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 아름다운 특권

클래식, 그 아름다운 특권

인터뷰

클래식,
그 아름다운 특권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

누군가가 클래식 음악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누군가’는 어떤 생김새를 지녔을까?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공간은 어떤 분위기일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윤범은 스마트폰에 클래식 음악을 채워 넣고 지하철을 타라고 권한다. 헬스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들으며 러닝머신 위를 달리라고 말한다. ‘최애’ 연예인 사진 옆에 당당히 베토벤 엽서를 붙이라고 말한다. 가능한 이야기인가? 물론이다. 조윤범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글. 유재원 + 사진. 콰르텟엑스

클래식, 그 아름다운 특권
2018.12

다르게, 새롭게, 멋지게





2002년,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첫 연주회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거친바람 성난파도’라는 제목을 달고 시작부터 격정적인 대작 <슈베르트 : 죽음과 소녀>를 선보였다. 난해하기로 정평이난 <베토벤 : 대푸가>를 악보도 안 보고 외워서 연주하는 등파격적인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레퍼토리는 물론, 무대 연출, 홍보 등 모든 행보가 기존 클래식계의 관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중심에 콰르텟엑스의 리더 조윤범이 있었다. 

“클래식을 오랫동안 전공으로 해오면서 현악사중주가 ‘진짜’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대중성이 거의 없는 분야지만 음악을 좋아하면 결국 사중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었죠. 저희 팀은 그때 모두 젊었으니까, ‘지금 시작하면 나중에는 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팀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심지어 저는 당시 음악을 오래 그만뒀던 때였는데요, 잡지에도 빠져보고, 사업도 해보고 하니 클래식을 다시 함에 있어서도 대중과의 소통이나, 파격적인 기획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혁신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콰르텟엑스는 처음부터 완전히 달랐습니다. 대중성과 정통성, 정반대의 두 가지 콘셉트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죠. 그 결과 무엇을 하든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여전히, 같은 생각과 정신으로 팀을 유지해 나가고 있어요.” 

조윤범의 설명대로 콰르텟엑스는 작곡가들의 일생과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렉처콘서트로 클래식 대중화에 힘쓰는 한편, 오직 정통성에만 집중하여 구성한 큰 규모의 시리즈 연주회를 통해 현악사중주의 절정을 선보여왔다. 연주회를 위한 팀이 아닌 ‘진짜’ 음악을 위한 팀을 완성하고 싶었던 조윤범은 ‘일단 현악사중주의 모든 곡을 연습해보자’는 목표를 세웠고 콰르텟엑스는 2년 반 동안 치열하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 결과 모든 현악사중주 곡을 섭렵한 콰르텟엑스는 2006년, 고전과 현대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의 전곡 연주회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컴플리트>, 이듬해 현악사중주 명곡을 모두 연주하는 <히스토리>, 이후 낭만파실내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콰르텟엑스와 세 개의 방>,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회 <베토벤 백신>을 차례로 선보였다. 뜨거운 반응이 식을 틈도 없이 10년이 지났고 2016년, 콰르텟엑스는 다시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컴플리트>를 시작하며 관객들을 정통 클래식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올해는 그 다음 연주회의 테마였던 <히스토리>를 9월, 10월에 진행했고 12월 공연에 이어 2019년에는 1월, 3월, 5월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다. 





관객, 그 멋진 특권을 위하여 


12월 13일,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이 한창일 시즌이었지만 조윤범에게서는 지친 기색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 연습뿐이랴, 각종 강의와 칼럼 연재, 홍보와 디자인 등 손수 해내는 공연 준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인데도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다. 과연, ‘클래식계의 괴물’이라 불릴 만한 모습. 오죽하면 클래식 앞에 ‘파워’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파워 클래식이라는 이름은 제가 중학교 때 지은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는데, 라디오를 들으면 너무 지루했습니다. 이 괜찮은 음악을 왜 이렇게 지루하게 설명하는 거야? 불만이 생겨서 생각한 이름이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이었어요. 아직도 클래식은 너무 조용하고 지루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강해요.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가장 대비되는 이름을 쓰고자 했습니다. 클래식에는 모든 음악적 순간이 다 들어 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강렬한 것들을 선정해 아주 강렬하게 전달하고 싶어요. 잔잔한 감동과 강렬한 감동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그는 관객을 직접, 더 가까이에서 만나는 일에 각별히 에너지를 쏟는다. 직접 연주를 하는 연주자이기 때문에, 관객이 정말 원하는 해설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 여겼다. 모두 다른 삶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관객의 마음에 클래식을 전하기 위해 섬세한 고민을 이어갔고, 조윤범답게 위대한 음악가의 패션 감각이나 콤플렉스, TV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게임 등 클래식의 매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몽땅 다 끌어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었다. 음악을 무대 위가 아닌, 관객의 곁에 두기 위해 시작한 이 작업은 단숨에 수많은 관객들을 클래식에 매료시켰다. 


“저희가 첫 공연 때, <베토벤 : 대푸가>라는 아주 난해한 곡을 연주했는데요. 그 당시 제가 군대에 있을 때여서, 20대 초반의 선임들을 모두 초대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제가 제대할 때까지 자연스럽게 <베토벤 : 대푸가>를 언급하는 거예요. 저는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잘 몰라도,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클래식을 이야기하는 것. 저는 클래식이라는 이 멋진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알아가고 즐긴다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편견을 깨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것 뿐이고요. 저는 많은 분들이 관객이라는 특권을 절대 놓치지 말고 평생 즐기신다면 좋겠어요. 유일한 바람이에요.”









자기의 범위를 넓히는 사람 



이처럼 정통 클래식과 클래식 대중화라는 상반된 두 가지 길을 개척해온 콰르텟엑스 그리고 조윤범. 이런 이례적인 행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리고 반드시 끝을 본다’는 조윤범의 철학 덕분일 것이다. 클래식뿐 아니라 디자인, 컴퓨터, 영화, 역사, 철학,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진 조윤범은 어려서부터 관심사가 다양한 소년이었다. 여덟 살, 남들보다 늦게 바이올린을 접했지만 초조해하지 않았다. 다른 관심사가 생기면 음악을 잠시 놔두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딴짓을 충분히 즐겼다. 수도 없는 분야의 끝을 보고 나서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전혀 다른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예술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인간이에요. 자기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사람이죠. 뭔가를 이루려고 할 때, 남의 도움을 받기 이전에 먼저 자기가 해보려는 사람이기도 하죠. 우리는 얼마든지 자기의 범위를 정할 수 있어요. 가령 요리를 한다면 칼질만 할 것이냐, 플레이팅까지 완벽히 하고, 고객을 직접 만나 요리에 대해 소개하고, 요리책을 써서 알리기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문제죠. 저는 제 범위를 한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 롤모델을 음악가로 국한하지도 않아요. 기업인, 정치인, 역사학자, 스포츠 선수, 모두에게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더 종합적이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었죠.”


요즘에는 전원 생활을 즐기며 건강을 위해 꾸준히 트래킹을 한다는 조윤범. 하지만 그는 이내 덧붙인다. “저는 레고도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합니다. 게임은 한 50살 때까지는 계속 하려고요. 저는 여전히 신기한 게 너무 많아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틈만 나면 딴짓을 합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바꾸며 다시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연습을 하면 여전히 나아지는 걸 느껴요. 기량을 최대치로 올려보고 싶어요. 아직도 어디가 끝인 줄 모르겠어요.” 딴짓과 음악 사이, 대중과의 만남과 정통 클래식 연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을 발산하는 조윤범. 이토록 변화무쌍한 그가 단 하나, 변치 않는 것이라며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클래식은 자신이 아는 가장 멋진 것이라는 것, 관객에게는 온 마음을 다해 즐길 특권이 있다는 것. 그러니 올 연말, 조윤범과 함께 클래식에 입문해보는 건 어떨까? 12월 13일,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진행되는 그의 공연을 찾아 낭만파의 절정을 느껴보아도 좋고, 집에서 조용히 그가 추천한 슈베르트의 현악오중주 2악장을 들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뿐인가? 클래식은 설렁탕에 깍두기를 먹으며 배경음악으로 들어도 좋고, 하루를 마친 귀갓길 친구로 삼아도 좋은 음악이다. 다시 그의 말을 빌려 보자면, 클래식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이다. 






Profile


현재 <콰르텟엑스>의 리더이자 제1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연간 300회 이상의 공연과 강의를 진행하고 출간과 방송을 병행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


2017년 <클래식 A-yo> 출간


2013년 <나는 왜 감동하는가> 출간

KBS1TV <문화 책갈피>-‘청바지를 입은 클래식’ 진행


2012년 CBS음악FM <아름다운 당신에게> 주말 DJ


2008년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1, 2권> 출간,


2007년 극동아트TV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진행


2005년 한국일보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칼럼 기고


2002년 연주회 <거친바람 성난파도> 데뷔


2000년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