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라길을 걷다
서울하고도 종묘에 가면 ‘순라길’이라는 다소 생소한 길을 만날 수 있다. 순라(巡邏)는 살피며 순찰하고 경계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야간에 화재와 도적을 경계하기 위해 순찰을 하던 길을 말한다. 순라길이라 이름 붙여진 이 길은 조선시대 종묘에서 창덕궁, 창경궁 바깥 지금의 명륜동까지 이어졌다. 한쪽은 종묘를 경계로, 한쪽은 주거지를 경계로 생긴 선형(線形)의 길로 종묘를 가운데로 두고 원남동에서 인의동 방향의 동순라길과 권농동 방향에서 봉익동으로 이어지는 서순라길의 작은 길로 나뉜다. 그 옛날 순라길에는 순청(純靑)이 있었다. 좌순청은 종각에서 동쪽 광희문까지, 우순청은 서쪽에서 숙정문까지 순라를 돌았다. 순라군은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데 봄과 여름은 저녁 8시부터 가을과 겨울은 저녁 7시부터 도성 안의 통행과 화재, 도적을 경계하는 일을 보았으며, 1894년(고종 31년)에 폐지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순라길은 1995년 종로구에서 서순라길을 일방통행 1차로로 새롭게 정비해 ‘역사문화탐방로’로 지정했다. 종묘에서 창덕궁 후원까지 이어지는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가을의 정취를 호젓하게 느낄 수 있다. 순라군이 되어 길을 걷는다.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역사의 길을.
10:20 am
세계문화유산
종묘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종묘공원이라 불렀다. 그곳은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그런 종묘에 갔다. 그곳이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종묘는 조상의 혼을 모시고자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보다 앞서 1395년에 세웠다고. 처음 지은 것은 영녕전이지만 세종대왕이 정전을 새로 짓고 태조 이성계의 선조를 옮기면서 영녕전과 정전으로 구분된다. 영녕전 16칸에는 태조의 선조를 비롯한 15명의 왕과 17명의 왕후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내외가 모셔있다. 정전에는 19명의 왕과 30명의 왕후가 모셔있다. 유교의 나라 조선은 중요한 일이 있거나 우환 혹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종묘제례를 지냈다. 이 종묘제례도 우리나라 무형유산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왕실의 혼을 모시고 그 제례의식을 원형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장면과 마주하니 살아온 날과 앞으로의 날들이 그려진다. 자유관람은 토요일에 가능하다. 평일은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의 설명이 있는 관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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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 02-765-0195
12:20 pm
갤러리소연
cafe
종묘 돌담길을 따라 호젓하게 걷는다. 그 옛날 순라군들이 이 길을 따라 돌며 궁궐 안팎의 안위를 지켰겠지라고 생각하니 역사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것 같다. 길을 따라 10여 분 남짓 창덕궁을 향해 걸으니 단정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갤러리소연카페다. 안으로 들어가니 금속공예품과 장신구가 공간마다 벽면마다 놓여있다. 금속공예가 김승희 교수가 우리나라의 금속공예와 한국의 장신구를 널리 알리고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자 2010년 문을 연 공간이라고 한다. 작은 자연(小然)이라는 뜻을 지녔다. 금속공방, 세미나실, 이달의 작가 공간, 장신구 전시장, 카페 등 알차게 꾸며진 공간이 순라길의 정취를 더해준다. 매주 수요일 ‘재미나는 우리나라 금속공예와 장신구 이야기’ 강좌도 열리니 역사의 길에서 또 하나의 우리문화를 만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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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순라길 149번지 ☏ 02-546-2497
2:00 pm
돈화문칼국수
찬바람이 불면 으레 뜨겁고 진한 국물이 당기기 마련이다. 무엇을 먹을까 하고 길을 걷는데 작고 아담한 칼국수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가 없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한자리에서 32년간 칼국수와 만두를 만들어 팔았다고. 해물칼국수와 사골칼국수 그리고 찐만두와 만둣국이 메뉴의 전부다. 칼국수 면발은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해물칼국수는 맛이 시원하고 사골은 깊은 맛이 일품이다. 손으로 빚은 김치만두는 속이 꽉 차서 한입 입에 넣으면 어머니 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순라길 걷기 여행을 그야말로 행복하게 해주는 맛이랄까. 기꺼이 기다리며 먹고 싶은 우리 손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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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 128-1 ☏ 02-743-7339
3:20 pm
떡카페
질시루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외국 브랜드의 커피전문점이 대다수다. 깨끗하고 넓은 공간에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으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순라길 바로 옆으로 눈에 띄는 전통 카페가 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운영하는 떡카페 질시루다. 이곳은 우리 전통떡과 전통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떡도시락, 떡샌드위치 등 떡을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익숙하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했다. 떡카페 2층에는 부엌살림을 전시하고 3층에는 떡의 역사를 각종 도구와 인형들로 재현해 놓았다. 매일 11시, 3시 떡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고 한다. 사과단자에 국화차 한잔을 놓고 가을을 마주했다. 계절의 깊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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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164-2 ☏ 02-741-0258
4:30 pm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종묘에서 시작된 순라길을 따라 창덕궁에 이르렀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5년)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 광해군 때 다시 지었고, 고종이 경복궁을 건조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했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해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쪽에는 사당인 종묘가 북쪽에는 왕실의 정원인 후원이 붙어 있어 조선왕조의 최대 공간을 이루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해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 가을 창덕궁 깊숙이 들어가 인정전을 걷기도 하고 후원을 걸어보기도 한다. 역사의 한 장면에서 바라보는 이 가을의 자연이 더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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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 02-762-8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