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우체국 이헌재 집배원이 소개하는 추자도
같은 제주이지만 제주보다는 오히려 전라도에 가까운 추자도는 그래서 묘한 매력이 있다. 강태공들에게는 바다낚시의 천국, 올레객들에게는 가장 힘든 올레길로 소문이 자자한 추자도는 ‘아름답다’는 한 마디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서운할 정도다. 조기, 삼치, 멸치로 유명한 한적한 어촌 마을은 요즘 조기잡이에 한창이다. 그렇게 추자도의 봄은 흐르고 있었다.
올레길 중에서 가장 힘들다고 평가받는 추자도 올레길.
조용한 섬마을의 운치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구불구불 미로 같은 동네 골목길을 걷는 것이 좋다.
주민들은 그물 매는 법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준 최영 장군에게 일년에 세 번 제를 올린다.
전라도의 문화가 공존하는 추자도
국내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도는 예나 지금이나 해외에서도 볼 수 없는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대표적인 여행지로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곳이다. 게다가 몇 해 전부터 올레길이 조성되어 여행객들이 더욱 늘어나 주말에는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제주에서 배로 한 시간 거리인 추자도는 제주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행정구역상 제주에 속하지만 생활과 풍습은 전라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언조차도 제주보다는 전라도에 가깝다. 바다에 제를 올리는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 같은 토속신앙을 여전히 믿고 따르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추자도는 제주 안의 또 다른 제주로 불리기도 한다.
한반도와 제주 본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추자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황간도, 추포도의 4개 유인도와 38개 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되어 있다. 1271년(고려 원종 12년)까지 후풍도(候風島)라 불렸으며, 이후 전남 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조선 태조 5년 섬에 추자나무 숲이 무성한 탓에 추자도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북쪽으로는 윤선도가 머문 보길도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한라산 정상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섬 전체에서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데 감성돔, 참돔, 농어, 돌우럭 등 다양한 어종이 잡혀 강태공들에게는 낚시의 천국으로 불린다.
오전 9시 30분,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은 전날 풍랑주의보로 여객선이 출항하지 못한 탓인지 서해의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한 인파로 붐볐다. 다행히 파도는 잠잠했고, 쾌속선은 청명한 하늘과 코발트빛 바다를 한 시간 정도 내달려 추자도에 이르렀다. 추자도는 소박한 어촌마을의 풍경 그대로였다. 제주항에서 함께 출발한 할머니 한 분이 짐을 내려달라며 어깨를 툭툭쳤다. 할머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이따금씩 제주로 나가기는 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추자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좋아진 거지. 상추자도와 하추자도에 다리가 연결된 게 1971년이야. 면사무소, 학교, 우체국 등이 여기에 몰려 있는데 등본이라도 떼려면 배를 타고 와야 했어. 우리 같은 하추자도 사람들에게 상추자도는 서울보다 멀었지. 낚시하러 왔어? 등산하려고 왔어?” 추자도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원래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 말고는 외지인들도 거의 드나들지 않았지. 그러다가 작년에 올레길이 생긴 다음에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졌어.”
그랬다. 그동안 추자도는 바다낚시의 천국으로 알려져 사시사철 낚시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섬에 불과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올레 열풍이 불고, 추자도에도 작년부터 올레길이 조성되면서 등산복을 입은 타지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추자도의 명물인 조기와 굴비도 많이 팔렸다. 등산객들은 제주에서 오전에 배를 타고 들어와 6~7시간 걸리는 올레길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서둘러 오후 배를 타고 제주로 돌아가거나 하루를 더 머물면서 제주와는 또 다른 추자도의 풍광을 눈에 담아간다. 덕분에 주말이면 상추자도의 여관에는 묵을 방이 없을 정도. “추자도는 제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라도도 아니야. 면사무소 사람들은 제주 안의 또 다른 제주라고 얘기하던데, 제주보다는 오히려 전라도에 가깝지.” 1896년 완도군으로 편입된 추자도는 1910년에 제주도로 편입되었고, 1946년에는 북제주군으로,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실시되면서 다시 제주도 추자면에 소속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추자도가 오히려 전라도에 가까운 것은 오랫동안 전라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주민 대부분이 이곳에서 자란 토박이들이었지만 지금은 제주에서, 목포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한데 섞여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올레할 거지? 걸어서 다니는 게 좋긴 한데 만약에 다리가 아플 것 같으면 자동차 말고 오토바이 타고 다녀. 여기서는 오토바이가 편할 거야.”
추자도는 섬 전체에서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상추자도의 낙조
초등학교 두 개와 중학교 하나가 있는 추자도의 아이들은 인사성도 밝다.
추자초등학교 담벼락의 유채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추자도우체국 이헌재 집배원과 6학년 아이들이 특별한 졸업사진을 함께 찍었다.
올레 중에서 가장 힘든 추자도 올레
당일 여정으로 추자도를 둘러보려면 상추자도 항구에서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타는 게 좋다. 돈대산 산책로 입구 정거장에서 내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전체를 볼 수 있는 돈대산 정상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버스 시간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싶다면 하루 25,000원에 빌릴 수 있는 스쿠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추자도 올레길은 여느 제주의 올레길보다 힘들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올레길이라기보다는 등산코스라고 느낄 정도로 굴곡이 심하고 경사가 가파르다. 17.7km에 이르는 길을 모두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6~8시간.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그런 우려 때문이었을까? 추자도우체국 고영호 국장이 안내를 자처하겠다고 나섰다. “저도 아직 다 오르지는 못했지만, 산을 많이 다닌 사람들도 추자도 올레길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토바이로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부터 걷는 분들이 많아요.” 일행은 하추자항부터 상추자항으로 오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올레길의 끝 지점이 최영 장군 사당이고, 오늘은 최영 장군의 제를 올리는, 마을의 잔칫날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스쿠터로 돈대산 입구까지 달린 후에 10여 분을 오르는 동안 곳곳에 올레길을 알리는 노란 리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돈대산 정상에 오르면 추자도 10경 가운데 8경의 모든 섬들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옛날부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도 지냈고 해신제도 지냈다고 해요. 해마다 1월 1일 돈대산 정상 팔각정에서 일출제를 열죠. 맑은 날에는 보길도를 비롯한 전남 지역과 제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사방이 천혜의 경관이에요. 이곳이 추자도 올레길에서 가장 절정인 곳입니다.”
돈대산 정상을 뒤로하고 하추자도 방면으로 내려가면 자갈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조용한 섬마을의 운치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구불구불 미로 같은 동네 골목길을 걷는 것이 좋다. 낮은 지붕과 낮은 벽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이 정겹다. 상추자와 하추자를 잇는 추자교를 지나면 등대전망대로 이어진다. 나무 계단 400개로 이루어진 이곳은 오르기만 하는 데도 벅차다.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상추자도의 전경은 돈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그것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올레길은 면사무소 뒤 최영 장군 사당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상추자항부터 시작한다면 시작점이고 하추자항부터 발길을 내딛으면 마무리 지점이다. 최영 장군 사당은 고려시대 추자도 주민들에게 그물 매는 법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준 장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민들이 세운 사당이다. 주민들은 장군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한 해 세 번 제를 올린다. 마침 제를 올리는 날이어서 제사 음식도 얻어먹고 바다에 제를 올리는 귀한 장면도 구경했다. 주민들이 풍악을 울리며 바다에 귀한 음식을 던지며 마을의 안위를 빈다. 그렇게 추자도를 한 바퀴를 돈 다음 추자초등학교에서 이헌재 집배원을 만났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여러 명 쏟아져 나왔다. 6학년 아이들이 졸업앨범에 넣을 사진을 이헌재 집배원과 함께 찍겠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