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이가 엄마 빨래하는 데 따라와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태성아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태성아 그러지 마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그래도 태성이는 징검다리를폴짝폴짝 뛰어 건너다닙니다.
그때 비행기가 큰 소리를 내며지나갑니다.
태성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징검돌을 뛰어 건너다가 풍덩 물로 빠집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어릴 적 추억 한켠에는 징검다리가 자리하고 있다. 개울 위에 드문드문 놓인 돌덩이. 건널까 말까, 징검다리 위를 개구리마냥 폴짝폴짝 뛰어가며 건너던 기억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반대편에서 어른이 건너오기라도 하면 힘들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고 무섭다고 칭얼대던 누이동생을 업고 신발과 바지를 다 적시며 겨우겨우 건너가곤 했다. 문득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어릴 적 건너던
징검다리와 꼭 닮았네
중부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들은 한번쯤 봤을 것이다. 상행선 진천을 지나다 보면 고속도로 아래로 커다란 징검다리가 있는 게 보인다. 도로를 오갈 때마다 ‘저게 도대체 뭘까’하고 궁금해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농다리(농교, 籠橋)’라고 부르는 다리다. 다리는 진천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금천에 놓여 있다. 진천군의 역사를 적은 ‘상산지’(常山誌)에 따르면 다리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졌다. 농다리가 놓인 자리엔 원래 작은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권신이자 진천의 호족장이던 임연 장군이 지금의 모습으로 창축했다고 한다.
가까이 가보니 다리는 생각보다 크다. 왕복 2차선 도로 정도 넓이는 되어 보인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어서 건너가 보자고 조르며 소매를 잡아끈다. 최근 며칠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다리 아래를 흐르는 물살이 빠르다. 멀리서도 콰르르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다리 앞에는 널찍한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 앞에서 다리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참 신기하게 생겼다. 어떻게 보면 어릴 적 건너다니던 징검다리와 꼭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니 전혀 다르게 생긴 것도 같다. 사람 키 높이만한 돌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넙적한 돌을 올려놓았다. 허술한 것 같기도 하고 단단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리로 간다. 다리 위에 서니 살짝 긴장된다. 바닥에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 있고 아래로 물살이 흘러가는 것이 고스란히 보인다.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달리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놓인 판석은 어른 두명이 몸을 돌려세워야 겨우 비켜갈 수 있는 넓이다.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것도 있다. 아이와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심스레 발을 내디뎌 본다. 한발 두발 걸어보니 별걱정 없겠다 싶다. 콘크리트 다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하기야 천년 세월 동안 비바람과 홍수를 거뜬히 이겨내 온 다리다. 아이도 이내 잡은 손을 놓아버리고 저 혼자 뛰어간다.
이름이 왜 농다리일까. 여기에 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 )’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는데, 여기에서 ‘용’자가 와전되어 ‘농’ 이 됐다는 설도 있다. 다리를 건너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리 전체 모습을 굽어볼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또 다른 모습이다.
“아빠 다리가 뱀처럼 생겼어.” 아이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다리 모습이 꼭 구불거리며 나아가는 뱀을 닮은 것 같기도 한다. 하늘에서 농다리를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지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충북편>을 뒤져보니 농다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다리는 얼핏 보아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건너는 듯한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으므로,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지네가 세금천을 거슬러 오르는 상서러운 뜻을 담은 것이기도 하고 물줄기를 따라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선 모양이 물의 저항을 덜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다리의 길이는 무려 93.6m에 달한다. 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길다고 한다. 교각을 쌓는데 사용된 돌은 진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력암질(砂礫岩質)의 자석(紫石)이다. 크고 작은 돌들을 물고기 비늘처럼 촘촘히 쌓아 올렸는데, 반대편 안쪽에서 돌의 뿌리가 서로 엇물리게 하여 쌓은 까닭에 수많았던 장마와 범람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교각은 모두 28개로 이는 28수(宿) 별자리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농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어 그 명성에 걸맞은 인정을 받기도 했다. 다리 건너 전망대를 지나면 나무 산책로가 이어진다. 이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이 호수가 바로 초평저수지다. 충북에서는 가장 큰 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호수를 바라보기 좋게 나무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어떻게 개울 위에 저수지가 자리하게 됐을까. 저수지에서 만난 한 촌로의 설명이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농다리 길이 증평으로 이어지는 큰길이었지. 마을 입구가 제법 북적였어. 주막도 있고 대장간도 있었지. 첨엔 다리 근처에 저수지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러면 농지가 많이 잠겨 실속이 없었던 거여. 그래서 여기, 산너머에다 저수지를 만들었던 게지.”
초평저수지 주변으로 수변데크(Deck)가 놓여 있다. 수변데크를 따라 이십 여분 정도 걷다 보면 출렁다리에 닿는다. 한가로운 호수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여간 운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3층 목탑.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민족통일을
이뤄냈듯 남북통일이
되기를 기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상서로운 기운과
화랑의 고장으로
유명한 진천.
그곳에는 아직
동심이 남아있었다.
막걸리 심부름
다니던 그 시절
진천은 화랑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595~673)이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읽던 위인전 목록에도 김유신 장군은 꼭 들어가 있었다. 읍사무소 뒤의 도당산 아래엔 김유신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길상사가 있는데, 이곳은 봄날 벚꽃이 만개할 때 특히 아름답다. 상계리에는 김유신 장군 탄생지도 있다. 이곳에는 장군이 잉태된 지 20개월 만에 태어날 때 태를 묻은 태실(胎室)도 있다. 김유신 장군 태실이 있는 만뢰산은 부드러운 능선에 이정표가 곳곳에 잘 만들어져 있는데다 산길이 낮아 그리 힘들지 않은 산행에 안성맞춤이다. 김유신 탄생지를 지나 계속 길을 따르면 보탑사에 닿는다. 거대한 삼층목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 때 김유신 장군이 민족통일을 이뤄냈듯 남북이 통일되기를 기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대목수 신영훈 선생의 역작으로 목탑 가운데 세계 최대(42.7m)를 자랑한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내부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지어졌다.
아이와 함께라면 종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좋다. 고대 종 가운데 최대 걸작인 성덕대왕 신종을 비롯해 150여 개의 범종을 전시해 놓고 있어 한국 범종의 역사와 특징, 범종 제작과정 등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진천 석장리는 한국 최초로 4세기경대로 추정되는 고대 제철로가 발견되었는데, 진천에 종박물관이 들어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박물관에 들어서면 마음속에 종소리의 여운이 전해진다. 특히 제1전시실은 에밀레종 설화로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이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공양자상 등 종의 세부장식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제2전시실은 거대한 종을 만드는 밀랍주조법을 실물크기로 볼 수 있도록 했으며 한국, 일본, 중국 범종의 특징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야외에는 커다란 종 하나가 서 있다. 이 종은 누구나 울려볼 수 있다. 종박물관에 있다 보면 온종일 아이들이 울려대는 종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어릴 적 논에서 모심기할 때쯤이면 누구나 막걸리 심부름 한번쯤 해보았으리라. 양조장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받아오다가 맛이 궁금해 한 모금 맛보았는데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그 맛이 의외로 맛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모금 두모금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새 취해버려서 좁다란 논두렁길에 막걸리 주전자를 엎어버렸던 추억. 그 추억을 되살려주는 곳이 있으니 덕산면 용몽리에 자리한 세왕주조(덕산막걸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조장으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나무로 만든 검은색 건물은 3층 높이의 규모로 일본식과 서양식 트러스트 구조를 합쳐놓았다. 고색창연한 건물의 품새가 83년 3대의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누룩 냄새가 훅 끼쳐 온다. 그 향에 술을 마신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양조장 한쪽 벽에는 이백의 시와 그림이 걸려 있다. ‘三盃通大道(삼배통대도), 一斗合自然(일두합자연)’. ‘석 잔을 마시면 대도에 통하고, 말술을 마시면 자연의 도리에 합한다’는 뜻이다. 양조장 옆에는 저온저장고 겸 시음장이 서 있다. 술항아리와 오크통을 붙여 놓은 모양이 특이하다. 덕산막걸리는 지하 150m 암반수를 이용한다. 또한 진천햅쌀로만 빚어서 빛깔이 곱고 부드러워 목에 잘 넘어간다.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저온살균하기 때문에 생막걸리의 풍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막걸리 한잔을 시음해 본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이 입안을 적신다. 마치 어릴 적 추억처럼.
종박물관에 들어서면
마음속에 종소리의
여운이 전해진다.
진천 종박물관에는
에밀레종 설화로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이 위용을
보이고 있다.
어릴 적 막걸리
심부름하며
홀짝홀짝
맛을 보다 취해버린
적이 있다.
진천에는 여전히
그런 추억이
남아있는
양조장이 있다.
진천 여행팁
★ 드라이빙 팁 / 중부고속도로 진천IC에서 빠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해 조금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농다리 이정표가보인다. 농다리 입구에 농다리 전시관이 있다. 무료이며 농다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수 있다. 043-539-3862
읍내리에 대한성공회 진천성당이 있다. 초기 성당들이 고딕 양식인 것과 달리 한옥 모습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충북지역 최초의 성공회 건물로 1926년 영국인 이도암(앨버트 리) 신부가 건립했다. 당시만 해도 건축용 목재를 구하기가 힘들어 멀리 백두산에서 목재를 베어 서해를 통해 몇 달 동안 뗏목으로 날랐다고 한다. 2002년 근대문화재 제8호로 등록됐다.
★ 진천의 맛 / 충북은 바다가 없는 탓에 예로부터 민물생선 요리가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붕어찜이 유명한데, 각종 야채와 함께 조린 붕어찜은 매콤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초평면 화산리에 붕어요리 전문점이 많다.
‘진천생거 화랑밥상’이 유명하다. 생거진천쌀을 연계한 지역특성을 살린 요리다. 7첩, 9첩, 12첩 밥상이 있다. 군지정음식점으로 충청회관(043-532-9996), 예원한정식(043-534-6388), 한천마당(043-536-500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