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기차를 타고~ 철도우편의 기억

편지는 기차를 타고~ 철도우편의 기억

우체국역사

편지는 기차를 타고~
철도우편의 기억

칙칙폭폭~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그 옛날부터 ‘기차’가 주는 묘한 감성이 있다. ‘설렘’, ‘기다림’, ‘추억’ 등, 이런 단어들로 표현되는 감성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하기도 하고 들뜨게도 하는데, 이는 ‘편지’가 가지고 있는 감성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비슷한 감성을 가진 ‘기차’와 ‘편지’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함께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철길을 달리는 우편열차를 볼 수 있었다.

글. 최재욱(한국우편사업진흥원)

편지는 기차를 타고~ 철도우편의 기억
2016.09

한때 가장 빠른 우편물 운송수단이었던 철도 우편이 사라진 지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1904년 경부선 철도가 만들어지면서 처음 시작된 철도 우편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운송속도와 운송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우편물 전용 화차를 연결하여 배달 시간을 단축하였다. 그러다 1973년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철도 우편 전용 열차가 탄생하게 되면서 철도 우편의 새 장을 열게 되었다. 1976년 1월 ‘체신’(현 디지털 포스트)에 실린 내용을 보면 당시 철도 우편열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체신(現 디지털 포스트) 1976년 1월호 기사

“드디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도 우편 전용 열차에 탑승한 승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낭만도 한때의 꿈이었고, 그들은 우선 눈앞에 쌓여 있는 행낭부터 정리해야 한다. 부산이나 대구 등 먼 곳으로 가는 행낭은 안쪽으로, 수원이나 천안 등 가까운 곳으로 가는 행낭은 출입구 쪽으로 놓아 열차가 정차할 때 수도(受渡)하기에 편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편 전용 열차에는 4명의 승무원이 동승한다. 전용 열차를 지휘 감독하고 작업을 보조하는 편장, 장부를 정리하는 원부, 등기우편물을 취급하는 특수, 열차가 정차할 때 우편물을 내려주고 올려 받는 수도가 그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분업제도가 아니다. 그들은 지정된 일만을 취급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협동심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차내에 쌓여 있는 행낭이 완전히 구분 정리될 때까지 그들은 협심하여 행낭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각자의 업무에 나서게 된다. 따라서 차내에서는 협동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우편 열차는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우편물이 들어 있는 행낭을 실은 행낭실과 우편물을 구분하고 사무를 볼 수 있는 우편실 겸 사무실로 구분된다. 

(중략)

이래저래 철도 우체국 승무원들은 고달프다. 추워도 몸을 녹일 수 없어 고달프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기에 고달프다. 또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운동을 해야 하기에 고단하다. 열차가 덜커덩거림에 따라 몸을 흔들거리면서 작업해야 하기에 별로 운동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식사를 때에 맞춰 하기 어려워 자칫 건강을 해치기 쉽다.”




일제강점기 철도우편물 교환 광경




철도우편전용차





일제강점기 철도우편국



가장 빠르게 전국의 편지, 소포를 전달해 주던 우편 열차는 1970년 이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우편 차량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대전 우편교환센터와 전국의 우편집중국이 우편 물류의 중심이 되면서 철도 우편의 기세는 크게 꺾이게 되었고, KTX가 철도의 중심이 되면서 무궁화호를 이용한 철도 운송으로는 익일배송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결국 2006년 5월 24일, 철도 우편 운송국이 폐지되면서 철도 우편은 102년의 역사와 추억을 남긴 채, 우리의 곁에서는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다. 다만 다른 ‘옛것’들이 그런 것처럼, 우정박물관(천안) 내 우편테마공원에 전시된 철도 우편차량 1량(21m×3m)을 통해 그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