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색깔은 무엇일까? 가슴이 환해지거나, 따뜻해질 때, 삶이 생기롭고 충만하게 느껴질 때 가슴은 어떤 색으로 물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순간은 밝고 환한 빛이 가슴에 피어오르는 건 분명하다. 그건 바로 무지갯빛, 마음의 동산에 무지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어울림과 조화로움은 한 가지 색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삶이란 혼자 사는 게 아닌 동글동글 어울려 살아간다는 점에서 무지개는 감동의 순간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에 나는 그런 무지개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프랜차이즈 빵집 주위에 예술고가 있다. 예술고는 일반고와 다르게 학생들의 외모가 남다르다. 한마디로 우월한 신체적 유전자를 타고난 남녀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외모만큼이나 마음도 예쁘고 행동도 반듯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만은 않다. 폭풍 같은 청소년 시기이니 그들이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욕도 잘하고, 특히나 학생들의 화장이 진할 때 실망도 하게 된다.
학생들은 빵집에 자주 온다. 그중 일주일에 두어 번 아침에 빵을 사 가는 한 여학생이 있다. 아줌마인 내게 말도 잘 건네는 발랄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깍쟁이 같은 구석이 있는 데다 화장이 진해 어른인 내 눈에는 썩 탐탁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외모나 이성밖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강한 학생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예술고 학생들에게 이상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며칠 전에도 학생이 빵을 사러 왔다. 학생은 빵을 사고 등교 시간에 늦었는지 급하게 매장을 나갔다. 그런데 학생이 밖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였다. 다음 순간 할아버지 손에 빵이 들려지고 학생은 사라졌다. 나는 갑자기 할아버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뭔지 모를 충격이 뒤통수를 때린 것 같아서였다. 마침 할아버지가 두리번거리고 있어 나는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 뭐 찾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정확하지 않은 말투로 “물요”라고 했다. 나는 급히 매장으로 들어와 물과 빵 하나를 챙겨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할아버지는 배가 몹시 고팠던지 폐지가 실린 손수레를 세워두고는 길바닥에 앉았다. 그러고는 너무나도 맛있게 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가슴속에 갑자기 무지갯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 사이로 여학생의 모습이 스쳐 간 건 당연했다. 여태껏 내가 생각했던 여학생은 온데간데없고 마음이 예쁜 여학생이 활짝 웃고 있었다. 학생의 작은 선행이 내 마음에 무지개를 피운 것이다. 학생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께 나는 물을 가져다 드릴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빵을 더 드릴 생각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얼마나 어두운 눈을 갖고 있었던가. 겉모습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했으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람은 동글동글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살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학생이 가르쳐주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무지갯빛이 되는 건 사소한 일상이라는 것 또한 학생이 가르쳐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