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트러스트 선정자연 문화 유산
태안우체국 김남호 집배원이 소개하는 ‘천리포수목원’
봄이 오는 소리를 우리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는 것은 제비가 아니다. 겨우내 우리 몸을 감쌌던 무거운 점퍼를 벗어놓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볼 수 있는 곳, 수목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봄내음 가득한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고,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져 가족이나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지만 충청남도 태안의 천리포해수욕장과 맞닿아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조금 다르다.
(좌)꽃보다 나무가 더 많은 천리포수목원. 관광객을 위한 곳이 아닌 나무를 위한 수목원이다.
(우)산책로를 걷다보면 천리포, 만리포, 낭새섬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닌 나무를 위한 수목원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닷가 옆에 위치한 곳이라는 것 외에도 꽃보다 나무가 훨씬 많다는 특징 때문이다. 이곳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나무다. 관람객들이 다니기 편하고 보기 좋게 수목을 배치해 놓은 관광객을 위한 수목원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철저히 나무를 위해 마련된 수목원인 것이다. 수목원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휴양림이나 식물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이곳에는 목련류 400여 종, 동백나무 380여 종, 호랑가시나무류 370여 종, 무궁화 250여 종, 단풍나무 200여 종을 비롯해 전 세계 1만 32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식물의 종 수로만 보면 동양 최대.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의 입장료를 내고 마음껏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일반적인 수목원이라면 천리포수목원은 그와 정반대다. 아니 반대였다. 과거 천리포수목원은 일반 수목원처럼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미리 허가를 받은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에게만 허락된 곳이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수목들이 건강하게 자란 것은 당연한 일. 2009년 3월 1일에 ‘밀러가든’을 일반인에 공개한 천리포수목원은 그야말로 다양한 ‘식물의 보고’다. 그래서 이곳의 별명 역시 ‘시크릿 가든’이다. 그리고 작년에는 밀러의 사색길과 목련원을 공개했다. 동절기(10월~3월)에는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하절기(4월~9월)에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언제나 수목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하루에 다섯 번, 가이드에게 수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민병갈 설립자와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을 지켜온 것은 생전에 “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나무”라고 얘기하던 설립자 민병갈의 나무 사랑 덕택이었다. 나무와 꽃에 거미줄이 쳐 있어도 그는 이것도 자연의 일부라며 멀리 돌아갈 정도로 자연을 사랑했다. 미국 해군 장교로 1945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24살의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후덕한 인심과 아름다운 풍광에 이끌려 천리포를 지인들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전역 후에도 한국을 사랑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은행에서 근무를 하던 그에게 1962년은 소중한 해로 기억된다. 지인들과 함께 천리포, 만리포의 풍광에 심취해 있던 어느 날, 그에게 농부 하나가 다가왔다. 딸의 결혼 자금이 필요한데 돈이 많아 보인다며 2천 평의 농지를 사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땅을 구입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너도나도 땅을 팔았다. 그렇게 구입한 땅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이 넓은 황무지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목원 조성에 나섰다. 서울에서 주식투자로 번 돈을 모두 수목원에 쏟아 부었다. 그렇게 초기에는 국내 자생종을 중심으로 식재하다가 해마다 한두 번씩 미국의 묘목 경매에 참여해 돈을 아끼지 않고 신품종을 사들였고 1973년 이후에는 외국에서 다양한 묘목과 종자를 수집했다. 그리고 1978년부터 다국간 종자교환 사업인 인덱스 세미넘(Index Seminum)에 참여하여 세계 각국의 저명한 식물원과 수목원, 자연사박물관, 식물재배농장, 식물애호가, 식물 관련 대학들과 잉여종자들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외국 수종을 확보하였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식물의 장점을 잡아냈고 그렇게 한국에 맞게 수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힐리어수목원을 자주 방문하고 그곳과 꾸준히 교류했다.
“민병갈 전 이사장님은 힐리어수목원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습니다. 식물을 모으고 기르는 것이 힐리어가든과 비슷했어요. 그곳에서 받은 식물도 많이 있고요.” 황세원 코디네이터의 말이다. 그의 이런 노력 덕분에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을 받았다. 2002년 운명을 다하는 날까지도 그는 수목을 걱정하며 눈을 감았다. 천리포수목원은 그렇게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태어났다.
(좌)천리포수목원에는 1973년부터 수집되기 시작해 430여 종의 목련이 자생하고 있다.
(우)태안우체국 김남호 집배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
3월의 이른 봄을 맞이하기 위해 2월 말에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하지만 유난히 추웠던 겨울과 해풍 탓에 봄을 만끽하는 것은 어려웠다. “조금 있으면 삼지닥나무와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펴고, 얼레지가 보랏빛을 물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네요.” 황세원 코디네이터는 “바다와 맞닿아 있어 봄이 조금 늦게 오기 때문에 진정한 봄을 느끼려면 3월에 다시 방문해 달라”고 했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수목원을 돌아보았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지만 나무와 꽃들이 여기저기서 속삭였다. 특히 목련들은 기지개를 켜며 그들만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1973년부터 수집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43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산책로를 걷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등나무가 해송을 휘휘 감으면서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 해송을 죽이는 등나무를 쳐내는 것이 다반사. 하지만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등나무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천리포수목원의 특징이다. 관람객들에게 보기 좋은 꽃과 나무만 키워내는 곳이 아닌, 식물의 연구와 보존을 위한 수목원인 것이다. 산책로 곳곳에는 수목과 꽃이 우거진 곳에 모두 8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특히 서울에서 옮겨온 한옥 해송집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만리포와 천리포, 그리고 낭새섬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가장 인기가 좋다. 낭새섬은 천리포수목원의 부지로 바닷길이 열리는 날이면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산책하듯 수목원을 돌아 나왔더니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태안우체국 김남호 집배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목원 직원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오전에 왔다가 재차 왔다는 그는 천리포수목원의 봄을 가장 먼저 느낀 외부인이다. “잘 오셨네요. 태안에서 봄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천리포수목원이에요. 오토바이가 수목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 정문에서 이곳까지 걸어들어 오는 것이 싫은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꽃향기, 나무향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제 곧 풍년화는 그 향을 윈터가든에 가득 채우고, 내리는 눈을 닮은 설강화는 꽃을 피울 것이다. 크로커스는 노란 꽃으로 벌을 유혹하고, 노루귀는 수줍게 고개를 들 천리포수목원의 봄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