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저 아래에서부터 꽃소식이 전해져오는 봄입니다. 그저 ‘보~옴’하고 소리 내어 말만 해도 봄이 성큼 다가올 것 같은 3월의 토요일 아침, 문득 늙으신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엄마, 한 시간 후에 모시러 갈 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갑작스러운 전화 약속이라 ‘어디?’라거나 ‘갑자기?’라고 물어보실 법도 한데 “응, 알았어.” 하고 약간은 고조된 목소리로 수화기를 놓는 걸 보니 엄마, 아빠에게도 봄이 찾아왔었나 봅니다. 40년 넘게 살았던 옛집 대문 앞에서 ‘엄마’를 크게부르니 엄마, 아빠가 아직도 겨울인 모습으로 나오셨습니다. 예전엔 제 눈에 예뻐 보이게 하고 나오시지 않으면 짜증도 냈는데 이제는 그저 부모님이 편하시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모습 그대로 제 눈에 담고 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빠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요?”
“지난번에 수술한 어깨가 다시 아파서 팔을 전혀 못 올리셔. 잘 때도 아프고, 활동도 못하니 답답해서 그래.”
“그래요? 그러면 오늘 그놈한테 우리 아빠 잘 봐달라고 호강 좀 시켜줄까?”
가까이 살면서도 무슨 핑계가 그리도 많은지 부모님과 이렇게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아고, 벌써 봄이 왔네. 저 나무들 좀 보소. 붉게 새 기운 움트는 것 봐.” 스쳐 가는 나무 하나, 들판 하나에도 눈을 떼지 못하시고 계속 온 세상에 말을 건네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그때 그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한 걸음 떼기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왜?’라는 원망이 칼날이 되어 온 삶을 생채기 내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하리라 생각했던 인연이 당연함으로 오지 않고, 매번 갑작스러운 이별의 인연으로만 왔던, 그래서 너무나도 많이 아팠던 그 시간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한 몸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꿈꿨던 소중한 인연이 어느 날 말없이 제 몸에서 사라지는 그 아픔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였을 겁니다. 어두운 밤이 되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계단 구석에 앉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울음이 저만의 울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러나 그곳엔 저만의 울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의 뒤에서 행여 저에게 들킬라 조심스레 눈물 흘리시던 아빠께서 어느 날 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아, 밖에 꽃 피었다. 놀러 가자”라고요. 세상은 이미 봄이었습니다. 겨우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무 어디에 저런 화사한 생명들이 숨어 있었을까요?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하얀 목련 앞에서 한 번, 붉은 진달래꽃 앞에서 한 번, 연두 빛 새순 앞에서 한 번 저의 손을 꼭 잡아주기만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그 손의 기운을 타고 봄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제 마음속에서도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삶을 향해 활짝 웃을 수 있는 희망의 꽃망울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