 있던 손님이 몹시 놀라며 두려워했어요. 그러자 주인이 벽을 쓰다듬으며 ‘내 방의 벽이 매우 차니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리 경동하십니까’ 라고 말했어요. 그 한마디로 그 사람의 진중함을 가히 알 수 있었죠.”


이미 정변이 시작된 것임을 눈치챘음에도 푸트는 태연히 말하며 뒤숭숭한 연회장의 분위기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윤치호가 푸트의 이야기를 통역했으나 분위기가 어수선해 제대로 듣는 사람이 없었다. 윤치호가 다시 행사의 주인공인 홍영식을 향해 통역을 하려 하자, 묄렌도르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집에 가겠다고 했다. 푸트가 왜 그러냐고 묻자, 묄렌도르프는 불난 곳이 자기 집과 가까워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이조연과 한규직도 장수의 소임으로 불을 끄러 가지 않을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한 남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연회장으로 뛰어들었다. 모두가 놀라 쳐다보니 민영익이었다. 누구에게 칼을 맞았는지 그의 얼굴은 오른쪽 귀에서 눈두덩까지 쪼개져 있었고, 등이며 팔, 손목까지 군데군데 칼자국이 나 있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바깥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간단없이 들려 왔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공포 분위기가 감지되자 손님들은 북쪽 창문을 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김옥균도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북쪽 창문을 뛰어넘어 밖으로 달려갔다. 윤치호 역시 창문을 뛰어넘어 달아나다 보니 미국공사 푸트가 보이지 않자 연회장으로 되돌아갔다. 푸트는 그때까지 묄렌도르프와 함께 민영익을 간호하고 있었다. 

윤치호는 미국공사관 직원 사 서기를 불러 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사 서기는 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윤치호는 다시 푸트에게 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푸트는 하인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연회장 밖으로 나가 하인에게 총을 받아 푸트에게 건넸다. 

연회장을 먼저 빠져 나온 전영사 한규직과 승지 민병석은 관복을 벗어 던지고 사람들 틈에 섞여 빠져 달아나려 했다. 이에 앞서 한규직은 병사들을 모아 놓고 총에 탄환을 채우고 손에 칼을 잡고 엄히 경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한 방의 포 소리가 크게 울리자 손님과 하인은 물론 병사들마저 창과 칼을 버리고 담을 뛰어넘어 도망쳤다. 당시의 병사들은 그처럼 겁이 많고 나약했다.

개화파 주역들이 창덕궁으로 쳐들어가다

한편 연회장을 빠져나온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정변의 주역들은 교동 일본공사관으로 향했다. 애초의 계획은 4영사를 처치한 뒤 창덕궁으로 직행하는 것이었다. 계획을 바꾸어 일본공사관부터 찾아간 것은 혹시라도 일본공사 다케조에가 별궁 방화에 실패한 것을 이유로 거사에 협조한다는 약속을 취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만큼 다케조에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다. 일본의 도움이 없는 한 거사는 물거품 될 수밖에 없기에 먼저 일본공사관에 들러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기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주 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천, 천’이라는 암호를 중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도중에 행동대장 이인종과 서재필을 만났다. 그들은 두 사람에게 장사들을 모아 경우궁 밖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그날 행사의 주인공인 홍영식은 뜻밖의 상황을 맞아 마음이 몹시 초조했다.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김옥균 등 거사의 주역들과 함께 창덕궁으로 달려가야 했으나, 빈사 상태에 놓여 있는 민영익을 그대로 버려두고 연회장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비록 이념과 노선이 달라 암살 대상에 올리긴 했으나, 그와 민영익은 한때 같은 개화파였고 동료 관원이었다. 당시의 조정 관원 중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기에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런 민영익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나 몰라라 팽개치고 거사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는 없었다.

그는 그때까지 남아 민영익을 보살피고 있는 묄렌도르프와 상의한 끝에 민영익을 근처에 있는 묄렌도르프의 집으로 옮겼다. 묄렌도르프는 미국공사관 주치의 알렌(Horace N. Allen)을 불러 민영익의 상처를 응급조치하도록 했다. 알렌은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건너온 지 며칠 밖에 안 된, 젊은 미국인 의사였다.

일본공사관은 병사들이 물샐 틈 없이 늘어서 지키고 있었다. 김옥균은 아사야마를 불러 다케조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공사 다케조에 대신 서기관 시마무라가 내당에서 나왔다. 우정총국 연회에 참석했던 시마무라는 벌써 공사관으로 돌아가 있었다. 


“공들은 어찌하여 대궐로 가지 않고 여기로 오셨나요?”


시마무라가 큰 소리로 물었다.

그의 물음에는 김옥균 등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들어 있었다. 


“알겠소. 공들의 뜻이 변하지 않았으니 안심이 되오.”


김옥균 등은 더 이상 확인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공사관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창덕궁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행동대원 김봉균과 이석이 등이 오래전부터 동네 어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행동대장 신복모는 용사 40여 명을 여기저기 매복시켜 놓고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대낮처럼 환히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창덕궁 출입문인 금호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지기 군사를 불러 문을 열라고 하자, 열쇠가 없어 열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화변이 일어나 시급히 고해야 하는데, 왜 문을 열지 않는가?”


김옥균이 목소리를 높여 꾸짖자, 수문장이 김옥균의 음성을 알아듣고 시급히 대문을 열었다. 수문장 역시 김옥균과 내통한 자였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거사의 주역들은 김봉균과 이석이 등 장사들을 거느리고 창덕궁으로 들어갔다. 이따금 군졸들이 순라를 돌고 있을 뿐 궁궐 안은 조용했다. 내전으로 통하는 숙장문에 이르자, 김옥균은 김봉균과 이석이를 인정전으로 보내며 그곳에 매설한 화약을 30분 뒤에 터뜨리라고 지시했다. 

협양문으로 다가가자 파수를 보던 무감이 큰소리를 지르며 앞을 가로막았다. 대궐에 드나드는 신하는 누구나 예복을 입어야 하는데, 그들은 평복을 입고 있어 저지당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궐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녕 몰라서 우리를 막으려 하는 거냐?”


김옥균이 크게 꾸짖으며 밀치고 들어갔다. 





소설 소개

우리나라 근대 우정(郵政)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개화파였던 금석 홍영식 선생의 눈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개화의 바람이 몰아치던 19세기 말의 조선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저자 이기열

30년 가까이 월간 《정보와 통신》 (現 《우체국과 사람들》)지 편집장으로 일하며 도약 연대의 정보통신 발전상을 지켜보았다. 1980년대 정보통신 발전 비사인 <소리 없는 혁명>을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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