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밝은 목소리를 남겨주고 달려가고 있다. 베란다로 따라가서 학교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행복에 젖는다. 2년 전만 해도 나에게 이런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994년 아지랑이가 살살 피어오르던 5월에 우리 아이는 우렁찬 목소리를 뽐내며 태어났다. 방긋방긋 웃기도 잘하는 우리 아이는 많은 친지 분들에게 귀염을 받으며 자라났다.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모두 빠른 아이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꿈을 가져다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세 살, 네 살이 되어도 우리 아이는 말을 못했다. 다른 행동 발달이 빠른 편에 속했고 눈치가 빨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엄마' '아빠'를 부를 줄 알았고, 소아과 의사도 기다려 보자는 말씀만 하셨기에 곧 말다운 말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여섯 살이 여물어도 말은 제자리걸음이고, 대화로써 놀이를 할 때가 된 친구들은 하나 둘 멀어져 갔다. 그때서야 우리는 언어치료실의 문을 두드렸고, 우리 아이가 소리에 약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말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잘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아이는 큰 병원에서 몇 번의 검사를 거쳐 보청기를 맞추고서야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부터 듣기 연습과 말 배우기를 시작했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발음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래도 쉴 수 없어 정확한 발음이 나올 때까지 계속하곤 했다. 못하겠다고 억지라도 부리면, 매를 들고 찢어지는 가슴을 동여매었다.
소리를 듣게 된 2년 후 우리 아이는 그렇게 배운 말들을 엮어서 문장을 만들고 손짓, 발짓이 아닌 말로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늦게 귀를 열게 된 탓에 아홉 살이 되어 1학년이 된 우리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 재미있다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한다.
평생 보청기를 통해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직은 혀 짧은 소리를 한다고 한번 더 돌아보는 사람이 많 다. 하지만 들을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하게 여기며, 더 나아진 다는 희망이 있기에 학교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밝은 내일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