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가지 아름다운 마을
화천읍내를 지나 ‘평화의 댐’으로 가는 평화로.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있다. 40여 분 쯤 달렸을까. ‘비수구미’라는 자그마한 표지판이 나온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하지만 곧 후회막급. 길에는 눈이 잔뜩 쌓여있고 앞서 지나간 자동차의 타이어가 닿은 바닥 부분은 단단하게 얼어있다.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차 오르기 시작한다. 기어를 1단으로 고정시키고 조심조심 언덕길을 내려간다. 10여 분을 그렇게 가자 평지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정은 더 어려워진다. 길옆은 깊은 호수다. 가드레일도 없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차가 그대로 물속으로 빠질 것 같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약 3km. 맘 편하게 차를 세워두고 걷기로 한다. 걷는 동안 낙석이 떨어지기도 한다. 오른쪽 절벽에서 손톱만 한 돌들이 굴러떨어진다. 간혹 큰 돌들이 떨어져 쌓인 곳도 있다. 하지만 호수는 잔잔하기만 하다. 바람이 불면 잠에서 깬 듯 잠시 수면이 일렁일 뿐이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갑자기 길이 뚝 끊긴다. 길 끝에는 보트 한 척이 물결에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대략난감’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 같다. 어쩌지? 허둥대며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쪽으로 나무계단이 나 있는 것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트레일이 이어진다. 일단 트레일을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다시 이십 여분을 걸어가자 붉은색 출렁다리가 나온다. 이런 곳에 이렇게 잘 만들어진 다리가 있다니. 다소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다리 너머에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이 두세 채 들어앉아 있다. 비수구미다. 비수구미 마을은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 마을이다. 일제 강점기에 화천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고립돼 생겼다. 예전엔 22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다 떠나고 3가구가 살아간다. 비수구미는 ‘신비한 물이 만들어 내는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고 ‘비수구미(秘水九美)’라고 부른다.
비수구미 주민들은 모두 민박을 치고 식당을 운영한다. 봄에서 가을까지,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알음알음 찾아든다. 여름 휴가철에는 가족 여행객으로 잠시 붐비기도 한다. 김영순 할머니 역시 ‘비수구미 민박’을 운영한다. 현수교 건너 산기슭 아래 파란 지붕을 얹은 집이다. 김 할머니가 차려주는 산채백반이 별미다.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집에 들어서면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마중을 나온다. 마침 비수구미를 찾아든 때가 점심 무렵. 점심상을 차리고 있던 할머니는 한겨울 오지를 찾은 낯선 여행객을 안방으로 불러들인다.
“추운데 여기까지 뭣 하러 오셨대. 얼른 들어와요. 밥 안 먹었으면 와서 같이 먹어요.” 방에는 장윤일 할아버지가 앉아 팥을 골라내고 계신다. “원래 이곳이 동촌리가 아니라 ‘수동’이었지.” 할아버지는 이방인에게 아랫목을 내어주신다. “물 동쪽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지. 저 밑에 마을이 있었는데 수하리였어. 옛날엔 여기에 ‘수동분교’라고 초등학교도 있었지. 지금은 없어지고 터만 남았지만.”
지금도 오지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더 오지였다. 평화의 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22km 떨어진 구만리 선착장에서 노를 저어 들어왔다. 4시간 정도 걸렸다. 전기도 88올림픽 이후인 1989년에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그 전까진 방은 호롱불로 밝히고 전기가 급하면 자동차 배터리를 썼다.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려면 1박2일 산길을 걸어 읍내로 나가든지, 배를 얻어 타고 몇 시간을 노를 저어 나가야 했어. 배 삯이야 콩이나 팥으로 냈지. 예전부터 여기 사람들은 콩 농사를 많이 지었어. 땅이 척박하니 논은 없고 전부 밭이었지.”
마을이 있을까 싶은 곳에
마을이 있다. 몇 명 안 되는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한 곳에서
삶을 일구며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할머니의 밥상, 어머니의 밥상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는
그 밥은 지난 시절 추억으로 우리를
다시 끌고 들어가는 듯하다.
우윳빛 물안개가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
위로를 해주는 듯 그렇게
잔잔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파로호는 그대로 수채화다.
무성한 소나무숲 향기가
이곳이 오지마을임을,
자연 그대로 모든 것이
숨 쉬고 있음을 알려준다.
향기로웠던 옛 시절이
내게로 다시 온듯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마을
지금 동촌리로 오는 뱃길은 두 개다. 비수구미 쪽과 화천읍 구만리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젊은 사람들은 보통 비수구미 쪽에 차를 대고 이동한다. 노인들은 차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구만리 선착장에 배를 대고 거기서 버스로 들어온다. 그나마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 때문에 접근할 수 있어졌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이 뚫리면서 마을에 조금 더 가까운 곳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게 된 셈이다.
비수구미가 알려지게 된 건 1998년.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해서 매스컴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부터다. 결국 고양이과의 큰 동물로 결론이 났지만 이후 비수구미는 우리나라 최고 오지마을로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지여행을 위해 여행객들이 한 두명 찾아들었고 등산객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김 할머니도 그때부터 등산객들에게 밥을 지어주었다. 반찬이라야 봄에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이 전부였다.
“그냥 우리 먹는 대로 차려주었는데 도시 사람들은 그게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더만.” 한번 다녀간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지금이야 여름 휴가철과 단풍철이면 주말과 휴일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400여 명에 이른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보통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할머니가 내주신 밥상에는 밥그릇 가득 고봉으로 담긴 밥과 나물 열한 가지 그리고 도루묵찌개가 올랐다. 고들빼기김치며 참나물 무침 등 하나같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알이 꽉 찬 도루묵찌개도 매콤하니 맛있다.
“나물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더 갖다먹어요. 밥 더 먹고.” 할머니는 반찬을 자꾸만 이방인 앞으로 밀어주신다. 밥을 먹고 나와 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마을 가운데로 깨끗한 계곡물이 흐른다. 꺽지며 버들치, 열목어가 산다. 장 할아버지 설명에 따르면 “오며 가며 입대고 마시고, 손으로 떠 마셔온 깨끗한 물”이다. 해산에서 발원해 파로호로 흘러든다. 이 물길 옆으로 임도가 이어지는데 임도를 따라가면 해산터널에 닿는다. 길이 약 6.2km, 왕복 3시간 30분이 걸린다. 등산객들은 해산터널에 차를 대놓고 마을까지 트레킹을 하곤 한다. 숲에는 단풍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박달나무가 빽빽하다. 귀 기울이면 바람소리 안의 풀벌레 소리, 물소리 곁의 새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비수구미 마을 앞 바위에 볼거리가 있다. 이 주변이 조선시대 나라에서 관리하던 소나무숲이었음을 드러내는 옛 글씨다. ‘비소고미금산 동표(非所古未禁山 東標·비소고미는 벌목을 금하는 산이다. 동쪽에 표한다)’라고 씌어 있다. 마을을 돌아본 후 길을 되짚어 나온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 돌아보니 민박집 강아지가 졸졸 뒤를 따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외지인이 오히려 반가웠나 보다. 앞서며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뒤를 따르며 발꿈치를 치기도 한다.
물안개 가득한 파로호의 서정
자연이 주는 위로는
언제나 따뜻하다.
도시의 지친 삶
이 겨울,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싶다.
산소길 꺼먹다리
1945년 세워져
긴 시간동안 세상을,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화천 여행의 백미는 파로호(破虜湖)다. 겨울이면 파로호는 동화 같은 겨울풍경을 만들어낸다. 해 뜰 무렵이면 호수는 우윳빛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새벽의 어부는 조각배를 타고 짙은 물안개 속을 천천히 헤쳐간다. 강가의 나목은 물안개를 붙여 하얀 얼음꽃을 피운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전력 생산을 위해 댐을 세우면서 만들어진 호수다. 면적이 과천시(35.86㎢)보다 더 큰(38.9㎢) ‘내륙의 바다’다. 10억 톤의 담수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보통의 인공호처럼 넓지 않고 강처럼 길쭉하다. 잉어며 붕어, 메기, 쏘가리 등 손맛 좋은 물고기가 많아 조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는 격전지이기도 했는데 수만 명의 중공군과 한국군이 수장됐다고 한다. 파로호라는 이름도 전쟁이 끝난 뒤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찔렀다’는 뜻에서 직접 붙였다. 지난해 4월 물빛누리호가 파로호를 운항하기 시작했다. 구만리 선착장에서 출발해 방천리와 동촌리 지둔지, 법성치, 비수구미를 차례로 지나 ‘세계평화의 종 공원’까지 24km를 1시간 30분 동안 달린다.
종착점인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의 금강산댐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몇 번의 수공(水攻)을 막아냈다고 전해진다. 댐 아래에 자리한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은 지구상의 모든 분쟁국가에서 보낸 탄피와 철모를 녹여 만든 종이 전시되어 있다. 무게가 37.5톤에 달한다.
요즘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화천을 많이 찾는다. 파로호 100리 산소(O₂)길이라는, 북한강을 따라 조붓①이 이어지는 42km에 이르는 자전거길이 있기 때문이다. 화천 시내에 바로 붙어 있는 붕어섬을 기점으로 화천교-대이리-딴산-화천수력발전소-살랑골-위라리-생활체육공원-거례리-원천리 통통다리-아쿠아스틱리조트-서오지리연꽃단지-화천읍으로 이어진다. 전국 유일의 수상길(1.2km)과 숲속길(1km) 등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자전거는 붕어섬 입구에서 신분증과 5000원을 내면 빌려주는데 타고 다니다 다시 자전거를 반납하면 5000원짜리 화천사랑상품권을 지급해준다. 읍내에서 주유소건 마트건 어디서나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자전거 타는 자체가 공짜나 다름없는 셈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꺼먹다리는, 말 그대로 시커먼 다리를 만난다. 산소길이 나면서 통행금지가 풀린 곳이다.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 만들어진 꺼먹다리는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이름이 붙여졌다. 길이 4.92m, 폭 4.8m다. 영화 ‘전우’와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의 배경이 된 근대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십이월이면 파로호에 물안개가 가득 핀다. 몽환처럼 아름답다. 꼭 비수구미가 아니더라도 파로호 부근의 어느 민박집에 차를 대고 하루쯤 머물러 보시길. 이 세상이 아닌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① 조붓하다(조금 좁은 듯하다)의 어근.
화천여행 팁
★ 가는 길 / 경춘고속도로를 이용해 춘천 IC를 나와 시내를 통과해 5번 국도와 407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화천이다. 비수구미 가기 전 비수구미 민박(033-442-0145)으로 미리 전화를 해 길 상태, 날씨 등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 먹을 곳 / 파로호 가는 길목인 간동면에 있는 화천어죽탕(033-442-5544)은 잡고기를 갈아 야채와 끓여내는데 담백하고 깊은 맛을낸다. 화가인 주인장이 다양한 소품으로 꾸민 식당도 볼거리다. 대이리의 콩사랑(033-442-2114)은 콩요리 정식, 모둠보쌈 등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군청에서 운영하는 아쿠아틱리조트(033-441-3880)가 깔끔하다.
★ 둘러 볼 곳 / 해산터널 옆에 해산령쉼터가 있다. 이곳에 차를 대고 비수구미까지 왕복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민통선 내 안동포는 잘보전된 DMZ 특유의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화천군청 홈페이지나 자치행정과 민군협력계(033-440-2308)로 5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