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곳 우정총국

근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곳 우정총국

우체국역사

근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곳

우정총국

서울 안국동 사거리, 가을볕이 스며드는 기와지붕 아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유산을 마주한다. 조선말부터 오늘날까지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우정총국. 그 지나온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글. 최재욱

근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곳 우정총국
2017.10

우정총국의 개설과 폐쇄


사실 우정총국에 대해서는 한국사를 배웠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근대 우정 업무의 최초 발상지이자 갑신정변의 무대가 되었던 그곳. 사적 213호로 지정된 우정총국은 근대사에 있어 중요한 역사 유산 중 하나이다. 현재의 우정총국이 위치한 곳은 원래 전의감(조선시대 궁중 내 사용하는 의약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 건물이었다. 그러다 1883년~1884년 보빙사 사절단으로 외국 문물을 접한 부사 홍영식이 새로운 통신제도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고종에게 건의하였고. 이후 1884년 4월 우정총국을 설립하라는 왕명을 받들어 해당 건물에 우정총국을 개설하였으며, 홍영식은 초대 총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은 20일 만에 폐쇄되었다. 이후 11년간 우정 업무가 중단되면서 통신 제도는 옛 방식인 우역제로 되돌아 갔으며, 이때 홍영식과 우정총국에 관련한 모든 자료가 폐기되어 오늘날 당시 자료를 찾기 어려운 건 아쉬운 일이다.




1972년 체신기념관(우정총국) 개관 당시 내부



대조선국 우정국사무직제장정(우정총국 내 전시)



1972년 체신기념관(우정총국) 개관 당시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참석자들


청사의 역경 그리고 변화


《한국우정 130년사》에 따르면 갑신정변 이후 방치되었던 우정총국 청사가 다시 공공기관으로 사용된 것은 한어학교를 개교할 때이다. 이후에는 1904년 애국단체 보안회에서 진행한, 일제 황무지 개간 요구를 반대하기 위한 집회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일본인 소유가 되었다가 광복 이후 민간인 소유가 되었던 우정총국 건물은 1956년 체신부가 매입하여 관리하면서 국가 소유가 되었다. 이기열 작가의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에 따르면 매입 당시에 바로 복원하여 체신기념관으로 활용하고자 했지만 담당자 및 정권이 교체하면서 관심이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1962년에는 국보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원형이 변형된 것을 이유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1963년 7월 체신부는 그 건물을 체신문화협회에 무상으로 임대했다. 체신문화협회는 체신부 기관지인 ‘체신문화’(現 우체국과 사람들)를 발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였는데, 재원 충당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우정총국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 체성회(現 한국우편사업진흥원)로 사보발간 업무가 이관되고 체신문화협회가 해체되면서 우정총국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 되었다. 이후 체신부는 우정총국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코자 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문화공보부에 요청하여 그해 사적 제213호의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72년 체신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체신’ 지에 실렸던 기념관 개관식을 보면 당시 체신부장관은 물론 문화공보부장관, 국립박물관장을 비롯한 많은 내빈이 참석하여 개관을 축하하였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칵테일파티를 했다는 내용은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1987년 5월 대대적 보수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되었으며, 2012년에 이르러서는 체신기념관의 명칭을 우정총국 우체국이라 바꾸고 128년 만에 우체국 업무 중 일부 업무를 취급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중단되고 전시관 이용만 가능하다.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묻어나는, 산책하며 사색하기 참 좋은 계절 10월. 서울 시내의 궁궐로 나들이 가게 된다면 잠시 시간 내어 근대 역사의 순간들이 녹아있는 우정총국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양한 옛 자료를 보는 재미와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유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