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우체국 진호기 집배원이 말하는 ‘부연동’
촌에는 무조건 밥심이거든요, 드시고 또 드세요
와운산방이라는 명패를 단 집 앞에서 만난 아낙과 그녀의 남편에게 열무김치, 동치미, 절인 고추와 마늘종, 김과 간장, 그리고 촌에서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고봉밥을 얻어먹었다.
부연 휴양촌 민박의 전금순 씨가 김치에 라면을 내놓았다.
그녀는 “넉 달을 놀 수 있어 부연동이 겨울에는 살기 좋다”고 했다.
진부IC를 벗어나자 척척 늘어진 나뭇가지가 6번 국도변에서 주저앉을 듯이 서 있다. 눈 속에 묻힌 경운기는 마치 하얀 마스크에 하얀 모자를 쓴 개구쟁이를 닮았다. 눈만 보이는…. 진고개 이쪽과 저쪽도 달랐다. 고개 서쪽에서 ‘참, 눈 많다’고 탄성을 지르며 고개 동쪽으로 내려가는데, 고개 동쪽에는 눈이 더 많았다. 무릎까지였던 눈의 높이가 고개 동쪽에서는 마침내 허벅지를 다 잡아먹었다. 진고개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다 보면 우측으로 ‘산에 언덕에펜션’이 보인다. 이 펜션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59번 국도를 만나는데, 이런 길을 어떻게 ‘국도’라고 부르는지 모를 정도로 길이 좁다. 자가용 교행이 힘들 정도다. 게다가 길 양옆으로 눈이 쌓여 있으니 영락없는 1차선 길이다. 만약에 반대편에서 차가 온다면 이쪽 차나 저쪽 차나 두 차 모두 홀쭉하게 찌그러져야 제 갈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와운산방이라는 명패를 단 집 앞 눈을 치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밥 때가 훨씬 지나서 식사가 되느냐고 물으려는데, 창문이 열리며 아낙이 얼굴을 내민다. 밥 먹을 곳이 없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아낙은 남편에게 말했다. “이 분들 식사 안 하셨다네요.” 남편은 “우리 먹을 것 이분들에게 먼저 드리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예기치 않게 남의 집 안방까지 들이닥치고야 말았다. 잠시 후 밥상이 차려져 나왔다. “찬이 없어요, 밥집이 아니라서….” 아낙이 차려준 밥상은 소박했다. 김장김치, 먹기 좋게 잘라 놓은 열무김치, 동치미, 절인 고추와 마늘종, 김과 간장. 그리고 아낙은 고봉밥을 퍼주었다. 밥이 너무 많다고 하자 아낙이 말했다. “촌에는 무조건 밥심이거든요. 드시고 더 드세요.” 부연동에는 30여 세대가 살고 있다. 7 대 3 정도의 비율로 현재는 외지인이 더 많이 살고 있어서 예전 같은 풍치는 별로 없다고 한다. 이곳에는 성황당이 있는데, 전에는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 원주민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지금은 3월에만 제를 지내는데, 그나마 이처럼 성황당에 제를 지내는 모습도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일이 되었다. 밥을 차려준 부부도 13년 전 서울에서 온 외지인이다. 남편 김수원 씨는 무인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수이기도 하다. 곱게 밥상을 차려 준 그의 아내 윤지숙 씨가 밥상머리에서 들려주는 부연동 이야기가 재미있다. “눈 구경 실컷 했지요? 지난해에는 130cm가 내렸어요. 부연동에는 1월 말부터 5월까지 눈이 내려요. 응달에는 6월까지 잔설이 있지요. 지금 여기 부연동에 있는 신왕초등학교 부연분교장에 학생들이 다닐 때가 좋았어요. 눈이 오면 아이들이 눈을 한군데 높이 쌓아놓고는 다져서 구멍을 파 눈집을 만들어 놀았어요. 손등 발등 다 터지고 갈라지면서도, 이글루라면서 거기서 촛불도 켜고 초코파이도 먹었지요. 눈이 내리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만두나 전을 만들어 막걸리를 마셨어요. 저를 서울댁이라며 특별히 이뻐해 주셨어요. 겨울이면 참 좋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역시 부연동에도’ 아이들이 다 떠나고 없다. 최고 젊은 막내 청년(?)이 마흔 여덟 살 김수원 씨다. 6번 국도에서 갈라진 낭떠러지 절벽길 전우치 고개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단다. “전에는 고개를 걸어서 넘었어요. 주문진 장보러 가려면 1박 2일은 예사고, 2박 3일이 걸리기도 했어요. 소달구지 끌고 다니다가 소가 똥 싸면 사람 이마에 떨어진다고 할 정도였지요. 그만큼 가팔라요. 시멘트 포장은 4~5년 전에, 아스팔트 포장은 지난해에 했어요.”
신왕초등학교 부연분교장. 지금은 아이들이 다 떠나고 없다.
마을 주민이 보이면 두 마리의 개 홍실과 단감이 쪼르르 따라나선다. 겨울에는 부연동에 사람이 오지 않아 개 들도 사람이 더욱 그리운 듯하다.
수저를 또 들었다,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었다
전우치 고개가 교행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산중에서 차를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김수원 씨의 대답이 참 재미있다. “서로 버티죠. 그러다 기가 약한 사람이 후진을 하죠. 그래도 불편 없이 잘 다녀요.” “눈이 비처럼 내려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 부연동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서울에 가도 잠을 자지 않고 그날로 부연동으로 돌아온다. 맘이 편해서 부연동이 좋다고 한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울 강북에서 강남 가는 것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그건 불편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윤지숙 씨의 이야기이다. “없어도 맘 편히 살아야지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 만판 놀아야죠. 왜 모아두고 사는지 몰라요.”
부연동 앞 개울이 양양 남대천 최상류이니 옛 산경표의 기준대로 보자면 부연동은 양양과 연이 더 깊어야 마땅하지만 현재 이곳은 강릉시 연곡면의 마을이다. 강릉을 연결하는 고갯길 전우치가 이곳을 강릉이게 할 뿐이지만, 그래도 강릉은 부연동에서도 한참이다. 부연동은 춥다. 부연 휴양촌 민박은 조그마한 가게를 겸하고 있다. 오래된 다리미가 녹이 슨 채 선반 위에 올라 있다. 안주인 전금순 씨가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고철이 되고 말았다. 바깥주인 전명찬 씨가 5대째 토박이여서 외지에 있다가 남편 따라 이곳에서 살게 됐다는 전금순 씨는 올해 추워도 너무너무 춥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우리는 지하수 먹잖아요. 추워도 물(파이프)이 얼지가 않았는데 올해는 너무너무 추웠어요. 진짜 밖에 나오지도 못했어요. 요 너머(송천, 6번 국도에서 59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와 온도 차이가 많이 나요. 여기는 감나무가 안 되잖아요. 너머에는 감나무가 되는데. 여름에도 밤엔 추워요.” 강원도 사투리 억양으로 산골 생활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말맛이 마치 감자 같다. 동그라면서도 가끔 혹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유머가 그렇고, “이제는 할머니 됐다고 친구들이 놀린다”며 툭툭 던지는 세월의 지난함도 그렇다. 그래도 겨울 넉 달을 고스란히 놀 수 있어서 오히려 부연동이 겨울에는 살기 좋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보고 들으려고 안달이잖아요. 안 보고 안 듣고 산다고 생각하면 여기가 편해요. 겨울에는 속 편해요. 산골에 있으면 굶어죽진 않아요. 그만큼 부지런해야 하지만요.”
전금순 씨가 길을 나서면 두 마리의 개 ‘홍실’과 ‘단감’이 쪼르르 따라나선다. 겨울에는 부연동에 사람이 오지 않아서 개들도 사람이 더욱 그리운 듯하다. 고드름이 처마 밑으로 가득하다. 4월이나 돼야 부연동에 사람이 들어온다고 한다. “식사도 못하셨을 텐데, 라면이라도 드세요.” 전금순 씨가 김치에 라면을 내놓는다. 이런 일이 또 있나. 밥을 먹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수저를 들었다.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었다. 두 집에서 참 아름다운 밥을 먹었다. 와운산방 김수원 씨의 말대로 “운 되게 좋은 날”이다.
주문진우체국 진호기 집배원
눈이 비처럼 내려 탄성을 내게 하는 곳이 부연동이다.
주문진우체국 집배실 진호기 팀장
주문진우체국 집배실 진호기 팀장은 집배원 생활 초기인 2000년에 부연동을 담당한 바 있다. 그때는 전우치 고개 모두가 비포장이었다. 오토바이로 다니는데 눈이 내리면 아예 부연동에 들어가질 못했다. 그에게도 부연동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제설작업을 했다고 해도 전우치 정상에는 바람이 많아 다시 또 눈이 쌓였어요. 오토바이를 끌고 다녔지요. 내리막길에서는 얼었던 눈이 녹으면 빙판이에요. 그래서 산등성이 쪽으로 붙어 다녔죠. 다른 쪽은 절벽이잖아요. 떨어지면 안 되니까….” 이때 인연으로 그는 부연동에 1년이면 한두 번씩 꼭 간다. 그래서 부연동이 그동안 세상과 얼마나 많이 연결되었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진호기 씨는 풍각쟁이다. 아니, 밴드에서 보컬을 하고 있으니 소리꾼이라고 해야겠다. 풍각쟁이와 동패인 소리꾼. 그의 동패는 에버리치 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강릉시 입암동 복지센터에서 100여 분의 어르신을 모시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조그마한 간이해수욕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강릉 단오제 때도 역시 공연을 한다. “오빠부대요? 하하하…. 에이, 그런 거 없어요. 하하하….” 하지만 은근히 오빠부대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 웃음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