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am
문현동
벽화마을
미로처럼 생긴 낡은 동네가 싫어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사를 나오고는 처음 찾는 동네다. 미로 같은 골목길은 그대로이고 낡은 집들도 그대로인데 어쩐 일인지 동네는 그 옛날보다 생기가 넘쳐 보인다. 함께한 딸이 이렇게 예쁜 동네가 왜 싫었느냐고 묻는다. 문현동 마을은 몇 해 전부터 벽화마을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낡은 동네 구석구석에 47개의 벽화가 그려지면서 동네는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다시 생기를 찾았다. 6·25전쟁 때 갈 곳 없는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만들어진 이 마을은 골목골목마다에 피난민들의 설움이, 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기도 하다. 하나하나 벽화를 찾으며 딸과 그림 속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해서 더 걷는 재미가 괜찮다. 울타리도 없이 대문이 난 집, 목을 길게 빼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백구가 정답다. 금방이라도 어머니가 뛰어나오시며 시린 손을 꼭 잡아주실 것만 같다. 그렇게 싫었던 동네인데 오늘은 참 따뜻하게 와 닿는다.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동 산23-1
11:40 am
부전
마켓
오랜만에 재래시장을 찾았다. 대형마트에 익숙한 아이는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다고 재잘재잘 수다를 늘어놓는다. 부산에는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깡통시장 등 크고 오래된 시장이 여럿 있다. 부전마켓도 부산시내는 물론 인근 도시 사람들,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꾀나 유명한 시장이다. 하루 평균 방문객만 3만 명. 부전역 지하상가부터 시작해 부전마켓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쇼핑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마트처럼 카트를 이용해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는 특화된 재래시장으로 생선, 채소, 과일, 잡화, 의류, 전기제품 등 웬만한 물건은 한번에 구매 가능하다. 흥정만 잘하면 판매가보다도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니 물건값 흥정하는 재미도, 또 조금이라도 깎는 맛에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에 시장 골목 천정에 각기 컨셉을 달리한 독특한 조형물을 설치해놓아 부전시장을 조금 더 특별하게 하고 있다. 딸 아이 새학기를 맞아 실내화를 한 켤레 샀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부산광역시 진구 부전동 573번지 / ☎ 051-818-9454
1:30 pm
지라시즈시
우연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일본 가정식 요릿집을 발견했다. 요릿집이라고 하지만 좌석은 10개 남짓이다. 좁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본래 지라시즈시는 일본에서 딸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하나마쯔리’ 축제 때 가정집에서 만들어 먹는 초밥을 말한다. 그런 음식을 우리 입맛에 맞게 퓨전식 차슈(구운 삼겹살)와 도리오야꼬(구운 닭고기) 등을 올려 메뉴를 구성했다. 일본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먼저 알려졌다고. 골목 안쪽에 있어 우연히 찾아오는 손님은 드물고 대부분은 여행책자나 블로그 등을 보고 찾아온다. 하루 80개의 한정 수량을 판매하는데 그만큼 재료가 신선하고 맛이 좋다. 24시간 숙성시킨 특제소스에 삼겹살과 닭다리살, 소갈비살을 재운 후 구워내 고기 특유의 냄새 없이 깊은 맛이 난다. 차슈벤또, 도리오야꼬벤또가 인기메뉴다. 딸과 인기메뉴를 하나씩 주문해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부산광역시 진구 부전동 149-18 / ☎ 051-819-6020
3:30 pm
카페 에누
et nous
중앙중학교 뒤쪽 골목에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이른바 카페골목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친구에게 들었다. 점심 후 차도 한잔할 겸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를 갈까 하다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바로 et nous, 민트색 외관이 눈에 쏙 들어왔고 무엇보다 커피와 초콜릿의 만남이라는 카페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카페는 엔티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상당히 오래되었을 법한 고가구가 민트색의 실내와 잘 어우러져 있다. 다른 카페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쇼콜라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깊고 부드러운 초콜릿과 진한 커피향이 무척이나도 잘 어울렸다. 다만 공간이 좁고 테이블이 3개밖에 없어 되돌아가는 손님이 많다고. 해서 그런 손님들에게는 1,500원의 할인을 해준다고. 생초콜릿, 신선한 강배전(프렌치로스팅. 원두표면에 오일이 보이는 단계로 에스프레소용으로 자주 사용) 커피를 사용해 무엇을 주문해도 신선하고 맛이 깊어 좋다.
부산광역시 진구 전포동 680-8 / ☎ 051-818-9853
4:30 pm
범일동
산복도로
꼬불꼬불 버스를 타고 범일동 산복도로를 지날 때면 멀미가 나곤 했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거리가 요즘 새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는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산동네 중앙에 도로가 있어 ‘산복도로’라 하는데, 부산의 산복도로가 특별한 것은 그 도로 끝에 바다가 펼쳐진다는 것. 범일동 옛 범곡사거리에서 출발, 수정동과 초량, 영주를 지나 가톨릭센터로 내려오는 길이 산복도로의 원조. 망양로라고 한다. 이 길의 일부인 범일동 산복도로에는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이 구간 범일초등학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오르면 산복도로 끝에 안창마을이라는 벽화가 예쁜 동네가 나온다. 벽화와 동네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어느덧 마을 걷다 보니 때 이른 봄비가 내린다.
부산광역시 진구 범천동~동구 초량동
6:00 pm
범전동
오뎅집
부산하면 뭐니뭐니해도 부산 오뎅이다. 아이도 나도 어려서부터 오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루에 몇 꼬지를 먹었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결혼 전 친구들과 자주 찾던 오뎅집이 있었다. 하야리아 미군 부대 근처에 있던 오뎅집이었는데 부대가 사라지면서 이 오뎅집이 범전동으로 이사를 했다. 다시 찾은 오뎅집의 스지(소의 사태설에 붙어 있는 힘줄)꼬지는 고급 도가니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쫄깃하다. 국산 스지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데 수입산은 어떤 이유인지 꼬지에 꽂으면 흘러내려 스지가 빠진다고. 특유의 누린내 없이 맛이 최고다. 나는 스지를 딸은 치즈와 잡채오뎅을 먹었다. 기내식 생선을 공수해 쓰기 때문에 신선도부터 큰 차이가 난다. 국물을 한 모금 더 마신다. 비도 오고 추위에 얼었던 몸이 봄눈 녹듯 녹는다.
부산광역시 진구 부암동 63-3 / ☎ 051-803-5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