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in 올림픽

우체국 in 올림픽

우체국역사

우체국
in
올림픽

머리에 상모를 쓴 호돌이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 벌써 30년전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시 반포 인근의 길가에서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경주를 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필자가 경험했던 가장 큰 국제 행사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국가적인 대형 행사,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국가 서비스도 함께 분주해지는데 우체국도 예외는 아니다. 1988년의 《체신》(현《우체국과 사람들》)에 실린 서울올림픽 당시 우체국의 모습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우체국을 기대해본다.

글. 최재욱

우체국 in 올림픽
2017.06


내외국인들의 우표수집 열기로 가득했던 선수촌 임시우제국




임시우체국, 서울올림픽의 

소통을 이끌다





당시 체신부는 올림픽 주경기장과 선수촌을 비롯하여 각 지방 경기장, 호텔, 숙소, 유관시설 등에 총 68개의 임시우체국을 운영하였다. 160여 개 국가에서 찾아온 올림픽 선수 및 방문객들에게 우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했던 임시우체국은 우편물이나 소포를 접수하고, 기념우표와 기념엽서 등을 판매하며, 환 지급업무도 취급하였다. 임시우체국은 1988년 8월 17일부터 10월 9일까지 운영하였으며, 체신부 직원 300여 명과 전기통신공사 직원 60여 명이 배치되었고, 자원봉사자 70여 명도 지원하였다. 경기 운영 기간이 짧은 지역이나 여의치 않은 곳에는 이동우체국을 배치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우체국서비스를 운영하였다. 

그중 선수촌 우체국은 단연 화제였는데, 올림픽 기간 내내 초만원이었다는 당시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전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운영한 선수촌 우체국은 당시 17명이 파견되었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고객을 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된 이후로 일 평균 방문객은 1천여 명, 우표판매는 재고가 없을 정도로 연일 고공행진을 펼쳤으며, 외국 선수들이 고국에 보내는 엽서와 편지는 하루 평균 1만여 통이 넘었다고 한다. 행사가 끝나갈 때쯤에는 선수들이 한국에서 산 선물을 고국에 보내면서 선수촌 우체국의 소인이 선명하게 찍히도록 부탁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개최 국가의 선수촌 우체국 소인은 꽤나 낭만 있고 기념이 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9월 17일 올림픽 주경기장 제1임시 우체국도 화제였는데, 당시 기념우표를 사고 기념통신일부인을 받으러 내·외국인들이 1시간에 200여 명꼴로 방문했고, 그날만 하루 1천여 명이 300만 원어치의 기념우표와 기념엽서를 사 갔다.  이러한 임시우체국을 통해 우편물 접수는 국제 60만 통, 국내 10만 통 등 70여만 통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며, 우표판매액도 7억 원에 이르는 등 성공적인 운영을 했다고 평가된다.올림픽 기간 동안 우체국이 우편배송, 우표판매, 환업무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올림픽과 관련한 또 다른 역할이 있었는데, 바로 올림픽입장권 판매였다. 전국 130개 우체국에서 농어촌지역 주민의 편의를 위해 입장권을 판매했는데, 예약을 받아 추첨하여 판매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88올림픽과 관련된 우체국의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올림필렉스 88이나 다양한 기념우표 발행에 대한 이야기 등 못다 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다음에 전하고자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우체국을 기대한다

이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가 8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조직위원회는 성공적인 행사 운영을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고, 홍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굵직굵직한 행사 때마다 앞장서서 우편 및 금융서비스를 지원하여 대외적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우체국!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지금까지 보여줬던 멋진 서비스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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