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체신부의 저금 보험관리국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관서장은 김용봉 국장이었다.
어느 날인가, 하이힐을 신은 모 여직원이 층계에서 낙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후 국장은 여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국내에서는 운동화를 신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신장이 160cm를 넘지 못하는 몽골리안인 우리들의 패션 감각을 충족시키기에 운동화는 어울리지 않는 신발 이었다. 그래서 일부 여직원들은 눈치껏 하이힐로 바꿔 신었다. 거기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는 패셔너블한 옷차림에 무릎 길이의 롱부츠를 신고 출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출근하여 운동화로 바꿔 신고 보니 너무도 불균형하여 옷맵시를 살릴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롱부츠로 갈아 신고 복도를 지나다가, 하필 국장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행정서기보 시보였던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발령장을 줄 때 내 선친의 돌림자까지 물으며 근무 잘하라고 격려한 것이 불과 몇달 전 이었다. 그런데 시보도 떼기 전에 발령권자의 지시를 어겼으니, 무슨 벌이 어떻게 내려 질까를 마음 속으로 헤아리면서….
순간 국장은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쓰윽 지어 보이 고는 '이 맹랑한 녀석 좀 보게. 아서 넘어질라. 운동화로 갈아 신어.’’ 하고는 그냥 지나 치는 게 아닌가. 그때의 국장은 무척 커 보였다.
그 시절 우리집은 삼선교였는데. 출퇴근시에는 본부 통근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때 삼선교에서 조석으로 통근 버스를 같이 이용하던 본부 간부가 있었다. 그 어른의 손에는 항상 검은 서류가방 같은 게 들려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참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 날 퇴근길에 그 어른에게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이 아련히 기억난다. 당신이 태국 우정학교에 파견근무를 할 적에, 방콕의 국립 경기장에서 한국과 태국의 축구경기가 벌 어졌는데, 한국팀이 지자 당신의 자녀들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려서 당황했었다는 것이다. 어언 3년을 그렇게 어른의 얼굴은 익혔지만, 존함은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어른도 내 이름을 모르리라.
그 후 나는 한 동료를 만나 그와 결혼하였다. 그때의 애송이 직원은 이제 40대가 되었다. 이따금 그의 손에는「정보와 통신」지가 들려져 왔다.
나는 거기서 퇴임한 김용봉 국장을 뵈었고, 나와 통근버스를 같이 타던 ‘그 어른'도 뵈었다. 그리고 어른의 존함은 권字영字수字를 쓰며, 감사관으로 재직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일상의 한 귀퉁이로 살며시 다가와서 그 옛날을 회상하며 미소짓게 해준「정보와 통신」 지를 왠지 애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