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海
4월의 남해는 봄이 절정이다. 유난히도 긴 겨울의 흔적이 나뭇가지의 마른껍질을 잡고 있었지만 충렬사에서 시작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만개한 벚꽃이 꽃길을 만들었고 산비탈 구비를 돌면 노란 유채꽃이 재롱을 피웠다. 도로를 지나고 언덕을 넘어 보지만 인적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도 허전하지 않다면 그건 바다와 마을이 번갈아 손님을 맞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 주변으로 집개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띌 뿐 바람소리마저 요란스러울 정도로 섬은 한산했다. 그래도 산비탈을 따라 돌다가 마을이 보이면 사람을 찾아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두모 드므개마을은 입구부터 유채꽃이 화사하다. 언덕을 내려오면 마을의 개천이 지척의 바다와 만난다. 바다가 일 나간 낮 동안 개천은 노인들의 친구가 된다. 아침 끼니를 때우고 개천에 나온 할머니는 돌멩이를 뒤집어가며 자연산 굴을 캐고 있었다. 할머니는 도시에서 왔다는 총각들에게 묻지도 않은 자식들 얘기를 꺼내놓는다. 마을은 허리가 굽어 있다. 바다와 시선을 맞추고 노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그랬다. 그런 마을에 들어서면 술래잡기가 시작된다. 비탈 밭에 바짝 엎드려 콩 심는 할머니, 소나무 숲 뒤에서 고추 심는 할아버지. 유채꽃밭 갈아엎는 이장님은 술래다. 점심때가 올 때까지 술래잡기하는 사람이 모두 합쳐 다섯 명뿐이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어찌나 꼭꼭 숨었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다. 놀이는 스피커 볼륨을 한껏 높인 산불예방 홍보차의 등장과 함께 끝났다.
왕조의 꿈이 서린, 금산과 보리암
보리암이 있는 산이 금산인지, 금산에 있는 암자가 보리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리암은 금산에 심어진 나무나 박힌 바위처럼 금산의 몸이고 마음이기도 하니까. 그런 금산의 등줄기를 타고 보리암을 향해 걸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보리암에 오기까지 작은 남해를 만나는 듯 굽이를 돌면 길이 나고 굽이를 돌면 길이 나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다다른 길의 끝에는 남해의 절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덥혀진 땀은 해풍인지 산풍인지 모를 바람에 식고 이내 상기된 마음도 가라앉았다. 산길에 동행한 남해군청의 김철현 주무관은 금산과 보리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산은 태조 이성계의 소원을 들어준 산이라 했다. 보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새로운 세상을 연 태조는 새 세상이 열리면 비단을 둘러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금산의 옛 이름 보광산을 비단금자로 바꿔 현재의 금산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듣는 얘기라서 그런지 다가오는 맛도 더 좋다. 사찰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남해를 바라보며 새 왕조의 꿈을 그리던 태조 이성계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감상에 젖어들 무렵 해는 바쁘게 산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좌)남해는 해안을 따라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바다와 닿은 유채꽃밭에는 꽃놀이 나온 어르신들이 꽃에 파묻혀 한때의 봄을 만끽하고 있기도 했다.
(우)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그 자리의 주인은 마을 아낙들이다. 빠른 손놀림으로 자연산 굴을 캔다.
하루치 먹을거리는 또 충분할 터다.
남해우체국 김길호 집배원
설흘산에 기대앉아 태평양과 마주보기, 가천 다랭이마을
유채꽃이 절정인 가천다랭이마을은 남해의 명소다. 가천은 마을이름이고 다랭이는 좁고 긴 계단식 논을 뜻한다. 평일 오후인데도 마을 여기저기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도로에서 내려보면 꽃이며 마늘이며 유자열매가 그려진 알록달록 지붕들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하고 봄이라 짙푸른 마늘줄기와 노란 유채꽃이 다랭이를 예쁘게 채워주어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고샅길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갈림길을 만나면 이정표가 있어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은희네집, 현주네집, 준혁이네집.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듣고 나올 만큼 작은 마을에 이렇게 집집이 안내해주는 이정표라니. 친절함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해안을 따라 산책길도 잘 정돈되어 있다. 바다와 닿은 유채꽃밭에는 꽃놀이 나온 어르신들이 꽃에 파묻혀 사진 촬영에도 여념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마을 어르신이 가파른 해안기슭으로 나 있는 길을 사람들이 잘 걸을 수 있도록 정비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올레길과 둘레길처럼 자연을 벗삼아 건강하게 걷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걷는 즐거움을 선사했고 남해에도 얼마 전 바래길이 생겨 꾸미지 않은 순수한 남해를 걷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곳 다랭이마을은 바래길 1코스에 주요구간으로 들어가 있다. 마을의 고샅길을 걷는 맛도 좋지만 바다를 보며 불어오는 해풍을 거슬러 걷는 맛도 좋다. 중간 중간 로즈마리 허브나무도 심어 놓았는데 스치는 향기가 걷는 기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유채향 허브향도 좋지만 마을을 나오면서 가장 인상적인 향기는 아궁이에 장작 타는 냄새였다. 다랭이마을에는 여전히 아궁이에 잡목을 때며 불을 지핀다. 굴뚝으로 나오는 하얀 연기가 마을의 풍경에 마지막 붓칠을 더했다.
계단식 다랭이 논과 밭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남해의 어촌마을. 몇 해 전부터 여행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해서 바래길, 자전거도로 등 여행자를 위한 매력적인 아이템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남해가 좋은 이유는 아직도 훼손되지 않은 마을의 풍경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번쯤 살고 싶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조상의 지혜로 사는 마을, 물건리 방조어부림
남해가 다른 섬들과 다른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마을마다 개성을 들고 싶다. 남해의 도로를 따라 돌다 보면 마을 표지석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갈 때의 설렘은 마치 옴니버스 소설 속 다른 단편을 만날 때의 기분과 닮았다. 남해의 동쪽 해안을 따라 남해의 대표 관광지 독일인마을을 지날 때 발아래 마을풍경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면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본 것이다. 해오름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고 나오는 남해우체국 김길호 집배원을 따라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향해 내려갔다. 아직도 마을의 담은 돌담이다. 시멘트로 발린 집이라도 색이 낡아 나름의 멋이 있다. 바다는 좌우로 길게 늘어진 나무들에 가려졌다. 알고 보니 나무들은 바다를 가린 것이 아니었다. 줄 세운 순서를 보면 안다. 바다 뒤에 나무 뒤에 논 뒤에 마을 뒤에 산이다. 그 나무들의 나이는 300살이 넘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라기보다 역사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같은 낙엽 활엽수가 맞잡고 늘어선 거리는 해안을 따라 1.5km에 폭이 30m다. 이 나무들을 방조라고 하는데 해일과 해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농작물의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한다. 나무들이 바다를 가린게 아니라 내륙을 다스렸던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방조를 보호한다. 또한 이 나무들은 바닷물고기에게 알맞은 서식환경을 제공해 물고기떼를 모으고 동시에 증식에 도움을 준다. 이런 숲을 어부림이라고 하는데 모두 합치면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되는 것이다. 3세기 전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가 현재 후손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고 주민들은 이제 그들의 후손을 위해 방조어부림을 보살핀다. 이제 막 새순을 피우는 나무들과 넝쿨 그리고 또 찾아들 바다 물고기들이 연출할 풍요로운 마을 풍경을 상상하니 마음이 부자 된 기분이 들었다. 방조어부림을 따라 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온다.
해질녘 남해가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할 때 마을을 나서 남해의 관문으로 향했다. 앞서가는 버스와 지나가는 가로수 그리고 흩날리는 꽃잎이 세월을 거슬러 가듯 옛 풍경 속으로 우릴 인도 했다. 느리게 미끄러지는 차안에는 틀지도 않은 음악이 마음속으로 흘렀고 우릴 사로잡았던 남해의 올가미를 스르르 녹여냈다.
tip. 자전거로 돌아보는 남해의 해안도로
자전거로 느리게 돌아보기에 좋은 남해에 자전거코스가 만들어진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많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찾고 있지만 왕복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인 도로는 라이딩을 하기에는 다소 위험한 구간이 있어 이런 점만 개선한다면 더 많은 자전거 마니아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남해군청은 현재 자전거여행 코스를 계획해 조성 중에 있으며 이르면 내년에는 정돈된 자전거 코스로 남해를 즐기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