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앞은 여전하다. 기와지붕을 올린 옛날 여관들과 식당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단체환영’ ‘기념품 판매’라는 현수막을 단 가게들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불국사 역시 그 모습 그대로다.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던 청운교와 백운교도, 친한 친구들과 어깨를 걸고 기념사진을 찍었던 석가탑, 다보탑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대웅전 처마에 깃드는 봄 햇살마저도 그대로인 것 같다.
해질 무렵, 여인의
가슴선을 닮은
봉긋한 고분의
곡선이 뒤편 산의
능선과 어울려
빚어내는 절묘한
풍경은 한 편의
퍼포먼스다.
그 퍼포먼스는
화려하지만
난잡하지 않고,
변화무쌍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경주
예나 지금이나 경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불국사. 불국사에서도 가장 눈길을 잡는 곳이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두 탑만으로도 책 한 권을 거뜬히 만들 정도로 이야기가 많다. 다보탑은 우리나라 탑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아름답다. 돌을 마치 나무처럼 깎아 만들었다. 사각형의 받침돌 옆으로 계단이 놓여 있고 다시 5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그 위에 팔각형, 다시 꼭대기는 원으로 돼 있다. 사각형에서 팔각형, 다시 원으로 변하는 것은 성불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불교에서 원은 완성을 나타낸다. 반대편의 석가탑은 완벽한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4:2:2의 비율이다. 2층과 3층은 크기가 같지만 탑 중간의 돌판을 처마처럼 깎아 3층이 더 작아 보이도록 했다. 이런 기법은 비록 돌탑이지만 아름다운 처마의 곡선미를 느끼게 한다.
그 시절 수학여행 때는 불국사든 석가탑이이든, 다보탑이든 별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벗어나 어디론가 여행을 왔다는 게 마냥 좋기만 했다. 하지만 다시 와 보니 알 것 같다. 경주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지.
불국사를 봤다면 첨성대와 대릉원 주변으로 갈 차례다. 이곳을 찾을 때는 저물 무렵이면 좋겠다. 경주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첨성대를 비롯해 대릉원, 노동·노서동 고분군, 계림 등이 모여 있다. 오후 6시 무렵이면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이때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첨성대로 향한다. 조명을 받은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화려하다. 첨성대에서 계림방면으로 길을 걷다 서쪽으로 바라보면 둥그스름한 곡선의 능이 몇 기가 있다. 노동·노서동 일대의 고분이다. 해질 무렵, 여인의 가슴선을 닮은 봉긋한 고분의 곡선이 뒤편 산의 능선과 어울려 빚어내는 절묘한 풍경은 한 편의 퍼포먼스다. 그 퍼포먼스는 화려하지만 난잡하지 않고, 변화무쌍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한걸음을 가면 두 개의 능이 겹치고 두 걸음을 가면 세 개의 능이 포개진다. 가까운 능은 진한 곡선을 만들어내고 먼 산은 옅은 곡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곡선 위로, 신라의 땅 위로 장엄하게 번지는 노을. 옛 신라는 아마도 이보다 더 황홀한 왕국이었을 것이다.
신라의 문화유산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시간과 공간, 자연과
한데 어우러진
그것들은 두고두고
우리가 반드시 지켜
내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석탑에게서 듣는 신라 천 년의 이야기
사실 경주를 하루 이틀에 여행하기에는 불가능하다. 남산만 제대로 보려고 해도 족히 일주일은 걸린다. 보문단지에서 기림사를 지나 문무대왕릉과 감포항을 잇는 코스는 경주 답사 여행코스로도 손색이 없고, 문무대왕릉에서 감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어 가족여행 코스로도 괜찮다. 게다가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은사지를 지나 문무대왕릉에 이르는 길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와 소설가 김훈이 그 아름다움을 극찬했던 길이기도 하다. 호수와 들판을 지나 바다에 닿은 이 길을 따르다 보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처음 만나는 곳은 기림사다. 원효대사의 손길이 묻어 있는 절이다. 기림사는 부처님 당시의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기림사에서 유염(柔艶)한 것은 ‘5종수’로 불리는 샘물이다. 물을 마시면 눈이 밝아진다는 명안수, 마실수록 마음이 편해진다는 화정수, 이 물로 차를 끓이면 최고의 차가 된다는 감로수, 물맛이 하도 좋아 까마귀가 쪼아먹었다는 오탁수, 마시면 천하무적의 장군이 된다는 장군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감로수와 화정수만이 남아 있다.
기림사를 나와서 감은사지로 향한다. 완벽한 조형미로 인해 신라탑의 전형으로 불렸던 감은사탑이 있는 곳이다. 감은사탑은 웅장하다. 높이는 13.4m.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탑 뿐 아니라 삼층석탑 중에서도 가장 크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감은사탑의 완벽한 조형미는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든다. 높이 3.9m의 쇠찰주(탑 꼭대기에 세운 장식의 중심을 뚫고 세운 쇠기둥)에는 왜구를 향한 시퍼렇고 날카로운 전의가 서려 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언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세우기 시작했는데 완성은 아들 신문왕이 이룩했다. 문무왕의 위업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신문왕이 감은사라 이름 붙였다. 감은사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문무대왕수중릉은 죽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납골이 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감포항을 지나 구룡포에 닿는 31번 국도는 바다의 낭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이 길은 바다를 따라 포항 구룡포까지 이어진다.
경주에 가면 황룡사지에 꼭 들러보라고 권한다. 황룡사 9층 목탑이 있던 그 황룡사지다. 황룡사지는 동서 288m, 남북 281m로 무려 3만여 평의 규모다. 지금은 그 장엄한 자리가 오로지 폐허다. 그것들이 있었던 자리만이 공허하다. 황룡사지 서쪽 끝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 절을 짓는데 사용됐던 돌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수학여행 때도 황룡사지엘 왔었다. 그냥 한 바퀴 휘휘 돌아보고 갔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델 뭐가 볼 게 있다고 왔지?’하는 생각만 했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돌들을 가만히 만져보니 신라 천 년의 이야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것만 같다.
대릉원 바로 옆
사정동이라는
경주의 옛 정취를
간직한 오래된
마을이 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옛날 익숙했던
풍경을 만나고는
한다.
그때는 몰랐던 옛마을, 사정동을 걷다
대릉원 바로 옆 사정동이라는 경주의 옛 정취를 간직한 오래된 마을이 있다. 차선 길 양옆으로 인쇄사(천문 인쇄사), 양화점(본 양화점), 전파사(승우전자), 세탁소(으뜸 크리닝) 점집(민정할매), 목욕탕(삼보목욕탕) 등이 늘어서 있다. 변두리의 한가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그 옛날 익숙했던 풍경을 만나고는 한다. 골목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타며 노는 아이들을 두 할머니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집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 두 분이 재잘거리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대문 밖으로 걸음을 하셨나 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오직 사랑과 선의로만 가득 찬 곳에 들어서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말로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이른 봄, 보일러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창 밖에 고여 있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느낌이랄까? 평화로운 풍경을 그렇게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곧 경주 곳곳에 벚꽃이 피겠다. 보문호 주변에도, 추령재 너머 감은사지 가는 길가에도, 황룡사지 주차장에도, 대릉원 돌담길에도, 사정동 담 너머에도 벚꽃이 피어 환하겠다. 올봄에는 경주엘 한번 가보시길. 까까머리 친구들과 함께 그 시절 풋풋한 마음으로 돌아가 불국사에도 가보고 황룡사지도 가보고, 보문호에서 자전거도 타 보시길. 꼭 그래 보시길. 우리가 잊고 있었던 풍경이며 추억이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그것들을 잊고 살아왔는지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경주 시티투어 관광
신라 천 년의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좀 더 편리하고 손쉽게 여행하고 싶다면 경주시티투어관광버스를 이용해볼 것을 권한다. 시티투어는 4개 코스로 운행하는데 1일 관광, 2일 관광, 3일 관광 등 직접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화재해설사가 코스별로 동행하여 신라 천 년의 숨결이 스며있는 유적지를 설명해 주어 온 가족이 함께 하기에 더욱 좋다.
신라역사권 1코스 / 이용요금 : 성인 15,000 청소년 13,000 어린이 11,000 (입장료 별도)
1코스 전체 입장료 : 성인 11,800 청소년 7,800 어린이 6,200
신경주역(8:50분) 출발 - 터미널 - 보문단지 - 불국사 - 신라역사과학관 - 분황사 - 김유신묘 - 천마총 - 국립경주박물관 - 안압지 - 첨성대 - 반월성, 계림내물왕릉(경유) - 터미널 - 신경주역(17:30) 도착
동해안권 2코스 / 이용요금 : 성인 15,000 청소년 13,000 어린이 11,000 (입장료 별도)
2코스 전체 입장료 : 성인 4,000 청소년 3,000 어린이 2,000
신경주역(10:20) 출발 - 터미널 - 보문단지(경유) - 불국사안내소 - 괘릉(원성왕릉) - 석굴암 - 문무대왕릉 - 감은사지 - 경주시전통명주전시관 - 골굴사 -보문단지(경유) - 터미널 - 신경주역(18:00) 도착
세계문화유산권 3코스 / 이용요금 : 성인 15,000 청소년 13,000 어린이 11,000 (입장료 별도)
3코스 전체 입장료 : 성인 11,500 청소년 7,800원 어린이 5,400
불국사안내소 (10:00) 출발 - 보문단지 - 경주역 - 터미널 - 신경주역 - 포석정 - 천마총 - 첨성대 - 반월성, 계림내물왕릉(경유) - 안압지 - 석굴암- 불국사- 보문단지(경유) - 터미널 - 신경주역(18:30) 도착
양동마을권 4코스 / 이용요금 : 20,000 청소년 18,000 어린이 16,000(전통민속놀이 체험비, 입장료, 투어비가 포함된 요금)불국사안내소(10:30) 출발 - 보문단지(경유) - 터미널(천마관광) - 신경주역 - 무열왕릉 - 양동마을 - 독락당 - 세심마을체험(제기차기, 활쏘기) - 옥산서원 - 터미널 - 신경주역(17:20)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