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최대의 어시장, 죽도시장
동대구역에서 포항역까지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운행한다. 무궁화호는 약 1시간 50분, 새마을호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지겹지 않게 기차를 타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창밖 풍경에 눈을 던진다. 어느새 봄이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 겨울, 그만큼 올봄은 유독 짧은 것 같다. 벚꽃은 벌써 졌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이 봄을 즐길 일.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일 것이고.
끼익~ 하고 기차가 선다. 포항역에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보따리를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 서너 사람이 전부다. 역사는 소박하고 아담하다. 포항이라는 공업도시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간이역처럼 옛스런 멋도 간직하고 있다. 역사를 빠져나오니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바로 앞이 시내다. 1박2일 일정으로 포항 여행을 계획한다면 죽도시장과 북부해수욕장 등 시내와 호미곶 일대를 먼저 돌아본 후 이튿날 포항 북부의 보경사와 내연산을 돌아보는 것으로 코스를 잡으면 무난하다.
첫 여행지는 죽도시장이다. 포항역에서 가깝다. 도보로 10분 거리다. 죽도시장은 전국 5대 시장이자 경북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손꼽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시장이었지만 70년대 초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대형 상설시장으로 커졌다. 약 14만 8,760㎡(4만 5,000평)에 1,2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시장은 크다. 활어횟집부터 건어물, 의류, 채소를 파는 난전까지 없는 것이 없다. 50여 년 전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시장에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김, 파래, 매생이부터 상어, 고래고기까지 동서 남해안에서 나는 거의 모든 수산물이 거래된다. “여기 없으모 딴 데 있을 턱이 없다”는 게 상인들 말이다. 생선을 실은 손수레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 억세지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며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해산물은 문어다. 경상도에서는 문어를 귀하게 여긴다. 제사를 지낼 때 문어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개복치라는 생선도 볼거리다. 크기가 2미터나 되는 물고기다. 물회로도 먹고 수육으로도 먹는데, 포항에서는 주로 등 부분의 흰색 창자를 삶아 초장에 찍어 먹는다. 운이 좋으면 시장 입구에서 개복치를 해체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포항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3가지가 있다. 과메기, 가자미 물회, 고래고기이다.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과메기. 겨울이 제철이지만 진공포장 기술이 발달해 요즘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두번째는 물회다. 시장 한켠에 물회 골목이 만들어져 있다. 물회는 고기를 잡느라 바쁜 어부들이 한 끼 식사를 빨리 해결할 요량으로 먹던 음식. 방금 잡은 물고기를 회쳐서 고추장 양념과 물을 넣고 비벼 훌훌 들이마셨던 데서 유래됐다. 처음에는 어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가 차차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포항물회’라는 지방특유의 음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가자미, 광어, 도다리, 노래미 등 흰살 생선을 주로 사용한다.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세번째는 고래고기. 전국에서 좌초(坐礁)한 고래를 인근 구룡포에서 해체하여 죽도시장에서 판매한다. 물고기 맛도 나고 소고기 맛도 난다. 2만원어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봄빛에 물든 바다를 만나다
떠들썩한 시내에서 빠져나와 바다로 향한다. 시내에서 가까운 바다가 북부해수욕장이다. 1976년 개장했다. 백사장의 길이가 1750미터, 폭이 40~70m에 달한다. 해마다 백사장 면적이 2~3미터 정도 넓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봄볕에 물든 바다는 연둣빛으로 반짝이고 반공을 휘젓는 갈매기들의 날갯짓도 한가롭기만 하다. 북부해수욕장의 특징은 포스코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 밤이면 환하게 불을 켜는 포스코와 어우러져 사뭇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수욕장 뒤편으로 카페와 레스토랑, 횟집 등 유흥시설이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포항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해수욕장이다.
좀 더 한적한 해수욕장을 찾고 싶다면 칠포해수욕장과 월포해수욕장을 추천한다. 포항시에서 북쪽으로 13km 거리에 있는 칠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2,000미터에 달한다. 백사장은 왕모래가 많이 섞여 있으며 주변에서 바다낚시도 가능하다.
포항 하면 떠오르는 여행지가 호미곶이다. 해돋이로 잘 알려진 곳이다. 광장 앞 바닷가에는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상생의 손’이 있고 상생의 손 맞은편에는 호미곶 등대가 있다. 호미곶 등대는 26.4m 높이의 초특급 등대다.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고 높이의 등대였는데 울산 동구 화암추 등대(32m)가 세워지면서 두 번째로 높은 등대가 됐다. 포항의 본디 이름은 영일(迎日). 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신라 태양신 관련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에 뿌리가 닿아 있는 지명이다. 지명에 걸맞게 포항은 해맞이 명소다. 아침 7시 15분 무렵이면 수평선 너머를 붉게 물들이며 햇덩이가 떠오른다. 해돋이는 벅차다. 찰나보다 빠른 태양 빛도 바다를 물들일 때는 한걸음씩 파도를 딛고 걸어와 뭍에 닿는다. 바다에서 평생 물질을 하며 살아온 어부들도 이런 일출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고 한다. 비록 수평선에서 오메가(Ω)로 떠오르는 일출이 아닐지라도 감동은 결코 그에 못지않다. 실제로 오메가 일출은 1년에 몇 번 되지도 않으니 관광객들이 보기는 하늘에 별 따기. 너무 쨍하게 솟는 일출보다 구름이 조금 깔린 바다에서 뜨는 일출이 더 아름다울 때가 많다. 호미곶 일출도 좋지만 포항 토박이들은 해질 무렵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등대에 불이 켜지고 고기잡이를 떠났던 배들이 항구로 줄지어 돌아오는 풍경은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든다. “등대를 제대로 볼라 카믄 안개가 희미하게 낀 날이 좋지예. 등대 불빛이 쫙 살아나거든예. 오징어잡이 배들이 켜놓은 불하고 등댓불하고 어울리면 그기 바로 그림 아임니꺼.”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한 어부의 말이다. 오후 6시 30분이 지나자 해가 뉘엿해진다. 어느새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호미곶 등대의 불빛은 12초마다 한 번씩 하얀 불빛을 내뿜는다. 아득한 밤바다, 12초마다 눈이 부시다. 호미곶 등대의 불빛은 바다 바깥 40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간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이지만
어느 날, 어느 자리에서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곤 한다.
새 계절 호미곶의 오늘
아침 해는 희망이리다.
눈앞에 펼쳐진 유려한 폭포 물줄기가 마음에 남은 묵은 때를 씻겨내 준다. 시원한 에너지 마음 가득 채우고 돌아온 일상은 그날 그 폭포처럼 강렬할 것이다.
초록으로 가득한 봄 계곡
봄이면 꼭 가봐야 할 좋은 계곡이 포항에 있다. 내연산이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포항시 북구 청하·송라·죽장면과 영덕군 남정면의 경계를 이룬다. 4km쯤 되는 골짝 곳곳에 폭포가 즐비하다. 폭포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중 제1폭포인 쌍생폭포부터 12폭포인 시명폭포까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폭포가 12개나 된다. 은폭, 연산폭, 관음폭, 무풍폭, 상생폭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특히 제7폭포인 연산폭포까지는 편안한 산행 코스가 약 2.7km 이어지는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평탄한 길이라 부담 없이 걷기여행을 즐길 수 있다. 폭포에서 떨어진 소(沼)가 유난히 깊고 넓은 잠룡폭포(제4폭포)는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이기도 한데, 영화 속에선 남부군 대원들이 발가벗고 목욕하는 곳이 지리산 골짜기로 나오지만 실은 내연산이었다.
내연산 계곡의 하이라이트는 연산폭포다. 연산폭포 가기 전 구름다리가 아찔하게 걸려 있고 그 아래로 관음폭포가 흘러내린다. 구름다리 뒤의 암벽은 학이 깃든다는 학소대. 출렁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연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내연산의 빼어난 경치는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불리는 겸재 정선이 1753년 58세 나이로 이곳 청하현감으로 재직할 때 ‘내연삼용추’라는 연작 작품으로 그리기도 했다. 조선 숙종 역시 내연산을 찾은 뒤 “봄밤 날 새도록 모르는데 / 곳곳에 우짖는 새소리 / 간밤에 비바람 소리 들리더니 꽃은 얼마나 저버렸는가”라는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내연사 입구에 천년고찰 보경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진평왕 때에 지명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스님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경과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연못에 묻고 지었다고 해서 보경사로 불리게 됐다. 화려하거나 큰 규모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단아하면서도 소담한 경내가 울창한 솔숲과 어울려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절 가운데 있는 보경사 오층석탑은 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내연산을 다녀와 보경사 대웅전 앞에 선다. 봄볕이 내려앉는 절 마당은 고요로 가득하다. 봄바람이 무심한 듯 풍경을 흔들고 지나가고 발등에 봄 햇살이 어룽댄다.① 포항에서 만난 봄날이 마냥 눈부시기만 하다.
각주 ① 뚜렷하지 아니하고 흐리게 어른거리다.
여행정보
★ 교통편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운행한다. 06:00, 06:35, 09:00, 13:27, 15:15, 18:30, 19:42 출발. 포항역 054-273-7788, 포항시청 관광진흥과 054-270-2253 참조.
대구 동부정류장에서 포항까지 시외버스가 운행한다. 06:30부터 24:00까지 약 10분 간격으로 수시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20분.
★ 묵을 곳 애플트리(054-241-1234), 코모도호텔(054-241-1400), 샹그리라모텔(054-283-3395), 태영펜션(054-242-7787), 엘마르펜션(010-4611-3080) 등이 있다. 북부해수욕장과 호미곶 인근에 숙박시설이 많다.
★ 먹을 곳 죽도시장 부근의 동림식당(054-247-6700)과 승리회식당(054-247-9558)의 활어회가 유명하다.
환여횟집(054-251-8847)은 물회로 이름난 곳이다. 해물칼국수의 일종인 모리국수도 맛보자. 구룡포에 까꾸네 모리국수(054-276-2298)가 잘 알려져 있다. 구룡포
동림식당(054-276-2333)은 구룡포에서도 알아주는 복집. 콩나물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내는 복탕이 일품이다. 꽁치구이 등 반찬도 예닐곱 가지가 함께 곁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