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우체국 김하수 집배원이 전하는삼척항의 새해
추워도 너무 추웠다. 동해안을 따라삼척에서 시작, 강릉 주문진과 고성으로 향하는 3일간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차에서 내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시군 구 경계에서 뿌리는 구제역 방역용 소독약은 차에 달라붙는 즉시 얼어버렸고, 바위를 때리는 바닷물도 겹겹이 얼어 붙었다. 수은주가 영하 20도 가까이를 가리킨, 수십 년 반에 가장 추웠다던 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마 음대로 움직여 줄 리도 만무했다. 그래도 삼척항은 활기찼다. 항구하면 어부와, 배와, 수산물과, 손님들이 북적이 는 장면을 으레 떠올리고야 마는 에디터의 단조로운 상상력을 위안이라도 하듯이. '그 풍경에 감동해 자연히 나도 추위를 잊었더라’는 식의 미사여구는 글로만 기능한느 것이라 치고, 진십으로 삼척항과 항구를 둘러싼 마을에 대해 전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삼척항의 사람들은 분주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는 것. 또 하나는 저기 어디쯤, 유명한 관광지에서 예외 없이 마주치게 되는 인위적인 냄새 기득호} 풍경은 눈 씻고 찾아봐도없었다는것.
항구의 종류는 많다. 큰 항구가 있는가 하면 작은 항구도 있고, 수출입 항구가 있는가 하면 어부들이 모여 사는 어 항도 있다. 오래 전, 정라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항은 두 가지 색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수산물을 잡아 삶을 이어가는 어부와 그들의 포획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항구이기도 하고, 인근 동해 항과 더불어 해외로 시멘트를 수출하는 주요 통로이기도 하다. 정라항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길이 91m의 방파제를 축조하면서 작은 어항이 만들어졌고, 이후 지속적인 축항 및 보수 사업을 거 치면서 현재의 대규모 항만 시설을 갖췄다. 항구를 따라 자연히 발달한 것은 갖가지 수산물을 파는 시장. 다른 항 구들과 마찬가지로 삼척항에도 꽤 큰 수산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특히 3~4년 전 생긴 항구 바로 앞 횟집 거리 에서는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별도의 식당을 운영하지 않고 수산물만 판매함으로 써 부가적으로 발생되는 비용을 줄인 횟집들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항구 주변의 방파제 등 어디에서나 바닷바람을 마시며 신선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다. 삼척항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도 다른 특산물은 대게다. 흔히 대게라고 하 면 영덕이나 울진을 떠올리지만, 그곳에서 거래되는 대게들이 모두 삼척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삼척시와 삼척우체국은 ‘삼척대게’를 브랜드화 하려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덕분에 지금은항구 주변의 큰도로를 따라 많은 대게 음식점이 자리를 잡았다. 저렴한가격에 신선한국내산 대게를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이곳을 소개해주기 위해 기자 일행을 만난 삼척우체국 김하수 집배원의 견해에 따르 면 대게는특히 겨울철에 먹어야 제맛을즐길 수 있다. '암컷 대게나 어린 대게를 잡지 않으려는 노력에 힘입어 요즘 은 1년 내내 대게가 많이 잡혀요. 사시사철 아무 때나 와도 맛있는 대게를 먹을 수 있죠. 하지만 진짜 대게 맛을 보 려면 겨울이 제격입니다. 특히 보름 즈음에 대게 살이 가장 맛있답니다.'
삼척항 곳곳에서는 동해에서 잡은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오징어들은 항구 주변에 즐비한 건어물 상점에서 완전 건조 오징어, 반 건조 오징어 등의 상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
삼척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 삼척항은 수출입 항구와 작은 어항, 두 가지 모습의 항구 색깔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삼척항의 또 다른 볼거리는 항구를 병풍처럼 감싸 안은 마을이다. 항구의 발전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은 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마을을 만들었다. 이 항구 마을은 행정구역상 정라동이라 불리는데, 원래는 두 개의 마을 로 나뉘어 있었다. 김하수 집배원은 ‘‘항구를 바라보며 오른쪽으로는 나루터 옆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나릿골’이, 왼쪽으로는 벽처럼 솟은 언덕이 나릿골과 경계를 만든 벽너머’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큰 도로가 생기고 벽 역할을 했던 언덕도 대부분 개발되어 정라동이라는 하나의 지명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릿 골과 벽너머 마을이라는 정감 넘치는 이름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둘이면서도 하나인 정라동 마을 은화려한색을 지닌곳도,이렇다고 자랑할만한큰특색을 가진 곳도아니다.하지만사람들이옹기종기모여살 아가는 시골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삶의 정취는 넘쳐난다. 작은 골목길을 통해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삐뚤빼뚤 쓰인 이름을 가진 낡은 우체통이 있고, 햇살 잘 드는 앞마당에는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흔들린다. 꼬불꼬불 좁고 높게 이어지는 언덕길을 걷다보면 어느순간에는파란하늘을 만나고, 어느곳에서는 대나무숲을 만난다. 마을높 은 곳 어디에서나 내려다보이는 삼척항의 탁 트인 모습은 마을길 순례의 하이라이트. 특히 서 있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풍경을 바꾸는 항구의 모습이 백미다. 겨울이면 언덕 듬성듬성 자리 잡은 집들이 약간은 황량한 풍경을 만 들기도하지만,봄·여름·가을이면마을 곳곳에자리잡은풀과나무들이산과집,바다와어우러져자아내는넉넉 한풍경이무척이나 아름답다.
삼척우체국 김하수 집배원
다른 시골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많은 노인들만이 마을에 남아 있다. 삼척우체 국의 집배원들은 우정사회봉사단이라는 봉사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1년에 10회 정도, 분기에 2회 정도 사회 봉 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벽너머 마을과 인연이 많다. 태풍 매미가 마을을 강타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 살던 집을 보수했던 것을 계기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봉사단과 담당 집배원이 마을 곳곳을 수시로 드나들며마을 어른들의 삶을 돕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개인 정보 유출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편지를 직접 읽어주 는 일처럼 정 흐르는 장면은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글을 모르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주소를 읽어주기도 하고 택배 를 대신 보내주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기다리는 소식을 전하는 것은, 물론 좋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시 전체 를 커버할 만큼 집배원의 수가 많지 않아 잠깐씩 앉아서 노인들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줄 여유가 없다. 그래도 우정 사회봉사단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하수 집배원은 시간을 쪼개고 사비를 모아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노인 회관에 냉장고와 TV를 새로 들여놓고 전기밥솥도 장만했다.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뿌듯했던 적도 없다. 고래서 새해 우체 국 식구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소망을 묻는 질문에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삼척의 특산물인 대 게의 브랜드화에 앞장서는 일도 삼척우체국 직원들이 세운 새해 계획 이다. 지난 해 삼척 대게 브랜드화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받아 시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는데, 올해는 이 사업을 좀 더 환성화시켜 보자는 목표를 세운 것이 다 ... 우체국 택배를 통해서 삼척의 대게를 사면, 하루 만에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러면 전국 어디에서든살아 있는 대게를 받을 수 있는 거죠”라는 김하수 집배원의 말이 홍보성 멘트가 아니라 새해 소망으로 전해진 이유 다. 마을 언덕길을 함께 걸어 내려오며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소망을 물었다 ... 한자 자격증을 따보고 싶어요.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을에 많이 사시다 보니, 한자로 된 편지들도 자주 오거든요. 그런데 모르는 한자들도 많아 주인을 찾아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 공부도 할겸 자격증에 도전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삼척대게는 영덕대게, 울진대게와 함께 한국의 대표 대게 브랜드로 자리 집았다.
장엄한 원경과 정감 넘치는 근경이 조화를 이룬 것도 삼척항의 매력 증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